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옷 한 세트 보다 아이의 모자가 더 비싼 이유
옷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패션테러리스트로 불리며, 어떤 친구는 "옷 살 때 꼭 단톡방에 올려"라고 말한다. 귀찮아서 안 하는데 가끔 고가의 옷 살 때는 사진을 보내 확인받는다.
깔끔한 스타일이 좋아서 항상 기본티에 슬랙스를 입는데, 가끔 예쁜 옷이 입고 싶을 때 사는 것들이 있다.
아마 그런 옷들이 날 패션테러리스트로 만드나 보다.
한 번은 잘 챙겨주는 직장 동료 언니가 갑자기 메신저로 링크를 하나 보내 줬다.
돌려 말하는 적이 없던 돌직구 언니였는데 "하리보야, 여기 옷 참고 해서 입어봐. 너랑 잘 어울릴 것 같아서 보내" 뭐 이런 식의 내용이었다.
돌직구 언니가 나름 빙빙 돌려 말한 것이다. 옷 좀 제발 사 입으라고.
옷에 관심이 없어서 인지 가성비 좋은 브랜드가 좋다. 탑텐, 유니클로, 미쏘 등은 세일도 많이 하고 피팅룸도 커서 눈치 안 보고 옷을 입어볼 수 있어서 좋다.
오늘은 운동복을 사야 했다. 날이 풀려서 헬스장에서 입을 얇은 옷이 필요했다.
마침 세일 품목이 있어 반팔티 19,000원, 바지 29,000원에 샀다. 총 48,000원이다. 아주 만족했다.
주차장까지 걸어가는데 베베드피노 매장이 있다. 아마 아이 키우는 집 엄마라면 모를 수 없는 브랜드. 멀리서 보는데도 귀염뽀짝한 옷들이 진열돼 있다.
홀리듯이 매장에 들어가 공주공주한 옷들을 구경했다. 이미 딸아이 옷은 포화상태였기에 구경만 했다. 많은 유혹을 뿌리치고 집에 가려하는데 발걸음을 붙잡는 물건이 보였다.
모자를 발견했다! 계속 사야지.. 사야지 했는데 마침 생각난 것이다.
매쉬 재질에 시원해 보이는 귀여운 토끼 버킷햇이 눈에 띄었다. 1초의 고민도 없이 점원에게 모자를 가리켰고, 바로 계산했다. 49,000원.
집에 와서 영수증을 정리하는데 문득 생각이 든다.
나에게는 머릿속으로 계산기부터 들이대며 인색하게 굴면서, 아이에게는 한없이 관대해지는구나.
내일 귀여운 토끼 모자를 쓰고, 토끼 원피스를 맞춰 입고 놀러 나갈 생각에 흐뭇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