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 사육 행성 8 (feat. 코로나)

시어머니는 외계인

by 흑곰아제

새벽 12시.

이 시간이 될 때까지 문 밖에 나가서 환호를 지를 생각에 잠도 안 자고 버티고 있었다.

11시 58분.

11시 59분.

12시.

"와~~~~ 저 격리 해제예요" 하며 문을 벌컥 열고 나갔는데 늘 새벽까지 게임을 하던 남편은 어쩐 일인지 일찍 자고 안방도 불이 꺼진 채 조용하다.

아, 나만 기다리던 시간이었나. 괜스레 서운 한 마음에 이 방 저 방 한 바퀴 돌고는 후다닥 들어왔다.

'나도 내일부터 출근이니까 이제 빨리 자야지.' 근데 잠이 안 온다.

아..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이 너무 좋아서 계속 손잡이를 잡고 싶다.


출근 전 검사를 해보니 아직도 희미한 두 줄.

마스크 두 개를 꺼내서 끼고 비닐장갑을 꺼내서 주머니에 넣고 출근을 했다.

KakaoTalk_20220408_093730411_01.jpg 출근 전 검사. 아~ 역시 두 줄

일주일 만에 출근한 내 책상은 서류들이 쌓여 산을 이루고 있었다. 이걸 언제 다 하나..... 한 숨이 나온다.

차에서 먹던 커피와 전날 먹고 남은 탄산수를 들고 왔지만 오늘은 마스크를 벗지 못할 것 같다.

아침에 두줄이 나온 검사 키트가 자꾸 눈에 아른거린다. (정말 화장실도 못 가고 일했다.)

KakaoTalk_20220412_135722925.jpg 일이 쌓였다ㅠㅠ

어쩔 수 없이 하루 종일 쫄쫄 굶고 집에 오니 어머니가 머위잎을 쪄 놓으셨다. 짭짤하게 끓인 짜글이 된장에 찍어서 먹으면 밥도둑이 따로 없다. 근데 맛을 못 느끼니 아쉽다.

북엇국을 뜨면서 계란이 내게 많이 올라왔다. 역시 아프면 좋다. 내가 없으니 반찬이 안 줄어서 먹다 남은 반찬들이 한가득이다. 분명 내가 격리되기 전에 올라오던 반찬들인데. 김치찌개 남은 것을 들고 방으로 왔다.

격리는 해제되었지만 삼 일간은 조심해야 한다며 남편이 따로 격리 요청을 한 것이다.

조심해서 나쁠 것 없으니까 나도 쟁반에 밥을 담아서 들고 들어왔는데... 생각해보니 밥그릇 국그릇 , 심지어 수저세트도 똑같은데 이걸 어떻게 내가 먹었다고 구분하지? 걱정이다.

KakaoTalk_20220408_165315746.jpg 머위 잎과 짜글이 된장.

걱정이 되어서 빈 그릇을 들고 나오면서

"어머니 설거지하고 그릇 삶을까요? 소득 해야 할 것 같은데요." 하니, 식초물에만 담궈만 놓으라신다

비린 음식을 먹는 날에는 늘 그릇을 식초물에 담그는데 식초에 소독 효과도 있으니 삶는 번거로움이 없어도 되고 좋다. (하지만 불안하셨던 어머니는 다음날 그릇과 수저세트를 모두 삶으셨다)


해방은 되었지만 아직은 가족들과 함께 있기 불안해서 설거지를 마치고 다시 방으로.

방에서는 마스크를 벗을 수 있어서 나도 조금은 숨쉬기가 편하다.

아직 돌아오지 않은 미각과 후각 그리고 두통. 인후통. 기침. 가래로 병원에 전화하니 후유증은 한 달이 넘어야지 조금씩 나아질 것 같단다.

아이고. 한 달간 어머니 해주시는 맛있는 음식들을 그냥 씹기만 해야 한다니.


그래도 문을 열고 나가도 된다는 기쁨에 계속 들락날락하고 있으니 안방에서 들리는 어머니의 호통 소리.

"그만 왔다 갔다 해라. 보살 소쿠리 쥐새끼처럼 들락날락 정신없다. 시끄럽다. 그냥 들어가 자라!"

"예.."

어머니의 호통에 왔다 갔다 못하고 다시 방에만 갇힌 내가 불쌍했는지 남편이 빨리 나아서 거실에서 놀란다.

누굴 놀리는 건지?!


당분간 회사일로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쁠 테니 오늘은 일찍 자야겠다.

진짜 낫기만 해 봐라. 거실에서 상주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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