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 중 이런 류의 유행에 민감해서 신종플루도 나만 혼자 했고 어른이 수족구에 걸릴 확률이 없다고 호언장담하던 딸아이 주치의 선생님도 할 말 없게 만들던 내가 3년간 잘 피해왔다.
이주 전 딸아이가 백신 3차 접종을 하고 고열로 힘들어해서 링거라도 맞으러 간 병원에서였을까?
잠복기가 있다고 했으니 회사 오시는 손님들 중 감염자가 있었나? 어차피 이제는 어디에서 걸렸나 모르니 그냥 걸렸구나! 드디어 내 차례인가? 하며 웃고 넘기자 했던 잘못된 마음 때문이었을까?
목이 아프고 두통과 근육통이 있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집에서 신속검사를 하니 음성이 나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병원에 가니 역시 음성. 그래 코로나는 나같이 집-회사 인 사람은 불쌍해서 피하나 보다 싶었다.
감기약을 처방받아 3일을 먹어도 낫지를 않는다.
월요일 딸아이의 등교 전 검사를 하던 남편이 당신도 해보자기에 검사했는데... 두줄이다.
"딸. 엄마 눈이 이상하니? 이거 두줄 아니야?"
"그런 것 같은데..."
"젠장. 비상이다. 하필 이렇게 바쁜 시기에.."
링거를 맞고도 열이 안 떨어져서 하루 집에 있기로 한 딸을 어머니와 두고 병원으로 가니 진료시간 전인데도 사람이 20명이 넘는다.
'설마 아니겠지. 내가 키트를 흔들어서 그럴 거야'
불안해하며 내 순서를 기다렸다.
"또 오셨네요? 아직 안 좋아요?"
"아침에 검사하니 두줄이라서요.."
의사 선생님의 민첩한 검사에 금방 대기실로 가 있는 동안 오늘 회사에서 처리해야 할 일들이 떠올라 두통이 심해졌다.
"역시 두줄입니다. 오늘부터 어쩌고 저쩌고..."
친절한 간호사 선생님의 말이 귀에 안 들어온다.
두 줄이라고 듣는 순간 열이 확 올라 현기증에 손발이 떨리고 구토감이 들었다.
약을 타려고 약국에 들어가 처방전을 내밀고 인사를 하는데 목소리가 내 목소리가 아니다.
이거 뭐지? 손가락이 베여도 모르고 있다가 피를 보는 순간 아파오는 것과 같은 건가?
집으로, 회사로 전화를 걸고 차에 타서 얼른 약 한 봉지를 먹었다.
집에 와서 시작된 나의 일주일 격리생활.
아니 시어머니의 며느리 사육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오전 10시.
집 앞에서 어머니께 집 앞이니까 방에 가 계시라고 한 뒤, 방으로 후다닥 들어갔다.
우리 집은 화장실 한 개에 방이 3개인 빌라다. 그중 작은 방을 우리 부부가 사용하고 있는데 내가 일주일을 버텨야 할 공간이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내 코로나 확진 소식에 간호사로 근무하시는 지인분이 전화 주셔서 물 많이 마시라고 신신당부하던데 화장실을 자주 갈 수 없어서 물은 약 먹을 때만 먹자 싶었는데 어머님이 노크를 하신다.
“밖에 물이랑 필요한 거 있다 갖고 들어가라”
“예. 감사합니다”
문을 열어보니 물 2리터 한 병과 화장지, 물티슈, 비닐장갑 등을 챙겨주신다.
내가 병원에 가 있는 동안 집 소독하시느라 정신없으셨을 텐데 나 챙겨주시려고 또 마트까지 다녀오셨나 보다.
약 기운이 퍼져서인지 눕자마자 잠이 들었는데 잠결에 웅성거리는 소리가 나서 깨니, 딸아이가 어머니랑 분주하다. ‘뭐 하는 걸까?’ 궁금해하는데 들려오는 노크소리.
“엄마 점심 먹을 시간이야. 일어나. 밖에 칼국수 있어.”
“응. 어머니 감사합니다.”
방문을 열어보니 빨간 플라스틱 바구니에 놓인 칼국수와 반찬들.
혹시나 모자랄까 싶어 밥까지 챙겨주셨다.
목만 아팠기에 잘 먹어야 낫는다는 말을 떠올리면 후다닥 먹고는 분리수거와 정리를 했다.
약을 먹고 또다시 기절. 들려오는 노크소리.
“엄마 간식 먹어.”
어릴 때부터 항상 간식을 챙겨 먹는 딸아이의 간식시간에 오늘은 나까지 포함되어서 얼마 전 비 맞으며 사온 고령 찹쌀떡과 요플레를 먹었다. 아파도 맛있는 건 맛있네.
즐거워하면서 노트북을 켜고 회사 업무를 좀 하고 있으려니 어머니가 오셔서 물으신다.
"커피 안 마시고 싶나? 한 잔 타 줄까?"
커피를 달고 사는 내가 커피 한 잔 못 마신 게 안타까우셨는지 큰 종이컵 한가득 커피를 끓여주셨다.
"예. 감사합니다."
'나는 참 시어머니 복이 많네. 근데 왜 나는 이리도 불평불만이었던 걸까?'
뜨거운 종이컵을 호호 불며 생각한다.
'역시 아파야지 철이 들고 성장하지. 사람이 아프면 그때서야 보이는 게 있다더니 나는 내 불평불만이 삶의 방해물이었던걸 깨닫네.'싶다.
세상에 며느리 커피 좋아한다고 일부러 스타벅스 (어머니 표현으로는 미친년 산발한 곳) 가서 같이 커피 마셔주는 시어머니가 또 계실까.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었네.' 커피로 기운을 차리고 회사 일을 해야겠다.
분명히... 일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대자로 뻗어 자고 있었나 보다. 노크 소리에 저녁이구나 싶었다.
이러다가 파블로브의 개가 되는 건 아닌지 웃음이 났다.
“엄마 국 뜨거워”
문을 여니 내가 제일 좋아하는 소고깃국이다. 아마 좋아하는 거 많이 먹고 빨리 나으라는 어머니의 마음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