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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혜 Jan 22. 2022

미역국은 끼리 뭇나?

  신축년 1월 14일은 음력으로 섣달 열이틀이다. 친정어머니 생전에는 미리 전화가 온다. "미역국은 끼맀나?"라고. 다음 날은 "미역국은 끼리 뭇나?" 확인 차 안부를 물으며 재빠르게 소식을 보내지 않는 딸을 챙겼다. 시집이라는 것을 간 후 '기대'는 애당초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결론을 내렸다. 내 손으로 끓여서 가족이 먹도록 상에 올렸다. 달력에 벌겋게 표시하지 않으면 남의 편은 "오늘 누구 생일이야?" 


  "엄마, 미역국은 내일 낮에 끓일 거야" 딸의 열 하룻 날 통고였다. 생일에 대해서 크고 작은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다. 때가 되면 친정어머니만 애가 닳았다. 어떤 땐 생일도 잊고 있다가 국을 끓였느냐는 말씀에 알아서  끓일 텐데 전화한다면서 투덜대다 그 성화에 끓이기도 했다.  그런 엄마가 불쑥 떠올랐다. "미역국 끼리기나 끼맀나?" 할 시점이다. 


  사위가 식기세척기를 주문했다. 설거지가 계속 밀리자 내린 조치였다. 설치 기사가 한 달 여 뒤에나 온다고 들었는데, 14일 오후에 느닷없이 들이닥쳤다. 딸은 어미를 손녀와 안방으로 감금시켰다. 또 손자에게 두툼한 외투를 입히고 마스크를 씌웠다. 기사가 작업하는 장면을 보면서 손자를 돌봤다. 어멈은 거실의 문을 맞바람 치도록 열어둔 것이 보였다. 손녀와 안방으로 들어갈 땐 기사가 한 시간 정도면 마칠 것으로 짐작하였다. 딸은 5미크론이 무서워서 안방 문도 열어보지 않았다. 


  약 55년 전,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십리나 떨어진 집을 향하여 부지런히 걸었다. 학교로 되돌아가야 해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엄마와 겸상하여 들고 온 도시락의 밥을 다 먹었다. 엄마는 숟가락이 오르내리지 않았다. 상 위에 보이는 밥 한 공기마저 먹고 일어섰다. "엄마 밥인데 그것까지 먹어버리다니…" 엄마가 혼자 하는 말이 들렸으나 방문을 닫기 바빴다. 


  엄마는 '양천 허 씨'. 뼈대 있는 가문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엄마가 태어나는 날 낙동강 물이 홍수로 범람하였다고 한다. 동네 구장이었던 외할아버지와 이웃사람들이 강물에 떠내려오는 가재도구 등을 많이 건졌으며, 태어난 딸은 복이 많은 아기인 같다면서 좋아하였다. 엄마가 태어난 후 집안 살림살이가 펴져서 복덩어리를 귀히 여겼다. 외할아버지는 젖만 먹으면 울지 않고 잘 노는 딸을 순할 순(順)에 빛날 희(熙)를 써서 이름을 지었다. 그런 엄마가 장티푸스로 외할머니를 일찍 여의었다. 외할아버지는 이미 부자로 소문이 나 있었다. 재취댁들은 계속 바뀌었다. 몇 년 사이 그 많던 재산도 바닥을 드러내면서 할아버지마저 할머니 곁으로 떠나버렸다.


  오 남매의 막내인 엄마. 큰 외삼촌은 일본 압제 시절 말기에 장학사를 역임하였다. 6.25 전쟁 후 교장이었던 외삼촌의 중매로 18세의 엄마는 교사인 아버지를 만났다. 19세에 나를 낳아 키우면서 삶의 우여곡절을 파고가 높은 파도를 타듯 탔다. 엄마는 자주 불안정한 어린 시절을 거론했다. 엄마의 추억담이라 재밌게 들었으나 수시로 불쑥 고개를 쳐든다. 복덩이가 아니었다고. 


  순했다던 엄마는 모질었다. 엄마의 생일이 암시하듯 재물은 무정했다. 물을 한 줌 잡으면 모조리 빠져나간다. 다시 한 움큼 떠올리면 잠시 머물다 속절없이 흘러내린다. 그저 물을 만진 흔적만 남았을 뿐. 악착스레 거머쥐었으나 결코 오래 간직할 수 없는 허망함. 붙들어 둘 수 없는 모든 것에 대한 집착만 커졌다. 집착은 욕심과 함께 바른 생각을 방해한다. 부정적인 사고는 심신이 지옥을 드나들었다. 정신인 마음이 아프니 온 몸 마디마디 송곳으로 쑤시면서 생 살을 도려내는 통증을 호소했다.


