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 사육 행성 3 (feat. 코로나)

시어머니는 외계인

by 흑곰아제

사육 셋째 날.

눈을 뜨니 집이 조용하다.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니 6시 반. 평소 같으면 지금쯤 남편이 출근 준비하느라 북적여야 하는데 싶어서 귀를 쫑긋거리며 밖을 염탐하니 안방에서 뉴스 소리가 난다. 이상해서 남편에게 카톡을 보내니 벌써 버스 타고 출근 중이니 걱정 말라며 답이 왔다.


평일 6시 반은 일어나 이불을 개고 밖으로 나가 어머니께 인사를 드린다. 그리고 바로 화장실로 가서 씻고 대충 스킨로션을 바른 뒤, 안방에 가서 자는 딸아이를 깨운 뒤 (깨운다기보다는 그냥 굴린다.) 이불을 들고 옥상으로 가 털어서 내려온다. 물론 비가 오는 날은 건조기에 넣어 이불 털기를 하지만 비 오는 날이 아니고서는 무조건 옥상으로 간다. 남편이 거실에서 게임을 하다가 잠이 든 날은 거실 이불도 들고 가서 옥상에 다녀오는 날이면 마음이 더 급하다. 청소기를 들고 이방 저 방 대충 먼지를 치우는 사이 어머니는 딸아이를 재촉하며 아침을 차려 주신다. 그때서야 어기적거리며 화장실로 들어가는 딸아이를 보며 옷을 입고 남편과 서둘러 출근을 했다.

매일 반복하던 일상이 조용하니 이상하다.

혹시나 내가 잠든 사이 남편이 잠결에 방으로 들어올까 봐 창문을 활짝 열어둔 덕에 누워서 보는 하늘이 무척이나 예쁘다. 6시 반. 이 시간이 이렇게 조용할 수도 있구나.


뭉그적 거리다가 딸아이의 노크소리에 일어 나앉았다.

“엄마 일어났어? 아침 먹어”

“응. 어머니 안녕히 주무셨어요. 아침 잘 먹겠습니다.”

KakaoTalk_20220408_093553948.jpg 사육 셋째 날 - 아침

인사를 하며 갖고 들어온 아침은 역시 어제 먹었던 미역국. 매일 미역국만 먹으라고 해도 행복할 것 같다.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국을 한 숟가락 떠서 입안에 넣는데.. 맛이 이상하다. 아니.. 아무 맛이 없다.

‘뭐지?’싶어 다시 한 숟가락. 아무 맛이 없다. 그리고 보니 미역국의 짭조름한 내음도 없다. 어머니가 반찬으로 챙겨주신 김치를 들어 냄새를 맡았지만 아무 냄새도 안 난다.

“헐~” 내가 내뱉은 소리에 밖에서 딸아이가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어머니~저 장금이 되었어요! 미각을 잃었어요. 하하하하”

“뭐라고 하니, 아프지는 않나?”

미각과 후각을 잃은 것이 통증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내 상태가 걱정이 되셨는지 깜짝 놀라신다.

“그냥 목은 계속 아프고 어제저녁부터 기침이 좀 시작되었어요. 그것 말고는 괜찮아요.”

“어서 먹어라. 그래도 먹어야 빨리 낫는다”

“예.” 대답은 했는데 음식의 냄새가 없으니 식욕이 없다. 목이 아파서 밥을 삼키긴 힘들 것 같고 억지로 미역국에 주신 밥을 반 정도 말아서 대충 먹고는 치웠다. ‘남은 건 점심때 먹어야지.’


정신을 차리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니 회사에서 전화와 카톡이 수십 통이 와있다.

법인 결산과 적격심사 등으로 한 참 정신없을 시기에 딸랑하나 있는 여직원이 드러누웠으니 회사도 난리가 났다. 딸아이에게 노트북을 달라고 해서 사무실과 통화를 하면서 일을 하고 있으니, 딸아이를 등교시키고 오신 어머니께서 커피 마시고 싶지 않냐고 물으신다. 마시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차마 어머니께 ‘커피 끓여주세요’라는 말이 안 나와 꾹 참고 있었다. 번거로우실 텐데 싶어서 “괜찮아요. 이제 냄새도 못 맡아서 별 생각도 없어요.”하니 어머니 걱정이 한가득이시다.

