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 사육 행성 7 (feat. 코로나)

시어머니는 외계인

by 흑곰아제

이날이 오긴 오는구나. 드디어 격리 마지막 날.

일요일이라 가족들 모두 아침에 분주하다. 앞서 [늦잠이 없는 행성]에서도 쓴 적 있지만, 우리 집은 주말에도 오전 6시에 전원 기상이다. 잠귀가 예민한 딸아이는 어머니와 한 방을 쓰는데 어머니가 일어나시면 같이 일어나서 돌아다닌다. 이제는 컸다고 일어나자마자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지만...

일어나서 늘 티타임을 갖는데 오늘은 커피 애호가이자 집안의 바리스타인 내가 파업 아닌 파업 중이라 티타임은 없나 보다. 컨디션이 아직도 안 좋은 건 내가 원래 체력과 면역력이 떨어져서일까? 나만 독한 코로나에 걸린 건 아닐 텐데 왜 이렇게 맥을 못 추는지 모르겠다.

눈을 뜨니 7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와~ 개꿀" 이것이 몇 년 만의 늦잠이란 말인가.

격리 해제되면 이불이랑 방 소독을 하려고 했는데 내일 바로 출근이라 이불을 개 놓고 남편에게 카톡을 보냈다.

"나 오늘 이불 빨려고 하는데 어머니랑 애 데리고 운동 좀 다녀와요."

"응."

어머니가 아침으로 김치죽을 해주셨다. 너무 맛있는 김치죽인데... 아무 맛이 없으니 뜨겁기만 하다.

경상도에서는 '갱시기'라고 부르는데 남편은 이 갱시기가 돼지죽도 아니고 사람 먹는 음식이 아닌 것 같아서 기분이 나쁘다며 안 먹는다. (은근히 입맛이 까다로운 남편이다.)

KakaoTalk_20220408_093724438.jpg 라면이 들어간 갱시기

아~ 나만 많이 먹어야지.

며칠 전부터 입안이 자꾸 헐어서 이것도 코로나 후유증인가 걱정을 했는데 오늘 갱시기를 먹으면서 알게 되었다.

플라스틱 숟가락이 날카로워서 입안을 자꾸 긁는 거였다.

사용하던 숟가락은 매일 소독을 해야 하니 플라스틱 숟가락을 일부러 사 온 건데 자꾸 입 안을 아프게 한다.

이건 해제되고 나가면 어머니와 딸아이에게 사용금지를 내려야겠다.


남편이 어머니와 딸아이를 데리고 운동을 하러 간 사이 마스크 두 개와 비닐장갑으로 중무장을 한 후 이불 빨래를 위해 베란다로 이동하는 짧은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 방에서 나온 것뿐인데도 이렇게 행복하다니 내일부터 출근을 위해서 긴 하지만 외출을 하면 얼마나 행복할까.

혹시나 모르니까 얼른 세탁기만 돌리고 후다닥 방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책 읽기를 얼마나 미뤄뒀는지, 오늘은 책을 좀 읽어야지.' 하는 생각이 드는 걸 보니 정신을 차리고 있나 보다. 딸아이 친구 엄마가 책을 내셔서 구입해서 읽었다. 많은 책을 읽으셨고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지만 유독 눈에 들어왔던 책이었기에 꼭 읽어야지 했는데, 책을 손에 쥐고 잠들었다. (코로나 약은 수면제인가?)


"점심은 뭐 먹을래?"

"그냥 있는 거 먹지요."

"그러든지"

밖에서 어머니와 남편이 점심 메뉴를 얘기하는 소리가 들리기에 남편에게 저녁으로는 시켜먹자고 얘길 했다.

그럼 오늘 점심은 있는 반찬으로 후다닥 먹어치우자.

KakaoTalk_20220408_093724438_01.jpg 김은 사랑이다

점심은 집에 있던 어머니표 반찬들과 내가 좋아하는 조미김이다. 국이 없어서 어쩌냐며 미안해하시는 어머니께 국 없이도 이제 잘 먹는다고 안심은 시켜드렸지만 국 없이 먹으려니 너무 힘들었다.

이래서 어머니가 삼시세끼 국을 주시는구나. 항상 "입안이 깔끄럽다"셨는데 난 이해를 못 했었다.

'밥은 그냥 먹어도 꿀떡꿀떡 넘어가는데 왜 드시는 게 힘들지?' 싶었는데 이제는 이해가 된다.

나중에 내가 어머니께 삼시세끼 차려드리는 날에는 꼭 따끈한 국 올려드려야지.


오늘은 간식이 올 때까지 졸지 않고 있었다. (와우~)

내가 마트를 못 가니 집에 과일이 동이 났나 보다. 전주에 남편이 좋아하는 파인애플을 한통 사 왔는데 난 파인애플이 싫어서 안 먹고 있었는데 간식으로 파인애플을 주신다. 너무 신맛이 많고 그만큼의 단맛이 있어서 싫어하는 과일이다. 그래도 나 생각해서 주신 거니까 맛있게 먹어야지. 근데 파인애플과 두유는 너무 신박한 조합이다. 어울리지 않는 이 궁합. 우선 파인애플만 먹어치우는 걸로. 두유는 keep.

KakaoTalk_20220408_093724438_02.jpg 파인애플~

저녁 메뉴는 뭐가 좋을까? 뭐 먹고 싶냐는 남편에게 딱히 먹고 싶은 게 없었기에 아무거나라고 했더니 배달된 치킨.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옛날 통닭으로 시켰나 보다. 근데 치킨을 날 다 준 건가? 한 박스에 가득이다.

어머니 좋아하시는 윙봉 세트랑 감자튀김도 시켰는데. 왜 전부... 여기 있지?

"나 다 준 것 같은데 식구들 먹을 거는 있어?"

"응 우리 집에서 닭고기 너만큼 먹는 사람 없어. 그냥 다 먹어."

아~ 생각해보니 남편은 닭고기를 별로 안 좋아한다. (이해불가) 어머니는 닭 날개 몇 개 드시면 배부르다고 손 놓으시고 어릴 때부터 조기교육(?)으로 닭다리가 제일 맛있는 부위라고 배운 딸아이도 닭다리 부여잡고 뜯고 나면 감자튀김 조금 먹다가는 안 먹는다. 참고로 조기교육은 남편과 내가 닭가슴을 좋아해서 아무도 먹지 않는 닭다리를 맛있는 거라고 우긴 거다. 그래서 집에서 항상 닭다리 두 개는 자기 것이었는데 친구 생일파티에 초대받아갔다가 다른 친구들이 닭다리를 먹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는 얘기에 웃었던 기억이 나서 혼자 먹는 만찬이 즐겁다. 그래도 빨리 가족들과 한 상에 앉아서 두런두런 얘기하면서 밥을 먹고 싶다.

KakaoTalk_20220408_093724438_03.jpg 본가 옛날통닭

밥을 먹고 탄산수로 입가심을 하고 있었는데 남편이 검사 키트를 주면서 해보란다.

"이거 몇 달은 나온다던데... 죽은 바이러스가 있어서.."

"그래도 해봐"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검사를 해보니 흐릿한 줄이 보인다.

역시 죽은 바이러스가 아직은 내 안에 있나 보다.

KakaoTalk_20220408_093730411.jpg 죽은 바이러스가 함께한다

이래서는 당분간 함께 밥은 못 먹겠다. 슬프다.


제목을 입력해주세요_-001.jpg
keyword
이전 06화며느리 사육 행성 6 (feat. 코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