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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혜 Aug 16. 2020

한여름 시절 일기

포토 에세이

  몇 년 전부터 옥상에서 내려오는 열기를 낮추려고 화분을 갖다 두었다. 확실히 열기가 잡히는 것 같아 십 여개 화분에 나무와 채소를 심었다. 나무의 키가 좀 크면 그늘이 만들어지는 것을 기대하고… 그런데 손자를 돌보느라 주 5일은 딸의 아파트에서, 토요일과 일요일은 내 집이다. 그것도 계속 집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한자 수업이 있고, 이런저런 선약이 있어 토요일도 집에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년의 옥상은 매일 물을 주어도 식물들이 자라기 어려울 정도로 말랐다. 그만큼 태양열이 뜨거웠다. 그래서 올해는 이런저런 고민 끝에 자연에게 맡기기로 했다.  


  아래 사진은 6월 하순 옥상에 올라가서 포기 아닌 포기를 하며 찍은 사진들이다.



작두콩 꽃과 넝쿨.


작두콩 줄기에 맺힌 빗방울




나는 매화(梅花)를 매우 좋아한다.

매향(梅香)을 느끼기 위해 이 나무에 정성을 들이는데 해마다 겨울보다 꽃샘추위에 동사(凍死)하는 예가 많았다. 그래서 가지 한쪽은 고사했다. 




블루베리 꽃.

꽃이 수정되어 착상된 암술 끝에 빗방울이 세상을 품고 있다.  

블루베리 열매.

  블루베리 나무.

  6년 전엔가 구입해서 옮겨 심었다. 한 삼 년 전부터 꽃을 보고 열매를 따먹었다. 블루베리는 산성흙에서 크는 식물이라 그동안 자라지 못했다. 누군가가 산성흙에서 자란다는 정보를 알려주었다. 듣는 즉시 소나무 아래로 달려갔다. 부엽토를 긁어모아서 화분갈이를 했더니 거짓말처럼 키가 자라고 잎이 무성해졌다. 그리고 꽃이 피더니 탐스런 블루베리가 열렸다. 블루베리는 추위에 강한 식물이다. 그런데 금년에는 거름이 부족했는지 꽃샘추위에 견디지 못하고 일부가 죽었다. 여름만 되면 쇠비름이 기승을 부려서 뽑아낸 것을 나무에 결쳐 두었다.




   작년에 누런 호박을 축구공만 한 것 하나 따서 호박김치를 담갔다. 속은 파내서 이 곳 화분에 묻었다. 싹이나면 좋고, 안 나면 거름이 될 거라는 생각에.

  해마다 관찰한 결과 우리 집에는 수꽃이 먼저 피어서 사진처럼 일열로 줄기가 뻗어나갔다. 그런데 옥상의 열기인지 내가 길을 인도해서인지 제대로 호박이 달리지 않았고, 애당초 꽃이 피어 수정이 되어도 자라지 못하고, 또 암꽃은 호박과 꽃이 한 몸으로 나와도 사진처럼 누렇게 변해서 어쩌다가 호박이라는 이름이 달리는 경우가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가뭄에 콩 나듯 했다.

 

  저 푸른 초원 위에서 제멋대로 크는 식물을 시멘트 열기에 시달리고, 무식한 주인이 쥐뿔도 모르면서 아침마다 올라와서 호박 줄기를 나뭇가지로 간섭 해대니  제 뜻을 펼칠 수 없어 더 뻗어나가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에도 싹이 한 포기 났길래 아예 제일 먼저 포기한 것이 호박이다. 아직까지 호박이라는 이름을 딸 수 없었다. 아이가 삐쩍 말라서 제대로 못 크 듯, 한 포기 호박넝쿨이 죽지 못해 겨우 연명을 하고 있다.


  하늘이 도우셨는지 6월부터 8월 지금까지 비가 자주 오고 있어 옥상의 근심을 한 시름 놓았다.

  7월 25일, 비가 밤새 내리고 아침에 소강상태여서 사진을 찍기 위해 부리나케 올라갔다.



  부서진 네모 통은 버려진 욕조를 주워서 상치를 심었다. 올해는 지난해 상치가 꽃을 피우길래 그냥 두었더니 이른 봄에 싹이 소복이 나왔다. 어린 상치는 솎아주어야 했는데 손자님 덕분에 물을 주지 못해 고사해버렸다. 내가 게으름 부린 결과이지 손자 탓은 아니다. 지금은 상치 심는 통에 '동방사니'라는 풀이 정구지(부추)처럼 자라고 있다. 그 속에 공존하는 야생화들이 있다. 야생화를 보면서 이 세상은 더불어 사는 곳임을 배운다.


