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고립의 이유
출발.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누가 읽을지도 모르는, 일말의 생산성도 금전적 가치(나의 경우)도 없는 글쓰기를 시작한다. 먼저 마음을 닫는다. 갈무리해둔 기억, 찰나의 감정과 생각들이 너무도 쉽게 휘발되어 사라지는 게 두려워서 이다. 외부의 소리는 백색소음으로 차단하고 시선은 블링커를 한 경주마처럼 한 방향을 응시한다.
혼돈.
고요한 오감의 평화와 달리 마음은 폭풍을 맞이한다. 기억과 기억 속 장면들이 시간의 흐름과 관계없이 어떤 개연성도 인과성도 없이 무작위로 펼쳐진다. 혼돈 속에서 유일하게 고요한 건 나의 손끝과 시선뿐이다. 시선은 모니터가 아닌 마음속 폭풍을 바라보고 있고 손끝은 키보드 위에서 멈춘 채, 이성과 감성사이 혹은 사건과 기억사이를 더듬고 있다. 하나만! 이 무작위의 마음속에서 작위적으로 다듬을 수 있는 어떤 하나(?)만 손에 닿으면 된다.
안정.
드디어 닿았다. 이성과 감성사이 그 어느 지점이다. 결정지을 필요는 없다. 도착하면 알게 될 것이다. 그저 방향을 잃지 않기 위해, 지금은 손끝에 닿은 것에만 집중하자. 미로라 생각하고 벽에서 손이 떨어지지 않게 집중하며 손끝을 따라 나아가면 된다. 벽이 끝나는 지점에 출구가 있을 것이다.
도착.
나를 이끌던 손이 비로소 멈췄다. 미로의 끝, 출구에 닿은 것이다. 손끝에 머물던 시선을 출구에 맞닿은 공간으로 옮겨본다. 다행이다. 바라던 방향으로 기대했던 곳으로 도착한 것 같다. 생각했던 것보단 그럴듯하며 기대했던 거에 비해 못 미치는, 하지만 충분히 그럴 거라고 예상했던 문장들이 나열되어 있다.
손끝으로 더듬으며 지나온 벽들이 문장들로 바뀌어 있다.
떨림.
오늘의 여행은 끝이 났다. 쓴다는 것에 대한 이성과 감성사이의 여행이었다. 말 그대로 여기에 있는 동안 행복했다. 그래서 만족했냐고? 아직 모르겠다. 오늘의 여행은 끝이 났지만 앞으로 어떤 형태의 여행이 남아있을지 모른다. 이성과 감성사이 또는 사건과 기억사이, 아마 그 모든 것이 교차되는 여행일 것이다. 그 모든 여행 중 하나의 여정을 마친 샘이다. 오늘 이만큼 걸었고 이만큼 고단했으며 이 정도의 기쁨이면 된다. 짐을 내려놓고 손을 쉬기까지 몇 발자국만 더 걸으면 된다. 블링커를 벗고 손가락 마디마디를 풀어본다. 마지막 문장을 찾아 오늘의 여정을 마무리하기로 한다. 아직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여정은 끝났지만 여행은 계속될 것이다.
- 짧게 '지어낸' 이야기 [ 마음의 떨림이 멈춰야 비로소 끝나는 여행 ]
어쩌자고 그랬을까요.
목차를 보니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 이더군요. 어디서 들은 건 있었나 봅니다. 부끄러워서 차마 눈둘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글을 마친 시점에서 다시 제목을 수정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읽는 걸 좋아하지만 가끔 참 읽히지 않는 책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손에서 놓지 못하는 아니 그보다는 '내가 기필코 읽고야 만다'라고 오기로 읽는 책이 있습니다. 아! 저의 경우에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무엇보다 궁금했습니다. 작가는 자기의 이야기(삶 속에서 느낀 감상과 감정과 생각들)를 어느 정도까지 연결하고 확장할 수 있으며 그 모든 이야기를 어떻게 표현할지 무척 궁금했고 결국 읽어내고 말았죠.
그리고 조금은 흔하고 너무도 중요한 한 줄의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한 사람의 이야기지만 한 사람의 삶이 한 가지의 이야기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쓰는 것이다."
아무리 읽기 힘들어도 결국 얻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목을 바꾸고 글을 하나 지었습니다.
이성과 감성사이 또는 사건과 기억사이, 어쩌면 그 모든 것이 교차되는 여행에 대해, 쓰기 시작했지만 아직 잘 쓰지 못하는 사람의 자세 혹은 마음에 대해.
글쓰기는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모두에게 하는 행위이다.(중략) 글쓰기는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침묵으로 말을 걸고, 그 이야기는 고독한 독서를 통해 목소리를 되찾고 울려 퍼진다.
p.100
나 자신의 이야기는 이제 내게 딱히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이런저런 사건들은 먼지가 되어 버렸고, 그 먼지가 쌓인 곳에서 풀이 몇 포기 자랐다. 그 풀에서 피어난 꽃 무더기, 어쩌면 그 향기만이 허공에 떠다닐 뿐이지만, 거기서 생겨난 질문 혹은 생각은 여전히 의미가 있다.
p.102
만성 통증 같은 경우에도 환자가 그 고통을 다르게 경험하도록 훈련시키면 치료가 가능하다고 한다. 단 환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한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너무 사랑하는 나머지 그것이 자신의 비극일지라도, 그 이야기 때문에 본인이 불행할지라도 계속 이야기한다.
p352
삶 하나는 이야기 하나가 아니기 때문에, 완성된 이야기를 전하기란 절대 불가능하다. 삶은 온갖 사연으로 가득한 은하수 같은 것이고 우리는 지금 우리가 누구이며 어디에 있는지에 따라 그때그때 몇 개의 성운을 고를 수 있을 뿐이다.
p.359
에세이_「멀고도 가까운」_리베카 솔닛 作 / 김현우_譯
그리고 공감하는 문장_
"동일시라는 말은 나를 확장해 당신과 연대한다는 의미이며..."
epil.
공포, 마지막 문장을 찾았다!
익숙한 공포는 더 이상 공포가 아니다. '재미는 있을까? 아니 누가 읽기나 할까?' 정도의 공포는 자발적 고립을 이제는 요일을 정해놓고 정기적(?)으로 할 만큼 이미 익숙해졌다. 그렇다면 새로운 공포는 무엇일까?
혹시 당신은 알고 있는가?
"이 공간에서 글을 읽는 사람들 모두가 글을 쓰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쭈뼛쭈뼛. 이렇게 한번 끝내 보고 싶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