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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방울 Feb 08. 2022

요절한 예술가의 신화

feat. <에곤 쉴레: 욕망이 그린 그림> & <바스키아>


요절한 예술가들에는 특별한 매력이 있다. 애잔한 예술가의 아우라를 더욱 뿜어내는 비극적인 인생 스토리 때문이다. 특히 30년도 살지 못하고 간 두 명의 화가는 더욱 그렇다. 바로 에곤 쉴레와 장 미셀 바스키아이다. 그들은 화가로 활동한 짧은 기간 동안 자신만의 고유한 스타일을 완성했다. 


지금 봐도 도발적이고 자극적인 포즈의 여성을 즐겨 그린 쉴레는 20세기 초에 불꽃같이 살다 간 오스트리아의 화가였다. 1980년대 미국 뉴욕에서 톱스타같은 인기를 누렸던 바스키아는 최근 미술계에서 다시 뜨거운 인기를 얻고 있다. 






영화 <에곤 쉴레: 욕망이 그린 그림>은 작업에만 미쳐 있는 쉴레와 그의 매력에 빠져 어찌 보면 쉴레에게 이용당한 것 같기도 한 여인들의 이야기이다. 



쉴레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그림을 그리지 못하면 죽을 것이라는 그의 말은 사실이었을 것이다. 쉴레의 대표적인 작품은 여성을 모델로 한 적나라한 누드와 본인의 몸을 그린 자화상이다. 도시와 자연을 그린 풍경화도 있지만 그가 짧은 생애 동안 집중하고 탐닉한 것은 야하거나 독특한 포즈의 여성 인체이다.

 

여기서 모든 오해와 불신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친동생 게르티, 그다음에는 댄서인 모아, 그리고는 클림트를 통해 알게 된 모델 발리, 마지막으로 아내인 에디트가 모델이 된다. 심지어 십 대 소녀들을 모델로 작업한 작품들도 있어서 여러 가지 추측과 의문을 낳고 유괴 납치범으로 몰려 재판도 받게 된다.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한 모델 발리와는 진심에서 우러나온 인생의 동반자 관계를 유지한 것처럼 보인다. 정열적인 육체적 사랑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신뢰를 통해 몇 년을 함께 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전업 화가로서 지속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이 필요했다. 결국 그는 발리와의 동거 생활을 끝내고 중산층 여성인 에디트와의 결혼을 택한다. 


쉴레의 죽음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비엔나 모더니즘을 이끈 빈 분리파의 대표적인 화가인 쉴레는 코로나19 바이러스만큼 무섭고 끔찍했던 스페인 독감으로 1918년 28세의 나이로 죽고 만다. 






<바스키아>는 스트리트 아트와 그래피티로 유명세를 타게 된 화가 바스키아의 인생을 그린 영화이다. 이 영화는 바스키아가 활동한 1980년대에 미국 미술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미술가 중 한 명이었던 줄리안 슈나벨이 만들었다. 



바스키아는 유명해지기 전 밴드를 결성해 클럽에서 음악을 연주하고 뉴욕의 소호 곳곳에 그래피티를 그리며 살았다. 무대에서 열정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며 춤을 추는 무일푼의 젊은이는 언더그라운드 문화계에서는 이미 인기 절정의 예술가였다. 


바스키아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단련하는 과정이 없이 20대 초반, 하루아침에 유명한 미술가가 된다. 명성을 얻기 전부터 사귄 여자 친구와의 관계는 잘 풀리지 않는다. 어린 시절 전시회에 데려가 피카소의 명작 <게르니카>를 보여주신 어머니는 정신병원에 계신다. 유명해질수록 그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은 넘쳐나는데 그는 마음 붙일 사람 한 명 없이 외로움 속에서 의심만 심해진다.


바스키아는 빈민가 출신이 아니다. 아버지는 회계사이고 어머니는 어린 바스키아에게 미술 전시를 자주 보여준 교양 있는 여성이었다. 그들은 흑인이지만 전형적인 중산층의 삶을 살았다. 이 상황도 사람들이 흑인에 대해 가지고 있는 스테레오타입에 맞지 않는다. 


백인이 주 고객인 고급 레스토랑에 들어가면 손님들이 수군대고, 상점에서는 바스키아가 낸 지폐가 가짜는 아닐까 유심히 살펴본다. 길거리에서 택시를 잡으려 하면 그냥 지나쳐 가버린다. 그의 독특한 회화 스타일이 원시 표현미술처럼 보인다는 기자의 말에도 약간 경멸적인 느낌이 섞여 있다. 사람들은 바스키아 작품에는 열광하지만 바스키아라는 인간 자체를 마음을 열어 받아들이려고는 하지 않는다. 바스키아는 그냥 ‘인간’이 아니라 ‘흑인’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바스키아가 유명해지는데 도움을 주고 그 후에는 협업도 하면서 바스키아를 이용한다는 구설수에 오르기도 한 앤디 워홀은 바스키아의 몇 안 되는 친구였지만 갑자기 사망하고 만다. 이게 결정적 계기였을 것이다. 소중한 사람은 떠나버리고 이제 정말 기댈 곳이 없다는 외로움과 우울감에 그는 무너져 내린다. 그리고는 1988년 27세에 마약 과다 복용으로 죽음에 이른다. 


바스키아는 그렇게도 바라던 명성과 유명세를 얻었지만, 부와 기쁨을 제대로 누리는 방법도 깨우치지 못하고 대중의 관심과 주변의 시기를 이겨낼 만큼 성장하지 못한 채 죽고 만다. 젊은 날의 성공이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그를 베어버리고 만 것이다. 






에곤 쉴레와 장 미셀 바스키아, 70년의 간극을 두고 요절한 두 천재 예술가의 인생을 알고 나면 궁금해진다. 


과연 더 오래 살았더라면 훨씬 더 좋은 작품을 남기고 발전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젊은 시절 창조한 작품에 자신의 인생을 다 바쳤기 때문에, 마치 다 타버린 초처럼 더 이상 연소될 것이 없어서 세상을 서둘러 떠나야만 했던 것일까? 





+커버 이미지: <에곤 쉴레: 욕망이 그린 그림>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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