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사라지는 사람들

연구소 잠입 계획

by 흑곰아제

일주일 후, 최민호는 퇴원했다.

갈비뼈 통증은 여전했지만, 더 이상 병원에만 있을 수는 없었다.

미쓰리와의 약속 장소인 파천시 외곽의 작은 카페에 도착하자,

그녀는 이미 와 있었다.


"형사님, 많이 좋아지셨네요."

"네, 이제 움직일 수는 있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미쓰리는 가방에서 노트북과 몇 장의 서류를 꺼냈다.


"15명 가족들을 모두 만나보려고 했는데, 8명 정도만 만날 수 있었어요.

나머지는 이사를 가서 연락이 안 되거나 만나기를 거부하더라고요."

이 여자 어이없고 빠르다.


"그래도 8명이면 많이 한 건데요. 뭔가 알아낸 게 있어요?"

"네, 흥미로운 얘기들을 들었어요."

미쓰리는 노트북을 열며 정리한 내용을 보여줬다.


"일단 15명 모두 엔드스톤사 지하 연구실 공사에 투입되었던 게 확실해요.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어요."

"어떤 점이...?"

"공사 시작 2주 후부터 작업자들이 이상하다고 가족들에게 얘기했대요.

'밤에 자꾸 악몽을 꾼다', '머리가 아프다', '집중이 안 된다' 이런 식으로요."

최민호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리고 마지막 주에는 거의 모든 작업자가 신경질적으로 변했다고 해요.

가족들과 말다툼을 하거나, 갑자기 화를 내거나..."

"뭔가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있겠군요."

"맞아요. 그리고 또 하나, 8명 가족 모두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보상금을 받았대요.

정확히 실종 신고 접수 3일 후 오전 10시에요."

최민호는 미쓰리의 꼼꼼함에 감탄했다. 일주일 만에 이런 정보를 수집하다니.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미쓰리가 목소리를 낮췄다.

"한 가족이 비밀리에 알려준 건데, 실종되기 전날 남편이 이상한 얘기를 했다고 해요."

"어떤 얘기를 했다던가요?"

"'지하 4층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 화학 냄새 같은데 맡으면 머리가 아파진다'고 했대요.

그리고 '그 층에는 우리가 들어갈 수 없게 막아놨다'고도 했고요."

최민호의 눈이 번뜩였다.


"지하 4층... 그럼 일반적인 인테리어 공사가 아니라 뭔가 다른 목적이 있었다는 말인데."

"네, 그래서 생각해봤는데... 직접 확인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무슨 소리예요? 설마 엔드스톤사에 들어가자는 거 아니죠??"

미쓰리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증거가 있어야 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어요. 지하 4층에 뭔가 있다면..."

"너무 위험해요. 나도 그냥 정문으로 들어갔다가 사고를 당했는데,

몰래 들어간다는 건 더욱 위험하다고."

"하지만 다른 방법이 있나요? 공식 수사도 막혔고,

가족들한테서 들을 수 있는 얘기도 한계가 있어요."

최민호는 한참을 고민했다.

미쓰리의 말이 맞았다.

결정적인 증거를 찾으려면 직접 가서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알겠어요. 하지만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야 해요."

"이미 생각해뒀어요."

미쓰리가 가방에서 또 다른 서류를 꺼냈다. 엔드스톤사 건물 평면도였다.


"어떻게 구했어요?"

"건축 허가 관련 서류는 구청에서 열람할 수 있어요. CSI 드라마에서 본 적이 있거든요."

최민호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정말 대단하네요. 그래서 계획이 뭐예요?"

"주말 야간에 침입하는 거예요. 토요일 밤 11시경이면 경비원 한 명만 근무해요."

"어떻게 들어갈 건데요?"

"청소업체 직원으로 가장하는 거예요. 엔드스톤사 청소업체는 '클린케어'라는 곳인데,

주말에도 야간 청소를 해요."

미쓰리는 노트북에서 클린케어 유니폼 사진을 보여줬다.


"이미 비슷한 옷을 준비해뒀어요. 그리고..."

미쓰리가 가방에서 가발과 화장품을 꺼냈다.

"완벽하게 분장할 거예요."


