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 갔다.
차를 즐겨 마시지 않던 시절이었는데, 포트넘앤메이슨 본점에는 꼭 구경을 가보라던 지인의 말에 방문해 보았다. 오후에 들른 포트넘앤메이슨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티 브랜드 건물이 유명 관광지가 된다는 것을 상상도 못 한 나는 너무 많은 사람들을 보고 압도당했다. 구경도 구경이지만 빨리 그곳을 떠나고 싶은 생각이 더 컸다.
중국인 관광객이 큰손으로 부상하던 시절이라 동양인인 우리 일행을 보고 점원이 따라붙었다. 추천해 주는 대로 몇 가지 홍차를 샀다. 그 당시 샀던 홍차 중에 ‘카운테스 그레이’와 ‘로열 블렌드’가 포함되었다는 것은 집에 남아있는 빈 틴케이스를 보니 기억났다.
지금 같으면 하나하나 천천히 구경하고 미리 예약해서 애프터눈티도 마셨을 텐데, 차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던 그 당시에는 그 복잡한 건물을 벗어나고 싶은 생각만 간절해서 차를 구매하자마자 빠져나왔다.
이렇게 차 문외한의 런던 여행은 포트넘앤메이슨을 방문하고도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 채 끝났다. 지금 돌아보면 아쉽기 그지없다.
<홍차 수업>에서는 포트넘앤메이슨 브랜드 이야기를 간략하게 소개한다. 1707년 윌리엄 포트넘과 휴 메이슨이 식료품과 차를 유통하는 고급 식료품점 사업을 시작하면서 포트넘앤메이슨의 역사가 시작된다. 당시 차는 중국에서 수입되는 굉장히 비싼 음료였고 귀족들이나 마실 수 있었다. 포트넘의 친척이 차를 독점으로 수입하는 영국의 동인도회사에 근무했었기에 차 수급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포트넘앤메이슨은 1867년에 왕실에 납품하는 허가증인 로열 워런트를 받게 되었고 현재도 왕실에 납품하는 회사 중 하나이다. 고급 홍차를 납품하다 보니 잎차를 중심으로 유통했고, 티백 제품은 1960년이 되어서야 출시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홍차를 즐겨 마시면서 포트넘앤메이슨의 홍차를 종류별로 거의 다 섭렵하다 보니, <홍차 수업>의 저자처럼 나도 홍차의 기준이 포트넘앤메이슨이 되어 버렸다. 유구한 역사가 있는 홍차는 마실 때마다 과거와 연결되는 듯한 기분이 든다. 게다가 이 브랜드는 왕실의 주요 행사마다 기념 홍차를 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로열 블렌드’는 1902년에 에드워드 7세를 위해 만들어졌다. 아쌈과 저지대 실론을 블렌딩 한 이 홍차는 고소하고 달달한 향이 나며 진한 갈색 수색에 깊고 묵직한 홍차의 맛을 낸다.
‘퀸 앤’은 포트넘앤메이슨 설립 200주년 기념차로 1907년에 출시되었다. 회사를 창립한 1707년은 앤 여왕이 재위하던 시절이라 차의 이름을 ‘퀸 앤’으로 했다고 한다. 아쌈과 고지대 실론을 섞어서, 로열 블랜드보다는 가볍고 깔끔한 맛이 일품이다. 나는 로열 블랜드보다 퀸 앤이 더 취향에 맞는다.
‘웨딩 브렉퍼스트’는 윌리엄 왕자의 결혼을 기념에 2011년에 출시한 홍차로 아쌈과 케냐 홍차를 블렌딩해 꽤 진하기 때문에 아침에 마시면 정신이 버쩍 든다.
포트넘앤메이슨은 꽃, 과일, 향신료 등 다른 재료를 섞은 가향 홍차보다는 여러 산지의 차만 블렌딩 한 다양한 블렌딩 홍차가 강점이다. 이 브랜드는 우리가 생각하는 전형적인 홍차 이미지에 딱 맞는 홍차를 출시한다. 붉거나 갈색 수색에 대부분 묵직한 느낌이 들고 간이 딱 맞는다. 심심하거나 가벼운 맛은 거의 없다. ‘아이리시 브렉퍼스트’처럼 진한 홍차는 우유를 부어 밀크티로 마셔도 좋지만,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고 스트레이트로 마셔도 아주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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