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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방울 Sep 14. 2024

오래된 친구의 편안함,
트와이닝

코로나19가 공포를 몰고 오던 2020년 봄. 나는 트와이닝의 레이디 그레이를 매일 마셨다.

회사원이던 시절, 점심시간에 자주 들르던 올리브영에서 레이디 그레이를 사서 사무실에서 가끔 마셨는데, 갑자기 그 맛이 생각났다. 레몬이 상큼하게 치고 올라오면 온몸과 마음이 상쾌해지던 그 느낌이 그리웠다. 레이디 그레이를 마시면 익숙하고 편안한 장소로 돌아온 것 같아, 곤두섰던 신경도 이완이 되고 긴장이 풀렸다.

 


그러고 보니, 홍차를 즐겨 마시지 않던 시절에도 가끔은 트와이닝의 레이디 그레이와 얼그레이 티백을 사서 마셨다. 신 과일을 좋아해서 인지 홍차도 베르가못이 들어간 얼그레이가 좋았다. 






오래된 친구 같은 브랜드인 트와이닝은 차가 영국에 널리 퍼지는데 지대한 공을 세운 회사이다. 


<차의 세계사>에서는 영국의 대표적인 브랜드인 트와이닝에 대해 알려준다. 1706년에 톰스 커피하우스를 세워 대성공을 거둔 토마스 트와이닝은 1717년에는 골든 라이온이라는 차 가게를 열었다. 커피하우스는 신분을 막론하고 남성들이 드나들며 시간을 보낸 곳이었다. 커피하우스에서도 차를 팔았지만 여성들은 드나들 수가 없었다. 이에 비해 골든 라이온은 여성들이 차를 시음하고 사 갈 수 있는 가게였다. 영국 최초로 여성들을 위한 차 소매점이 생기면서 차는 영국 여성들의 손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안주인이 직접 가게에 와서 차를 시음하고 입맛에 맞게 블렌딩 해서 사 가지고 가서 집안에서 손님을 초대해 차를 즐기는 문화가 시작된 것이다. 


<홍차 수업>의 저자도 비슷한 견해를 밝힌다. 유럽의 국가 중에서는 홍차가 늦게 보급되었고 커피가 엄청나게 유행하고 있던 영국이 홍차의 나라가 된 것은 골든 라이온 같은 소매점이 생기면서 여성들이 직접 차를 구매해서 가정에서 홍차를 마실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홍차는 물만 끓여 부으면 되기 때문에 집에서 간단하게 준비해 마시는 데 무리가 없었다. 






트와이닝은 영국의 대표적인 티 브랜드이다. 하지만 포트넘앤메이슨이나 해로즈와는 다르게 아주 대중적인 브랜드이다. 해외여행을 가면 항상 동네의 대형 슈퍼를 구경하곤 하는데, 지금처럼 한국에서 다양한 티 브랜드를 손쉽게 살 수 없었던 시절에는 외국 슈퍼의 차와 커피 구경은 특히나 신이 났다. 정작 차를 즐겨 마시지 않던 시절에도 소소한 선물로는 차를 사곤 했는데, 단골 아이템은 트와이닝 티백이었다. 여러 가지 가향 홍차와 허브티 등 매대에 알록달록하게 진열되어 있는 티백 상자를 보면 지름신이 불끈불끈 강령하곤 했다.


샛파란색 포장의 레이디 그레이 티백을 한참 마시던 중, 이 차가 잎차로도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블렌딩은 조금 다르다고 하니 너무 궁금했다. 레이디 그레이 잎차는 찻잎이 화려했다. 레몬과 오렌지 껍질에 감귤향을 섞고 푸른 수레국화 꽃잎도 섞었다. 



강렬한 파란색 틴케이스는 그동안 마신 티백보다 훨씬 업그레이된 맛을 보여줄 것 같았지만, 맛은 티백이나 잎차나 별반 차이가 없었다. 상큼하고 가벼워서 딱 기분전환이 되는 바로 그 맛! 티백을 선택하든 잎차를 선택하든 배반하지 않는 레이디 그레이의 맛! 이 맛에 대한 신뢰가 트와이닝 차를 계속 마시게 하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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