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 사육 행성 10 (feat. 코로나)

시어머니는 외계인

by 흑곰아제

격리 해제 후 3일이 지났다. 열흘간의 사육이 끝나고 마지막 혼밥이다.

회사에서는 몰래 숨어서 커피 마시고 차마 점심은 같이 먹을 수 없어서 출근길 편의점에서 구운 계란을 사서

주차해둔 차에서 먹고, 퇴근하면서 앉았던 자리와 사무실 군데군데 소독약을 뿌렸다.

며칠을 조심해서 일까? 아직 나에게 옮아서 코로나에 걸렸다는 직원은 없다.

(직원이 몇 안 되는 것이 이럴 때는 좋다)


퇴근길.

남편이 저녁 메뉴가 뭘지 궁금해하면서 딸아이에게 카톡을 보냈다.

"딸! 조용히 보고하라"

"음... 몰라! 근데 뭔가 채소가 많아"

"채소라... 뭘까?"

궁금해하며 집에 들어가니 미꾸라지로 만든 추어탕이 기다리고 있다.

KakaoTalk_20220413_111649440.jpg 미꾸라지 추어탕

'추어탕이 전부 미꾸라지로 만들지 왜 꼭 강조하는가?' 궁금하신 분들도 계실 텐데, 내가 생선류를 안 좋아해서 몰랐던 사실이 있는데 추어탕 식당에서 파는 것 중 잡어(이것저것)로 만든 추어탕도 있고 경상도 쪽에서는

고등어로도 추어탕을 만들어 먹는다.

예전에는 청도 쪽에 몇 군데 식당이 있었다고 하는데 요즘은 고등어 추어탕을 맛보기 힘든 건 사실이다.

난 원래 비린 음식을 안 좋아해서 어머니 표현에 의하면 '네 발 달린 짐승만 처먹는 사람'이지만 어머니가 해주시는 음식은 억지로라도 먹어야 하기에 어머니표 고등어 추어탕을 맛본 적이 있다.

미꾸라지로 만든 추어탕은 깔끔한 느낌이고 고등어 추어탕은 기름이 많아서 좀 더 고소한 맛이 많다.


청도 장날에 맞춰 추어탕 재료로 쓸 미꾸라지를 사러 다닌다.

어머님의 '원산지 확인' 주의를 지키기 위해 멸치는 남해로, 문어나 기타 제사에 사용할 생선은 죽도시장까지 가서 구입하기에 청도는 먼 축에도 못 낀다.

요즘은 양식이 많아서 구입할 때 잘 봐야 한다. 미꾸라지 배가 노란색이면 양식이 아닌 거라고는 하시는데

나는 사실 잘 모르겠다. 요즘 양식 아닌 게 있나?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난 추어탕이 싫다. 아무리 안 난다고 해도 비린내가 나기에 싫다.

그리고, 어머님의 제피 사랑. 후추도 좋아하지 않는 내게 제피는 정말이지 고역이다.

입에 들어가는 순간 콧물과 눈물이 줄줄 흐른다. 싫다는 내게 '음식도 먹을 줄 모른다'며 타박이시지만

나는 싫다. 남편은 제피를 넣으면 비린내가 덜 나니 넣으라며 내게 제피를 건네주지만 난 무조건 패스.

차라리 비린내 맡고 참는 게 낫지. 제피는 정말 답이 없다.

다른 지역에서도 제피를 먹는지 모르겠지만, 회도 싫어하는 내가 추어탕을 먹는 것만으로도 진짜 나 스스로 기특하다. 그러니 더는 강요하지 말라고 딱 잘라 말하고서야 내 주변에서 제피가 사라졌다.

(물론, 아직도 제피를 권하긴 하신다.)


코로나 격리 7일, 그리고 자발적 격리 3일.

격리 기간 동안 삼시 세 끼와 간식까지 챙겨 주시고 심지어 며느리 좋아한다고 커피까지 끓여서 챙겨주신 어머니.

자발적 격리 3일간은 설거지 한 뒤 모든 그릇을 삶고, 출근 뒤 소독까지 하느라 힘드셨을 테니 어머니의 잔소릴 웃고 넘기자 싶어도 역시나 다시 시작된 어머니의 사소한 잔소리와 구박에 슬슬 스트레스가 쌓이기 시작한다.


나도 안다. 출근을 한다는 이유로 집안일에서 얼마 자유로운지 말이다. 하지만 어머니 좋아하시는 둘째 형님도 집에서 음식을 안 하고 반찬가게에서 사 드신다는데 왜 이건 이해를 못 해주시는지 섭섭하다.

못하는 거 인정해주시고 잘하는 거 칭찬해주시면 감사할 텐데. 이건 나의 너무 큰 욕심인가?

아마, 어머니는 못하는 거 배우고 잘하는 거 더 잘하길 바라실 테지.

어머니의 행성에 이주한 지 15년.

20년, 30년이 되어도 어머니와 나의 관계는 가까워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딸 같은 며느리는 없다시던 어머니가 딸 같은 며느리를 요구하시고, 시어머니나 친정엄마나 같다던 나는 '시'자는 역시 다르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을 테니까.

그래도,

집안일 못하는 내게 하나라도 알려주시려고 매번 포기를 않는 어머니가 감사하고,

삼시세끼 제철음식으로 나와 식구들을 살찌워 주시는 어머니가 감사하다.

철없는 며느리라 죄송하고, 집안일 무능력자인 며느리라 죄송하다.

언젠가는 어머니가 집안일을 못하실 때쯤이면 지금까지 해주신 만큼은 아니더라도 반의 반만이라도

꼭 돌려드려야지. 그땐 꼭 내 잔소리는 빼고 좋은 것만 드려야지.


어머니와 나의 가까워지지 못할 거리가 태양과 사라진 명왕성만큼의 거리가 아닐까?

그래도 같은 거리로 항상 같이 하다 보면 익숙해지는 만큼 서로가 소중해지겠지

허리 꼿꼿하게 펴고 걸어가는 100세 시어머니와 지팡이 짚고 따라가는 80세 며느리가 나오는 다큐멘터리가

어쩌면 우리 집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다.


미워도 고와도 타 행성에서 온 나를 조금은 이뻐해 주실 날이 오겠지.

살던 행성을 떠나와 적응 기간을 보내고 있는 나도 언젠가는 적응이 완료되는 날이 올 테고.


그때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어머니!


제목을 입력해주세요_-001.jpg










keyword
이전 09화며느리 사육 행성 9 (feat. 코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