"그런데 그쪽 혼자 들어가겠다는 거 아니죠? 그건 안 돼요."

"아니요, 형사님도 같이 가야죠. 하지만 형사님은 다른 방법으로 들어가시고요."

미쓰리가 평면도를 가리키며 설명했다.


"건물 뒤편에 비상계단이 있어요. CCTV 사각지대인 것 같아요.

거기서 3층까지 올라간 다음, 제가 내부에서 비상문을 열어드릴게요."

"음... 그럼 그쪽은 정문으로 들어가고, 나는 뒤편으로?"

"네, 저는 청소부로 가장해서 자연스럽게 정문으로 들어갈 거예요.

그리고, 그쪽이 아니고 미쓰리요."

최민호는 못들은 척 서류를 보며 계획을 검토해봤다.

나름 치밀했지만 위험한 것은 여전했다.


"알겠어요. 하지만 절대 혼자 지하로 내려가면 안 돼요. 내가 합류할 때까지 기다려요."

"물론이죠. 저 혼자서는 무서워서 못해요."


이틀 후인 토요일 밤, 계획이 실행되었다.

최민호는 밤 10시 30분에 엔드스톤사 건물 뒤편에 도착했다.

어둠 속에서 건물을 관찰하니 3층 비상구 쪽에는 정말 CCTV가 없었다.


11시 정각, 핸드폰이 진동했다. 미쓰리에게서 온 문자였다.

"들어갔어요. 10분 후에 3층 비상문 열겠습니다."

최민호는 검은색 운동복을 입고 마스크와 모자로 얼굴을 가린 채 비상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쉽게 3층에 도달했다.

10분 후, 비상문이 조용히 열렸다.

미쓰리가 나타났는데, 최민호는 깜짝 놀랐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갈색 가발에 두꺼운 뿔테 안경, 그리고 청소업체 유니폼까지.

심지어 걸음걸이도 바꿔서 마치 50대 아줌마처럼 보였다.


"미쓰리야?"

"쉿! 소리내지 마세요."

최민호는 속으로 감탄했다.

'CSI 덕후답게 정말 완벽하게 분장했네. 이 여자 보통이 아니구나.'

미쓰리는 최민호를 3층 화장실로 데려갔다.


"여기서 잠시 기다리세요. 지하로 가는 길을 확인해볼게요."

"조심해요."

"네, 15분 후에 다시 올게요."

최민호는 화장실 소품창고에 숨어서 기다렸다.

미쓰리의 치밀함에 다시 한 번 놀랐다.

지문을 남기지 않기 위해 라텍스 장갑까지 끼고 있었고, 심지어 신발에도 비닐을 씌워놓았다.

'정말 대단하다. CSI 드라마를 얼마나 본 거야?'


15분 후, 미쓰리가 돌아왔다.

"확인했어요. 지하로 가는 엘리베이터와 계단이 있는데, 계단이 더 안전할 것 같아요."

"경비원은?"

"1층 로비에서 TV 보고 있어요. 완전히 방심하고 있더라고요."

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지하 계단으로 향했다.


건물 내부는 생각보다 복잡했다.

복도마다 여러 개의 연구실과 회의실이 있었다.

지하 1층, 2층은 별다른 특이사항이 없었다.

일반적인 사무실과 연구실들이었다.

하지만 지하 3층부터는 분위기가 달랐다.


"냄새가 이상해."

미쓰리의 말이 맞았다. 화학 냄새가 심하게 났다.

지하 4층에 도달했을 때, 두 사람은 입을 벌리고 말았다.

복도 양쪽으로 대형 연구실들이 늘어서 있었고,

각 연구실마다 '출입금지', '위험구역', '방호복 착용 필수' 같은 경고 표시가 붙어있었다.


"이게 뭐야? IT 회사 맞아?"

최민호가 한 연구실 문을 살짝 열어봤다. 안에는 각종 실험 장비와 화학 물질들이 가득했다.

"완전히 화학 연구소네."

"저기 봐요."

미쓰리가 복도 끝을 가리켰다. 특별히 큰 문이 하나 있었고,

'특별실험실 - 최고보안구역'이라는 표시가 붙어있었다.

