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실종자와 단서 발견
아침 8시 30분, 삼우건설 사무실은 평소보다 훨씬 북적거렸다.
2공구와 3공구 현장소장들이 일찌감치 나타났고,
인근 현장의 소장들까지 모여들어 회의실이 비좁을 정도였다.
미쓰리는 커피를 내리며 이런 상황이 처음이라는 생각을 했다.
보통은 각자 현장에서 바쁘게 지내는 사람들이 이렇게 한 자리에 모이는 일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아, 미쓰리야. 커피 좀 더 끓여줄 수 있어?"
김부장이 손짓하며 부탁했다. 평소보다 표정이 심각해 보였다.
"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미쓰리는 대용량 커피포트를 가동하면서 귀를 쫑긋 세웠다.
회의실 문이 반쯤 열려있어서 대화가 들려왔다.
"그러니까 정확히 언제부터 연락이 안 된다는 거야?"
"지난주 금요일 오후 6시경이 마지막이었어요. 퇴근한다고 문자 보낸 게 끝이에요."
"가족들은 뭐라고 해?"
"주말에 친구들이랑 등산 가기로 했다고 했는데, 정작 친구들한테 물어보니 그런 약속은 없었다더군요."
미쓰리의 손이 잠시 멈췄다. 실종자 이야기였다. 그것도 박현수와 비슷한 상황인 것 같았다.
"휴대폰 위치 추적은 해봤대?"
"금요일 저녁 8시 30분경 파천사거리에서 마지막 신호가 잡혔는데, 그 이후로는 꺼진 상태라고 하더군요."
"CCTV는?"
"확인해봤는데 별다른 단서가 없었대요. 마치 허공으로 사라진 것 같다니까요."
미쓰리는 커피포트에서 나오는 보글보글 소리와 함께 긴장감이 높아지는 것을 느꼈다.
실종자. 그것도 건설업계 종사자.
"야, 그런데 이거 좀 이상하지 않아? 박현수한테 이어서 또 우리 업계 사람이..."
"맞아. 뭔가 연관성이 있는 것 같은데."
"설마 노조 관련해서 뭔가..."
"쉿, 그런 얘기는 조심해서 해야지."
미쓰리는 커피잔들을 쟁반에 올리며 더욱 집중해서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누군가 문을 완전히 닫은 모양이었다.
'아쉽네. 더 들을 수 있었는데.'
미쓰리는 커피를 가져다 주면서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파악하려 했지만,
그들은 이미 업무적인 이야기로 화제를 바꾼 상태였다.
오전 내내 미쓰리는 집중력이 떨어졌다.
엑셀 작업을 하면서도 계속 귀는 회의실 쪽을 향하고 있었다.
그러다 점심시간이 되자 현장소장들이 모두 식사를 하러 나갔다.
"미쓰리야, 너도 밥 먹으러 가지 그래?"
"네, 조금 이따 가겠습니다."
김부장이 나간 후, 미쓰리는 회의실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혹시 무언가 단서가 남아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에서였다.
하지만 회의 자료들은 모두 치워진 상태였고, 화이트보드도 깨끗하게 지워져 있었다.
'역시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지.'
점심을 간단히 때우고 돌아온 미쓰리는 오후 시간을 이용해 아침에 들은 정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겉으로는 업무용 엑셀을 열어놓고, 실제로는 워드 문서에 기억나는 모든 내용을 적어나갔다.
**실종자 정보 정리:**
- 마지막 연락: 지난주 금요일 오후 6시
- 마지막 휴대폰 신호: 금요일 저녁 8시 30분, 서초구 일대
- 실종 당시 상황: 친구들과 등산 간다고 했으나 실제로는 약속 없었음
- 가족 인지 시점: 주말 내내 연락 안 됨
- CCTV 단서: 없음
**박현수 사건과의 공통점:**
- 건설업계 종사자
- 갑작스러운 실종
- 마지막 연락 후 흔적 없이 사라짐
- CCTV 단서 부족
미쓰리는 연필로 입술을 톡톡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두 사건 사이에 뭔가 연관성이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단서는 부족했다.
