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는 외계인
어머니의 걱정 섞인 목소리에 힘을 내어서 간신히 대답하고 뜨끈한 누룽지를 먹었다.
며칠 전 저녁 콩나물밥을 해주셨는데 솥밥을 하시면서 일부러 누룽지를 만드셨다.
요즘같이 날씨가 오락가락할 때는 혼자 계시는 시간에 점심을 드시기 귀찮으시면 누룽지를 삶아서 드신다고 했다. 어릴 적 장티푸스를 앓아 흰 죽만 몇 달을 먹어 죽이라면 손사래 치시는 어머님이 유일하게 드시는 죽이다. (누룽지를 삶은 것을 죽이라고 표현하기는 애매하지만..)
목이 아픈 내가 걱정이 되어서 냉동실에 들어있던 누룽지를 꺼내 아침에 부지런히 삶으셨나 보다.
맛을 못 느끼지 따뜻함 만으로 먹는 누룽지지만 좋다.
아침을 먹고 사무실에서 전화가 왔다. 말일이라 거래처에 결제를 해줘야 하는데 업체에서도 전화가 폭주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결제를 하려면 필요한 게 한, 두 개가 아닌데 생각나는 것을 적어 문자로 보내고 집으로 퀵서비스 요청을 하고 노트북을 켜 필요한 프로그램을 몇 개 깔고 있으니
집으로 서류가 도착했다. 어머니가 무슨 일인지 몰라 놀라서 문을 열고는 서류를 받아주신다.
"어머니 회사에서 일거리 온 거예요. 죄송한데 방문 앞에 주세요"
"아이고, 아픈데 일하라고 서류까지 보내고.. 사람을 잡는다 잡아. 이거 먹고 해라"
내가 일할 준비를 하는 사이 딸아이 등교시키고 운동까지 다녀오신 어머니가 점심이라고 챙겨주신 라면. 어머니는 라면을 안 좋아하시기에 집에 밥이 없어서 내 것만 주신건 가 싶었다.
"어머니 드실 거는 있어요? 어머니도 라면 드세요?"
"아이다. 아침에 먹고 남은 누룽지도 있고 식은 밥도 있다. 목 아플 때는 따뜻한 거 먹어야 하는데
국 끓여줄까?"
"아니요. 라면 좋아요. 잘 먹겠습니다.
혹시나 내가 라면을 먹기 싫어서 그러나 싶어 어머니가 국을 끓일 준비 하시는걸 간신히 말리고
앉아 후루룩 거리며 라면을 먹었다. 오래간만에 어머니가 해주시는 라면이 아무 맛이 안 느껴져서 슬프다. 와우~ 계란까지 들어가 있는 라면이라니... 감격이다.
남편과 나는 회사가 가까워서 출퇴근을 함께 한다. 남편과 퇴근하고 돌아오면 항상 따뜻한 밥과 국으로 저녁을 챙겨주신다. 무척 고마운 일이다.
결혼한 친구들은 퇴근 후 허둥지둥 저녁 준비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아이들을 챙기면 쓰러져 잠드는 게 일상이라고 하는데 난 퇴근하면 어머니가 해주신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마치고선 책을 읽으면서 어머니와 시간을 보내던지 아이 숙제를 봐주면서 시간을 보낸다.
어머니 말씀처럼 내가 시집살이 사는 게 아니라 어머니가 며느리 살이 하고 계신지도 모르겠다.
점심 약을 먹고 나면 졸릴 것 같아서 약을 안 먹고 일을 했다.
거래처에 송금을 하려면 증권계좌에 돈을 입금받아야 했기에 증권 회사에 전화를 걸어 입금을 요청하니 담당자가 "혹시 새로 오셨나요?"라며 궁금해한다.
"예?" 나는 이유를 몰라 반문하니 다시 "새 로오 셨어요? 이 과장님은 안 계세요?"라고 묻는다.
그제야 내 목소리가 변했다는 걸 깨달았다.
"아! 저예요. 저 지금 코로나 때문에 격리되어서 제 개인 폰으로 전화드렸어요. 목소리가 완전히 갔어요! 하하하"
"어머! 죄송합니다. 바로 송금드리겠습니다."라며 무안해하며 전화를 끊는다.
'하하하. 내 목소리가 그렇게 다르게 들리나?'싶으면서도 이것도 재미난 추억이다 싶어서 웃음이 난다.
몇 시간 일을 하는 사이 약을 안 먹은 탓인지 몸이 덜덜 떨리고 열이 올랐다.
이를 악물고 일을 마치고는 사무실과 통화를 하고 약을 먹고는 바로 기절.
눈을 뜨니 언제 왔는지 남편이 씻고 나오는 소리와 딸아이와 어머니의 대화가 들렸다.
남편이 문을 두드리며 회사일에 약을 안 먹고 일한 내게 화를 내면서 회사를 원망했다.
"진짜 해도 해도 너무한다. 아픈 사람한테... 빨리 먹고 약 먹어."
"응. 어머니 잘 먹겠습니다"
저녁은 어머님표 따끈한 떡만둣국이다. 멸치육수로 끓여주시는 떡국에 내가 좋아하는 만두까지 듬뿍 들어가 든든한 떡국.
쫄깃쫄깃한 떡국은 셋째 이모가 손수 만들어서 보내주신 거라 더 맛있다.
(난 방앗간 집 외손녀였다가 방앗간을 물려받은 셋째 이모 덕분에 방앗간 집 조카가 되어서 바쁜철에는 도움도 못되지만 엄마가 도와준다는 이유로 넉넉히 떡과 참기름 등을 얻어먹는다. 손이 큰 이모 덕분에 한 번씩 떡이 올 때면 박스째로 오기 때문에 같이 사는 이웃분들과 시이모님 댁까지 나눠드리고도 남아 남편이 결혼 후 떡이라면 고래를 절레절레 흔든다.)
아~ 맛있는 떡만둣국! 신나서 숟가락을 들고 몇 숟가락 먹다가 알게 되었다.
만두가 한 개도 안 들어있다. 만두가... 내가 좋아하는 만두가... 없다.
밖에선 분명 뜨거운걸 못 먹는 딸아이에게 남편이 앞접시를 주면서 만두는 건져두고 먹으라며 대화하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어머니.... 저 만두가 없어요.
만두 한 개만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