"저곳 같아요. 작업자들이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놨다는 곳."

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그 문에 다가갔다. 문은 전자카드키로 잠겨있었다.


"어떻게 하지?"

그때 미쓰리가 작어복 주머니를 뒤지더니 누군가의 사원증을 꺼냈다.

"이것도 CSI에서 본 건데... 혹시 될지 몰라서 준비했어요. 아까 청소하면서

하나 슬쩍 했어요."

"대박, 정말 직업이 경리 맞아요? 혹시 아무데서나 이렇게 손버릇 안 좋은거 아니죠?"

"처음이예요. 처음. 저도 믿을 수가 없어요."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두 사람은 경악했다.

실험실 중앙에 거대한 원형 장치가 있었다.

마치 SF 영화에서 보던 것 같은 기계였다. 주변에는 각종 모니터와 컴퓨터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게 뭐야?"


더 충격적인 것은 벽면에 걸린 사진들이었다.

15명의 실종된 작업자들의 사진이 차례대로 붙어있었고,

각 사진 아래에는 숫자가 적혀있었다.

"저 숫자가 뭐죠?"

최민호가 자세히 살펴봤다. '테스트 001', '테스트 002' 이런 식으로 적혀있었다.

"설마... 사람을 실험 재료로 썼다는 건가?"

미쓰리가 벽에 붙은 다른 서류들을 확인했다.


"여기 실험 기록이 있어요."

'프로젝트 마인드 컨트롤', '뇌파 조작 실험', '기억 삭제 및 조작' 같은

무서운 제목들이 적혀있었다.

"완전히 미쳤네... 사람들을 납치해서 뇌 실험을 했다는 거야?"

"미쓰리, 공상영화 너무 본거 아니예요? 우리나라에서 그런 일이 가능하질 않아요"

그때 실험실 안쪽에서 희미한 신음소리가 들렸다.


"어? 뭐야?"

두 사람이 조심스럽게 안쪽으로 들어가자, 작은 방이 하나 더 있었다. 그 안에는...

"세상에..."

침대 위에 한 남자가 누워있었다.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는 의식을 잃은 채 각종 전선과 튜브에 연결되어 있었다.

미쓰리가 벽에 붙은 차트를 확인했다.

"김철수... 실종자 명단에 있던 사람이에요!"

"아직 살아있다는 거야?"

최민호가 남자의 맥박을 확인했다. 약하지만 살아있었다.


"살아있어! 빨리 깨워봐야겠어."

"잠깐, 위험할 수도 있어요. 뭔가 약물에 중독되어 있을 수도 있고..."

그때 갑자기 실험실 전체에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삐-삐-삐-! 무단침입 감지. 무단침입 감지."


"들켰다!"

최민호와 미쓰리는 서로를 바라봤다. 이제 정말 위험해졌다.

"어떻게 하죠?"

"일단 김철수를 데리고 나가야 해. 이 사람이 유일한 증인이야."

하지만 의식을 잃은 사람을 어떻게 데리고 나간다는 말인가?


"저는 여기서 더 증거를 수집할게요. 형사님은 먼저 나가세요!"

"뭔소리야! 같이 나가야지!"

"누군가는 이 증거들을 확보해야 해요! 사진이라도 찍어야죠!"

미쓰리는 이미 핸드폰으로 실험실 곳곳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그때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여러 명이 달려오고 있었다.


"미쓰리, 빨리!"

"거의 다 했어요!"

최민호는 김철수를 부축해서 일으키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완전히 기절해 있었다.

"젠장, 어떻게 하지?"

바로 그때, 실험실 문이 벌컥 열렸다.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들 3명이 들어왔다.

그 중 한 명은 최민호를 교통사고로 위협했던 그 남자였다.

"역시 포기 못하고 왔군."

남자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갑고 위협적이었다.

"이번에는 경고로 끝나지 않을 거다."

최민호와 미쓰리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동시에 15명의 실종자들에 대한 진실의 일부를 발견했다.

과연 이들이 이 위험한 상황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

그리고 김철수를 구출할 수 있을까?

긴박한 순간이 계속되고 있었다.


<제1부. 사라지는 사람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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