  오른쪽 화분은 복숭아를 먹고 씨앗을 화단에 버렸더니 싹이 나왔다. 삼 년 전부터 꽃을 보기 시작해 금년에는 제법 꽃이 피었길래 복숭아가 열릴 것을 기대했다. 웃기게도 비가 자주 오지 않던 때 물이 부족해 다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한 여름에는 옥상으로 물을 들고 나르기가 힘이 들어서 아예 둥근 통을 하나 갖다 두었다. 아침마다 새들이 와서 목욕을 하고 가는 것 같다. 새들이 목욕하는 것을 좋아했다. 대추나무에 대추가 자잘하게 달렸다.  


                      방금 활짝 피운 복숭아 꽃.



   복숭아나무 아래서 자라는 달개비 꽃씨가 튀어서 상치 심는 곳까지 피었다. 사진 찍기 곤란할 정도로 꽃이 작아서 자칫 초점이 흐려지기 일쑤다. 이 꽃 또한 강인하여서 뽑아도 뽑아내도 살아남아 이렇게 꽃을 피웠다. 야생화를 좋아하면서 어쩔 수 없이 제거해야 하는 경우에는 내가 참으로 미안하다. 그래서 '미안하다'를 읊조리면서 들어낸다.



                           수꽃이 피려고 오므리고 있던 끝을 벌렸다.

 수꽃이 화려하게 아침을 열었다. 호박은 자웅동체 식물이다. 한 줄기에 암수 꽃이 다 핀다는 뜻이다.  몇 안 되는 이파리를 따다 저녁에 쪄서 쌈을 싸 먹었다. 


   쇠비름은 잔인할 정도로 강인하다. 씨가 산지사방으로 튀어나가서 번식하며, 뽑아내도 죽지 않고 살아나는 식물이다. '불멸의 쇠비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잎에 맺혀 있는 빗방울이 아름다워서 차마 뽑아내지 못했다.


  풍선 넝쿨을 지지대에 올려 예쁘게 키우는 집에서 씨를 얻어다 봄에 심었더니 꽃이 피었고, 풍선이 달렸다. 초록 바탕에 하얀 꽃이 눈을 시원하게 해 준다.



  해마다 뒷집 모과나무 이파리들 때문에  내가 지레 늙는 것 같다. 여름에는 여름대로 잎이 떨어져서 하수구를 막아 홍수를 유발하고, 가을과 겨울에는 낙엽 쓸어내느라 머리가 아프다.

                          모과나무 꽃.



  마당에서 키우는 수생식물이다. 이름도 모르고 꽃이 피는 것을 보려고 얻었다. 여러 해 꽃이 피지 않아 천대를 받으면서도 굳세게 살아가고 있다. 거미줄에 빗방울이 맺혀 있는 것이 예뻐서.



유자꽃. 오른쪽 둥근 초록은 수정이 되었는지 열매가 달렸고, 아직 암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유자 흉내를 내고 있는 열매 끝에 빗방울이 타고 내린다.

  집에 날아오는 곤충이 매년 줄어들고 있다. 해마다 이 배추애벌레가 치자나무를 고사시키고 자멸했다. 결국 나비가  되지 못했다. 우중에 이 녀석을 발견했다. 유자나무 잎이 제법 달려있어서 고민을 하다 그냥 두기로 했다. 고민을 한 이유는 한 마리뿐이고 또한 유자나무의 잎이 많지 않아서 나무까지 죽이는 사태가 발생한다. 그러면서 애벌레도 먹이 부족으로 죽기 때문에 희생시켜야 마땅하나 잠시 유예기간을 두기로 맘먹었다. 상생하는 것이 정답이니까.



 얻어다 키우는 상사화다. 한 이 년 꽃을 피우지 않아서 정말 상사화를 피울 것인지 의심까지 했다. 이파리는 무성히 자라다 꽃이 피지 않아 따가운 나의 눈총을 받다가 작년에 꽃이 피어서 무척 반가웠다. 전라도 순천에서 얻은 모종이라 대구광역시에서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린 것이라고 이해했다.

  지난해 시부모님 산소에 들렸다가 분홍색의 상사화 꽃봉오리가 나온 화분을 강원도 횡성에서 사 왔다. 꽃이 피었고, 올해는 잎사귀도 무성히  잘 자라서 시들기에 꽃을 기다리고 있었다.


