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사라지는 사람들

검은 승용차의 정체와 협박

by 흑곰아제

최민호는 아침 일찍 파천시청 근처에 있는 엔드스톤사 본사 건물 앞에 섰다.

20층짜리 유리건물로, 겉보기에는 평범한 IT 회사처럼 보였다.

하지만 어제 미쓰리와의 대화를 떠올리며 이 건물 안에 어떤 비밀이 숨어있을지

상상하니 소름이 돋았다.


"엔드스톤사...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데."

최민호는 건물 주변을 한 바퀴 돌며 관찰했다.

정문에는 경비원이 두 명 서 있었고, CCTV도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다.

일반적인 회사보다 보안이 삼엄한 편이었다.

형사 신분증을 보여주며 정문으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파천경찰서 형사 최민호입니다. 간단한 조사 차 왔는데, 담당자와 만날 수 있을까요?"

경비원은 잠시 당황한 기색을 보이더니 내부로 전화를 걸었다.


"네... 경찰서에서 형사님이 오셨다고 하는데... 네, 알겠습니다."

5분 후, 깔끔한 정장을 입은 30대 중반의 남성이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저는 엔드스톤사 대외협력팀 차장 김성민입니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간단한 조사입니다. 3년 전에 귀사에서 진행한 연구실 리모델링 공사와 관련해서

몇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김성민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거의 눈치챌 수 없을 정도였지만 최민호의 예리한 관찰력은 놓치지 않았다.


"3년 전 공사요? 그게 무슨 문제가 있나요?"

"그때 공사에 참여했던 작업자 중 몇 명이 실종되어서 관련해서 알아보고 있습니다."

"실종이요? 그건 저희와는 상관없는 일 아닌가요?"

김성민의 반응은 지나치게 차분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놀라거나 걱정하는 기색을 보일 텐데, 그는 마치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담담했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그분들이 일했던 곳이 여기니까요.

혹시 당시 공사 과정에서 특별한 일이 있었는지, 작업자들과 트러블이 있었는지..."

"죄송하지만 그런 세부 사항은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 공사는 외부 업체에서 진행했고,

저희는 관리 감독만 했거든요."

"그럼 당시 공사를 담당했던 분과 만날 수 있을까요?"

김성민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말했다.


"지금 자리에 없으신데, 연락처를 남겨주시면 나중에 연락드리겠습니다."

최민호는 명함을 건네며 더 자세한 질문을 이어갔다.


"그때 공사는 정확히 어떤 내용이었나요? 단순한 인테리어 변경인가요, 아니면 구조적인 변경이 있었나요?"

"연구실 레이아웃 변경과 부대시설 공사였습니다. 별다른 특이사항은 없었어요."

"연구실에서는 주로 어떤 연구를 하시나요?"

"IT 솔루션 개발이죠. 자세한 건 기업 기밀이라..."

김성민은 점점 대답을 회피하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최민호는 더 이상 정보를 얻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알겠습니다. 혹시 필요하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최민호는 건물을 나서며 주변을 다시 한 번 둘러봤다. 뭔가 석연치 않았다.

15명이나 실종된 현장인데도 너무 태연했고, 오히려 미리 준비된 답변처럼 느껴졌다.


차에 올라탄 최민호는 엔드스톤사 근처 카페로 이동했다.

건물을 관찰하며 혹시 다른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 기대했다.

하지만 2시간을 지켜본 결과 별다른 특이사항은 없었다.


오후 3시경, 최민호는 차를 몰고 경찰서로 돌아가려 했다.

그런데 백미러를 통해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계속 뒤를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우연의 일치일까?'

최민호는 확인해보기 위해 일부러 우회전을 했다. 검은 차도 따라서 우회전했다.

다시 좌회전을 해봤다. 여전히 따라왔다.


'미행당하고 있군.'

최민호의 심장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엔드스톤사에서 나온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미행이 시작된 것이다. 이건 우연이 아니었다.

최민호는 교통량이 많은 큰 도로로 나갔다.

혹시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뭔가 시도하지 않을 거라는 기대에서였다.

하지만 검은 차는 여전히 바짝 뒤를 따라왔다.


신호등에서 멈췄을 때, 최민호는 백미러로 검은 차의 번호판을 확인하려 했다.

하지만 번호판이 흐릿하게 보였다. 일부러 가렸거나 조작한 것 같았다.

신호가 바뀌자 최민호는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검은 차도 속도를 높였다.

그런데 갑자기 검은 차가 차선을 바꿔 최민호 차의 바로 옆으로 다가왔다.


'뭘 하려는 거야?'

순간, 검은 차가 최민호의 차를 향해 급격히 접근했다.

최민호는 급하게 핸들을 꺾었지만 피할 수 없었다.


꽝!

검은 차가 최민호의 차 옆면을 들이받았다.

최민호의 차는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이 미친...!"

최민호는 필사적으로 핸들을 조작했지만, 차는 이미 통제를 벗어난 상태였다.

가드레일을 들이받으며 차가 멈췄다.

에어백이 터지면서 최민호의 시야가 하얘졌다.

귀에서는 삐 소리가 계속 들렸고,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으아..."

최민호가 정신을 차리려 할 때, 차 문이 열렸다.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최민호를 내려다봤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는 차갑고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죽고 싶지 않으면 여기서 그만해."

남자의 목소리는 낮고 위협적이었다.


"뭐... 뭐라고?"

"경고다."