그때 김부장이 돌아왔다. 미쓰리는 재빠르게 워드 문서를 최소화하고 엑셀로 화면을 바꿨다.
"미쓰리야, 오늘 오후에 2공구 소장님이랑 3공구 소장님이 다시 올 거야. 혹시 뭔가 물어보시면 잘 대답해줘."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그렇게 자주 오시나요?"
"음... 현장 관련해서 중요한 문제가 있어서 그래. 자세한 건 나중에."
김부장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뭔가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없는 상황인 것 같았다.
오후 3시경, 2공구 소장 정태식과 3공구 소장 이원철이 다시 나타났다.
그들과 함께 처음 보는 중년 남성도 있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커피..."
"아, 미쓰리씨 맞죠? 저는 한강건설 현장소장 박민수입니다."
새로 온 남성이 정중하게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커피 드릴까요?"
"네, 고맙습니다."
미쓰리는 커피를 준비하면서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이번에는 문을 완전히 닫지 않아서 조금 더 들을 수 있었다.
"그럼 윤성호 씨도 우리랑 같은 상황이라는 거네요?"
"맞습니다. 똑같아요. 금요일에 정상적으로 퇴근하고, 주말에 갑자기 연락이 안 되고."
"가족들 반응은 어때요?"
"당연히 난리죠. 경찰서에 실종신고도 넣었고. 하지만 성인이 며칠 연락 안 되는 것 가지고는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는다더군요."
미쓰리의 마음이 뛰기 시작했다. 윤성호. 아까 그 실종자인가?
"윤성호 씨는 어떤 현장에서 일했습니까?"
정태식 소장이 물었다.
"3년 전에 저희 한강건설에서 맡았던 프로젝트예요. 파초구에 있는 사거리쪽 큰 연구소 공사였는데..."
미쓰리의 손이 떨렸다. 커피잔이 쟁반에서 살짝 흔들렸다.
"혹시 그 연구소 이름이...?"
"엔드스톤 연구실 구조변경 및 부대공사였습니다."
쟁반이 바닥에 떨어질 뻔했다. 미쓰리는 간신히 붙잡고 심호흡을 했다.
'엔드스톤... 또 엔드스톤이야!'
"그럼 박현수 씨랑 같은 현장이었네요?"
"네, 맞습니다. 그때 우리가 함께 작업했거든요."
"이상하네요. 그 현장 관련자들이 계속 실종되고 있다니."
미쓰리는 더 이상 커피를 들고 있을 수 없어서 빨리 회의실로가 커피를 내려놓았다.
너무 충격적인 정보였다.
그녀는 조용히 자리로 돌아가서 컴퓨터 앞에 앉았지만,
손이 너무 떨려서 키보드를 제대로 칠 수가 없었다.
'3년 전... 엔드스톤 연구실... 그 현장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어.'
미쓰리는 워드 문서를 열고 새로운 정보를 추가했다.
** 실종자 - 윤성호:**
- 한강건설 소속
- 마지막 연락: 지난주 금요일
- 공통점: 2022년 6월 엔드스톤 연구실 공사 참여
**패턴 분석:**
1. 모두 2022년 6월 엔드스톤 연구실 공사에 참여
2. 모두 금요일에 실종
3. 모두 건설업계 현장직 근무자
4. 실종 후 흔적 없이 사라짐
미쓰리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이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분명한 패턴이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이 정보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몰랐다.
경찰에 제보한다고 해서 믿어줄 것 같지도 않았고, 뭔가 더 확실한 증거가 필요했다.
'그리고... 혹시 나도 위험한 건 아닐까?'
미쓰리는 갑자기 무서워졌다. 자신이 엔드스톤사 건물을 감시했던 것이 들켰을 수도 있었다.
