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는 외계인
이날이 오긴 오는구나. 드디어 격리 마지막 날.
일요일이라 가족들 모두 아침에 분주하다. 앞서 [늦잠이 없는 행성]에서도 쓴 적 있지만, 우리 집은 주말에도 오전 6시에 전원 기상이다. 잠귀가 예민한 딸아이는 어머니와 한 방을 쓰는데 어머니가 일어나시면 같이 일어나서 돌아다닌다. 이제는 컸다고 일어나자마자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지만...
일어나서 늘 티타임을 갖는데 오늘은 커피 애호가이자 집안의 바리스타인 내가 파업 아닌 파업 중이라 티타임은 없나 보다. 컨디션이 아직도 안 좋은 건 내가 원래 체력과 면역력이 떨어져서일까? 나만 독한 코로나에 걸린 건 아닐 텐데 왜 이렇게 맥을 못 추는지 모르겠다.
눈을 뜨니 7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와~ 개꿀" 이것이 몇 년 만의 늦잠이란 말인가.
격리 해제되면 이불이랑 방 소독을 하려고 했는데 내일 바로 출근이라 이불을 개 놓고 남편에게 카톡을 보냈다.
"나 오늘 이불 빨려고 하는데 어머니랑 애 데리고 운동 좀 다녀와요."
"응."
어머니가 아침으로 김치죽을 해주셨다. 너무 맛있는 김치죽인데... 아무 맛이 없으니 뜨겁기만 하다.
경상도에서는 '갱시기'라고 부르는데 남편은 이 갱시기가 돼지죽도 아니고 사람 먹는 음식이 아닌 것 같아서 기분이 나쁘다며 안 먹는다. (은근히 입맛이 까다로운 남편이다.)
아~ 나만 많이 먹어야지.
며칠 전부터 입안이 자꾸 헐어서 이것도 코로나 후유증인가 걱정을 했는데 오늘 갱시기를 먹으면서 알게 되었다.
플라스틱 숟가락이 날카로워서 입안을 자꾸 긁는 거였다.
사용하던 숟가락은 매일 소독을 해야 하니 플라스틱 숟가락을 일부러 사 온 건데 자꾸 입 안을 아프게 한다.
이건 해제되고 나가면 어머니와 딸아이에게 사용금지를 내려야겠다.
남편이 어머니와 딸아이를 데리고 운동을 하러 간 사이 마스크 두 개와 비닐장갑으로 중무장을 한 후 이불 빨래를 위해 베란다로 이동하는 짧은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 방에서 나온 것뿐인데도 이렇게 행복하다니 내일부터 출근을 위해서 긴 하지만 외출을 하면 얼마나 행복할까.
혹시나 모르니까 얼른 세탁기만 돌리고 후다닥 방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책 읽기를 얼마나 미뤄뒀는지, 오늘은 책을 좀 읽어야지.' 하는 생각이 드는 걸 보니 정신을 차리고 있나 보다. 딸아이 친구 엄마가 책을 내셔서 구입해서 읽었다. 많은 책을 읽으셨고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지만 유독 눈에 들어왔던 책이었기에 꼭 읽어야지 했는데, 책을 손에 쥐고 잠들었다. (코로나 약은 수면제인가?)
"점심은 뭐 먹을래?"
"그냥 있는 거 먹지요."
"그러든지"
밖에서 어머니와 남편이 점심 메뉴를 얘기하는 소리가 들리기에 남편에게 저녁으로는 시켜먹자고 얘길 했다.
그럼 오늘 점심은 있는 반찬으로 후다닥 먹어치우자.
점심은 집에 있던 어머니표 반찬들과 내가 좋아하는 조미김이다. 국이 없어서 어쩌냐며 미안해하시는 어머니께 국 없이도 이제 잘 먹는다고 안심은 시켜드렸지만 국 없이 먹으려니 너무 힘들었다.
이래서 어머니가 삼시세끼 국을 주시는구나. 항상 "입안이 깔끄럽다"셨는데 난 이해를 못 했었다.
'밥은 그냥 먹어도 꿀떡꿀떡 넘어가는데 왜 드시는 게 힘들지?' 싶었는데 이제는 이해가 된다.
나중에 내가 어머니께 삼시세끼 차려드리는 날에는 꼭 따끈한 국 올려드려야지.
오늘은 간식이 올 때까지 졸지 않고 있었다. (와우~)
내가 마트를 못 가니 집에 과일이 동이 났나 보다. 전주에 남편이 좋아하는 파인애플을 한통 사 왔는데 난 파인애플이 싫어서 안 먹고 있었는데 간식으로 파인애플을 주신다. 너무 신맛이 많고 그만큼의 단맛이 있어서 싫어하는 과일이다. 그래도 나 생각해서 주신 거니까 맛있게 먹어야지. 근데 파인애플과 두유는 너무 신박한 조합이다. 어울리지 않는 이 궁합. 우선 파인애플만 먹어치우는 걸로. 두유는 keep.
저녁 메뉴는 뭐가 좋을까? 뭐 먹고 싶냐는 남편에게 딱히 먹고 싶은 게 없었기에 아무거나라고 했더니 배달된 치킨.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옛날 통닭으로 시켰나 보다. 근데 치킨을 날 다 준 건가? 한 박스에 가득이다.
어머니 좋아하시는 윙봉 세트랑 감자튀김도 시켰는데. 왜 전부... 여기 있지?
"나 다 준 것 같은데 식구들 먹을 거는 있어?"
"응 우리 집에서 닭고기 너만큼 먹는 사람 없어. 그냥 다 먹어."
아~ 생각해보니 남편은 닭고기를 별로 안 좋아한다. (이해불가) 어머니는 닭 날개 몇 개 드시면 배부르다고 손 놓으시고 어릴 때부터 조기교육(?)으로 닭다리가 제일 맛있는 부위라고 배운 딸아이도 닭다리 부여잡고 뜯고 나면 감자튀김 조금 먹다가는 안 먹는다. 참고로 조기교육은 남편과 내가 닭가슴을 좋아해서 아무도 먹지 않는 닭다리를 맛있는 거라고 우긴 거다. 그래서 집에서 항상 닭다리 두 개는 자기 것이었는데 친구 생일파티에 초대받아갔다가 다른 친구들이 닭다리를 먹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는 얘기에 웃었던 기억이 나서 혼자 먹는 만찬이 즐겁다. 그래도 빨리 가족들과 한 상에 앉아서 두런두런 얘기하면서 밥을 먹고 싶다.
밥을 먹고 탄산수로 입가심을 하고 있었는데 남편이 검사 키트를 주면서 해보란다.
"이거 몇 달은 나온다던데... 죽은 바이러스가 있어서.."
"그래도 해봐"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검사를 해보니 흐릿한 줄이 보인다.
역시 죽은 바이러스가 아직은 내 안에 있나 보다.
이래서는 당분간 함께 밥은 못 먹겠다.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