  엄마의 딸도 시집을 갔다. 어느 한 날 1인 분의 밥을 아이가 맛있게 비워버렸다. 눈앞에서 사라진 한 끼를 보며 엄마가 생각났다. '아! 그때 엄마가 먹어야 할 밥을 먹었구나' 40여 년이 지나서 깨달았다. 엄마가 하던 사업이 완전히 날아가버렸던 시절이었다. 아버지는 무직 상태. 한 끼니의 식량이 중요한 시기에 철 몰랐던 딸이 엄마를 굶게 한 사건이다. 세월은 지났지만 엄마는 지옥을 내 집처럼 왕래하였다. 엄마를 대하는 것이 모란꽃을 보는 것 같았다.


  모란꽃에는 벌, 나비가 오지 않는다. 곤충들이 화려한 꽃 주변을 배회하다 떠나버린다. 모란꽃은 가까이 다가서는 것을 거부하는 꽃이다. 뭐라 표현 못할 냄새가 역하게 풍겼다. 모란의 수정은 바람이 했다. 꽃이 화려하게 피어서 한 생을 빛냈다. 꽃잎들이 처연하게 떨어지고 나면 꼭 한 두 잎이 암술에 붙어 있다. 미련 없이 낙화하지 않고 암술과 함께 수정의 과정을 지켜봤다. 씨방에 착상되어서 오각형처럼 길쭉한 열매 다섯 개가 까만 씨앗 주머니를 키운다. 꽃이 져야만 마음 놓고 다가갈 수 있는 모란이다.  


  엄마의 노후는 자식을 잘 키우는 엄마의 노후는 어느 누구도 염두에 두지 않았다. 아버지와 영별한

엄마 앞에는 동생들의 대학 공부와 혼인이 버티고 있었다. 손에 들어오는 것마다 모으려고 애를 썼으나 무력하게 벌려야 하는 상황 또한 감내했다. 붙들리지 않았고, 붙잡히지 않은 채 마주했던 외로운 노년은 한 그루 모란이었다. 그 모란꽃의 외로움을 같이 하기에는 시절 인연이 따르지 않았다.


  손녀 옆에서 엄마의 짧은 영화를 한 편 감상했다. 생일 아침과 점심에는 미역국은 없었다. 점심때 먹으려나 기대하다가 식기세척기를 설치했다. 5시 넘어서 기사는 떠났다. 딸은 부랴부랴 미역국을 끓인다고 경황이 없다. 손녀는 할머니가 업었지만, 손자는 어멈을 따라다니며 떼를 부렸다. 어멈의 손은 느려서 일이 빠르지 못하다. 마음만 급하던 어멈이 "엄마! 우리 배달시켜서 저녁 먹어요. 시킬까? 괜찮지?


  아파트 단지 주변에 새로 생긴 중국음식을 주문했다. 아들이 보낸 딸기 케이크에 양초를 꽂아 불 차례다. 손자가 "내 꺼야! 내가 끌꺼야!" 손자를 무릎에 앉힌 채 촛불을 끄는 시늉만 했다. 딸이 사위에게 하는 말이 "기사가 코 밑에 마스크를 하고 일을 하는 거야. 마스크 제대로 하라는 말은 못 하겠고 해서 기사가 갈 때까지 거실 창을 열어 맞바람치게 해두었어" 귀담아듣고 있던 사위 왈, "정말 잘했어. 코로나는 철저히 대비해야 해." 


 친정 노모가 별세한 지 그럭저럭 4년이다. 어머니가 이 소리를 들었다면 걱정이 태산 될 뻔 한 날이다. 힘겨운 세월을 보내고 가신 분이기에 애증도 깊었다. 미역국을 저녁에야 먹었다면서 털어놓고 말할 어머니가 내 안에 들어와 앉았다.




사진: 정 혜.


대문 사진: 모란꽃이 갓 피었을 때 자주 빛 꽃잎과 수술의 노란색의 대비는 화려함의 극치다. '부귀의 대명사'라는 용어가 걸맞은 꽃이다.


아래 사진: 만개한 장미꽃.  친정어머니께 장미꽃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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