만약 그들이 자신의 존재를 알고 있다면...
'아니야, 너무 성급하게 생각하지 말자. 일단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해.'
오후 4시가 넘어서야 현장소장들이 모두 돌아갔다.
김부장도 외근을 나갔고, 사무실에는 미쓰리 혼자만 남았다.
미쓰리는 인터넷을 열고 2022년 6월 엔드스톤 연구실 공사에 대해 검색해봤다.
하지만 별다른 정보가 나오지 않았다.
단지 '엔드스톤사 연구실 리모델링 완료'라는 간단한 보도자료만 있을 뿐이었다.
'더 자세한 정보가 필요해. 그 현장에서 일했던 사람들 명단이라도 있으면...'
미쓰리는 회사 서버에 접속해서 과거 프로젝트 파일들을 뒤져봤다.
다행히 2022년 자료들이 아직 남아있었다. 그 중에서 엔드스톤 관련 폴더를 찾았다.
'있다!'
**엔드스톤 연구실 구조변경 및 부대공사**
- 기간: 2022년 5월 2일 ~ 2022년 6월 17일
- 참여 인원: 총 15명
- 현장소장: 정태식 (삼우건설)
- 협력업체: 한강건설, 대성전기, 신화설비
미쓰리는 참여 인원 명단을 자세히 살펴봤다.
**삼우건설 소속:**
- 박현수 (실종)
- 김철호
- 이동환
- 장민석
- 노근수 (연락두절)
**한강건설 소속:**
- 윤성호 (실종)
- 서준택
- 배상민
- 류호진
**대성전기 소속:**
- 나현우 (연락두절)
- 임재혁 (실종)
- 송기수
**신화설비 소속:**
- 문성진
- 오세준 (연락두절)
- 한동규
15명 중 6명이 실종되거나 연락이 두절되었다. 확률로 따지면 40%. 이건 절대 우연이 아니었다.
'나머지 9명은 안전할까?'
미쓰리는 명단을 프린트해서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고민에 빠졌다. 이 정보를 누구에게 알려야 할까?
기자? 아직 증거가 부족했다. 김부장? 너무 위험할 수 있었다. 가족? 걱정만 끼칠 뿐이었다.
그때 갑자기 최민호가 떠올랐다. 박현수 실종 사건을 처음 알려준 사람.
그리고 경찰이라서 이런 정보의 가치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
미쓰리는 휴대폰을 꺼내서 최민호의 번호를 찾았다.
손가락이 떨렸다. 이 전화 한 통이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었다.
'하지만 해야 해. 더 많은 사람이 사라지기 전에.'
벨이 두 번 울리고 최민호가 받았다.
"네, 최민호입니다."
"저... 미쓰리예요. 삼우건설에서 일하는..."
"아, 네! 갑자기 웬일이세요?"
"중요한 정보가 있어서 연락드렸어요. 박현수씨와 관련된..."
"정말요? 어떤 정보인데요?"
미쓰리는 심호흡을 한 후 말했다.
"박현수씨 외에도 실종되거나 연락이 두절된 사람이 더 있어요.
그리고 모두 3년 전 같은 현장에서 일했던 사람들이에요."
전화기 너머로 최민호가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 어디세요? 직접 만나서 얘기할 수 있을까요?"
"네, 가능해요."
"그럼 6시에 연도역 2번 출구 앞 스타벅스에서 만날까요?"
"알겠습니다."
미쓰리는 전화를 끊고 시계를 봤다. 5시 20분. 40분 후면 최민호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진실을 밝혀낼 첫 번째 단계를 시작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미쓰리는 아직 몰랐다.
멀리서 누군가가 자신의 모든 행동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누군가가 곧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라는 사실을.
창 밖으로 해가 지고 있었다.
하늘은 붉게 물들어 있었고, 미쓰리의 운명도 곧 완전히 바뀔 예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