  '자금성'이라는 화분의 꽃이 오후 세 시면 피었다. 대부분 '세시화'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상사화 꽃봉오리 대신 자금성이 떠 억 하니 세력을 넓혀갔다. 더부살이겠거니 했다. 완전히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뺀 것 같았다. 아직까지 꽃대가 올라오지 않는 것을 보면. '자금성'  꽃을 보면서 문득 중국의 인해전술이 생각났다. 세 시만 되면 피고 지고를 끊임없이 되풀이했다. 그리고 얼마나 번식력이 강한지 요즘 같은 날씨에는 떨어진 씨가 싹을 틔우면서 바로 꽃을 볼 수 있었다.


  세시화가 주인처럼 득세하니 그냥 둘 수 없어 화분에 손을 댔다. 뿌리 채 뽑아냈다. 얼마나 단단하게 박혀있는지… 전혀 미안한 마음이 없었다. 분명 떨어진 씨가 기세 등등하게 밀고 올라올 테니까. 




                    꽃봉오리 크기가 참깨 2분의 1 정도 될까 말까.  꽃은 0.5~6센티 정도다.   




  소우주인 내 집. 이곳에서 무상(無常)을 배운다. 어느 것 하나 꾸준한 것이 없었다. 매 순간, 날마다, 해가 바뀔 적마다 변했다. 자연만 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나의 가정 경제지수가 폭락된 지 오래됐다. 나는 항상 상승세를 유지하기 바랐다. 내 것이 아니기에 머물다 이내 떠나버렸다고 마음을 내려버렸다. 그동안 나는 많이 괴로워했다. 한자로 괴로움을 괴로울 고(苦)라고 쓴다.


  무상(無常) 하니 괴(苦)로울 수밖에 없었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였으므로. 그리고 나에게도 고정적으로 머물러 있지 않았다. 그런데 붓다는 무아상응경(無我相應經)에서 인생살이가 '무상-고-무아'라고 천명했다. '붓다'는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깨달은 사람이 꿰뚫어 통찰한 결과이므로 나는 붓다의 가르침에 의지하였고 실천하려고 노력한다. 어느 때부터 나의 심리상태가 참으로 안정적이면서 자존감이 높아졌다.


  붓다는 나의 몸이 내 것이라면, 만약 나의 몸에게 '병이 나지 않기를' 원한다면 병이 들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나는 무슨 병이든 앓았다. 그리고 지금 처한 상황이 괴로워서 몸에 병이라도 생겨 입원을 하면 좀 쉴 수 있을 것 같아 '병이 나기를'하며 바랐다. 그것 또한 되지 않았다. 이유는 내 몸이지만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것이면 내가 원하는 대로 되어야 한다. 그러나 내 것인 줄 알고 그렇게 되기를 원했다. 유감스럽게도 원하는 대로 된 것이 없었다. 그래서 붓다는 '무아(無我)'라고 했다. 고정불변적인 내가 없으니 내 몸이라며 집착하지 말고, 아프면 아픈 대로 받아들이고, 만족하며 지금 이순간에 충실하라고. 그런데도 붙들고 있었다. 이 어리석음에서 겨우 벗어났다.


  화단, 화분, 옥상의 식물들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포기를 했다. 완전히 마음이 편하지 않았지만 집착하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장마철이 왔다. 실 실 웃음이 나왔다. 죽으라는 법이 없구나 싶어서. 손에 들고 있는 것을 놓으라고 말했다. 뭘 놓으라는 말인지. 내가 '포기' 하지 않고 손에 들고 있었다면, 나는 고민하다 위장병이 생겼으리라. 어쩔 수 없는 경우에는 빨리 고민거리를 해결하든지 단순하게 포기를 해버린다.


  장맛비 때문에 요즘 딸의 아파트 내에는 피우지 못하던 꽃들이 피어나고 있다. 시절 인연이 닿았기 때문이다. 여름이라는 시절. 태양열과 비, 거름이 열매를 키우면 내실을 다지고 있다. 지난밤에는 뒷집 모과가 제 가치를 알아서인지 툭! 툭! 떨어지면서 요란하게 소리를 냈다. 미련 없이 흙으로 돌아갔다. 한여름에 배우는 시절 인연 덕에 시절 일기를 적어봤다.






https://blog.naver.com/jsp081454/22205987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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