“아이고, 커피도 안 마신 다카고. 니 곧 죽는 거 아니가?”

미각과 후각이 없다고 죽진 않지만 ‘커피를 못 마시면 죽을지도 모르겠다 ‘는 생각에 혼자 피식거리며 웃었다.


한참 일을 하다 보니 밖에서 어머니가 점심 준비를 하시는 소리가 났다.

“어머니 점심은 안 주셔도 돼요. 아침에 주신 거 아직 다 못 먹었어요 그냥 이거 먹을게요.”

“그럼 국이라도 더 줄게. 더 먹어”라며 미역국을 데워 주신다.

KakaoTalk_20220408_093553948_01.jpg 남겨둔 아침으로 먹은 점심

아마도 내가 좋아한다고 며칠 먹을 양을 해두셨을 테지.

아이를 낳기 전부터 기장 미역이라며 비싼 돈을 주고 미역을 구입해서 친정에 보내주셨었다. 그 미역으로 친정엄마는 소고기 미역국과 홍합 미역국을 끓여주셨는데 갑자기 엄마의 홍합 미역국이 먹고 싶어졌다. 친정엄마보다 시어머니가 음식 솜씨가 더 좋아서 엄마 음식이 먹고 싶다는 생각은 결혼하고 15년 만에 처음이었다.

‘아프니까 별게 다 먹고 싶네.’하면서 쳐다보던 미역국에 밥을 말았다.

역시 뭐든지 미역국은 좋아. 냄새가 나면 더 좋겠지만...

일을 하다가 눈물이 났다. ‘아픈 것도 아픈 건데 나는 왜 제대로 쉬지 못하고 이렇게 동동거리지?’싶어 서러웠다. 하던 일을 접고 한참을 멍하니 창밖을 보다가 잠이 들었다.


똑똑

‘저녁인가?’

“몸은 좀 어때? 맛이랑 냄새 못 맡는다면서? 다른 데는 괜찮아?”

저녁밥인 줄 알고 있어났는데(난 이미 파블로브의 개가 되었다) 남편이 퇴근해서 내 상태를 듣고는 걱정이

되었나 보다.

“괜찮아. 걱정 마” 그리고는 덜거덕 거리며 들어오는 저녁.


KakaoTalk_20220408_093553948_02.jpg 가지 덮밥

아이고, 어머니. 내가 잠든 사이 또 뭔가를 뚝딱하셨나 보다. 지난 주말 딸아이와 마트에 갔다가 가지가 보여서 샀는데 그걸로 가지 덮밥을 해주셨다. 내가 좋아하는 계란 프라이도 얹어주시고.

흐물흐물한 가지를 싫어해서 반찬으로 주시면 잘 안 먹었는데 굴소스와 소고기를 넣고 덮밥으로 해주신걸 잘 먹었던걸 기억하셨나 보다.

“입맛 없어도 다 먹어라. 남기면 안 돼”

“예. 잘 먹겠습니다.”

목이 아파서 음식을 넘기는 게 쉽지 않다. 무슨 향인지 맛인지 몰라 질겅질겅 씹히는 가지의 식감이 맘에 안 든다. 고소한 계란 프라이도 텁텁하기만 하고....

아무 맛이 없다. 그래도 먹어야 하나? 싶어서 깨작거리는데 밖에서 들리는 어머니의 목소리.

“쟈가 저리 안 먹으면 안 되는데, 큰일이네. 내일은 뭘 좀 해주야 되겠니?”

어차피 맛도 향도 못 느껴서 뭘 주셔도 크게 달라지진 않지만 기억해내야지.

어머니가 해주셨던 가지 덮밥의 맛과 향. 짭조름한 미역국의 맛, 고소한 계란 프라이.

그리고 새로 해주신 톳의 톡톡 터지는 바다의 향과 맛도. 기억 속 향과 맛으로 저녁을 마쳤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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