최민호는 흐릿한 시야로 남자를 바라봤다. 얼굴을 기억하려 했지만 머리가 너무 어지러웠다.

"다음에는... 이 정도로 끝나지 않을 거다."

남자는 그 말을 남기고 검은 차로 돌아갔다. 차는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최민호는 핸드폰으로 119에 신고했다.

10분 후 구급차가 도착했고, 그는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병원에서 검사 결과 뇌진탕과 갈비뼈 금, 그리고 여러 부위의 타박상을 입었다는 진단을 받았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최소 일주일은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했다.


다음날 아침, 최민호에게 예상치 못한 전화가 걸려왔다.


"최민호 형사님, 파천서 수사과장입니다."

"네, 과장님."

"어제 사고 때문에 많이 놀랐을 텐데, 괜찮아요?"

"네, 괜찮습니다."

"그런데 말이에요... 최근에 어떤 사건을 조사하고 계신가요?"

최민호의 가슴이 철렁했다. 벌써 윗선에서 압력이 들어온 것 같았다.


"별다른 사건은 없는데요."

"엔드스톤사라는 회사에 다녀오셨다고 들었는데?"

"아... 그건 개인적인 조사였습니다."

"개인적인 조사요? 형사가 근무시간에 개인적인 조사를 한다고요?"

과장의 목소리에는 날이 서 있었다.


"최형사, 당분간 다른 사건들에 집중하세요. 엔드스톤사 건은 별다른 혐의점이 없어 보이니까

거기서 그만두시고."

"하지만..."

"이건 명령입니다. 알겠어요?"

"...네."

전화가 끊어진 후 최민호는 천장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엔드스톤사의 영향력이 경찰 조직 내부까지 미치고 있었다.

이대로는 공식적인 수사가 불가능했다.


그때 최민호의 머릿속에 미쓰리가 떠올랐다.

어제는 위험하다며 나서지 말라고 했지만,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

공식적인 루트로는 더 이상 조사할 수 없게 되었다.

최민호는 병원 침대에서 핸드폰을 꺼내 미쓰리에게 문자를 보냈다.


"미쓰리, 만날 수 있나요? 중요한 일이 생겼어요."

30분 후 미쓰리로부터 답장이 왔다.


"네, 어디서 만날까요? 괜찮으세요?"

"병원에 있어요. 일산병원 5층 521호실. 올 수 있어요?"

"네, 지금 갈게요. 무슨 일이에요?"

"직접 만나서 얘기할게요."


2시간 후, 미쓰리가 병실에 나타났다. 최민호의 모습을 보자 깜짝 놀랐다.

"어머, 이게 무슨 일이에요? 사고나신 거예요?"

"응... 엔드스톤사를 조사하다가 당했어."

미쓰리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설마 그들이...?"

"검은 차가 일부러 들이받았어. 그리고 경고했지. '죽고 싶지 않으면 여기서 그만하라'고."

"세상에..."

"더 심각한 건 윗선에서 압력이 들어왔어. 더 이상 공식적으로 조사할 수 없게 되었어."

최민호는 미쓰리를 진지하게 바라봤다.


"미쓰리, 어제는 위험하다고 나서지 말라고 했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어.

공식적인 수사가 막혔으니까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해."

"다른 방법이요?"

"비공식적으로 조사해야 해. 그런데 내가 움직이면 너무 눈에 띄거든.

하지만 미쓰리는 일반인이니까 상대적으로 덜 의심받을 거야."

미쓰리는 잠시 고민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최민호가 위험하다며 나서지 말라고 했는데, 이제는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뭘 해야 하죠?"

"엔드스톤사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가 필요해. 그들이 정확히 뭘 하는 회사인지,

3년 전 그 공사에서 뭔 일이 있었는지..."

최민호는 병원 침대에 기대앉으며 계속 말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15명 중에 혹시 살아있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해야 해.

만약 한 명이라도 살아있다면 증언을 들을 수 있을 거야."

"어떻게 찾죠?"

"가족들을 직접 만나봐야 해. 돈을 받고 입을 막혔다고는 하지만, 혹시 뭔가 알고 있을 수도 있어."


미쓰리는 긴장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데 저도 위험하지 않을까요? 형사님도 저런 일을 당하셨는데..."

"물론 위험해.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어. 15명이 억울하게 죽었는데 그냥 넘어갈 순 없잖아."

최민호의 눈에는 분노와 정의감이 불타고 있었다.


"그리고 미쓰리도 이미 연루되어 있어. 엔드스톤사 건물을 관찰했던 것도 알고 있을 수도 있고,

나와 만난 것도 들켰을 수 있어. 이미 안전지대는 없다는 얘기야."

미쓰리는 심호흡을 했다. 최민호의 말이 맞았다.

이미 시작된 이상 중도에 포기할 수도 없었고, 포기한다고 해서 안전해지는 것도 아니었다.


"알겠어요. 해보죠."

"고마워. 하지만 정말 조심해야 해. 절대 혼자 위험한 곳에 가지 말고, 항상 연락할 수 있게 하고."

최민호는 미쓰리에게 몇 가지 주의사항을 당부했다.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우기 시작했다.


"일단 내가 병가를 내고 회복할 동안, 미쓰리가 가족들을 만나서 정보를 수집해봐.

그리고 일주일 후에 다시 만나서 정보를 공유하자."

"네, 알겠어요."

미쓰리는 병실을 나서면서 각오를 다졌다.


이제 정말 위험한 게임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15명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내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이 일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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