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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걷는다

걷기의 행복

by 둥이

나는 걷는다의 저자 베르나르올리버에는 걷기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 한다.

"(...) 대부분의 스포츠와 달리 마라톤은 몇몇 챔피언을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들을 이기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35km를 달리고 나서 몸이 이제 더는 못하겠다고 비명을 지를 때 그리고 고통스러워하는 근육의 양분을 공급하기 위해 지방을 분해하는 복잡한 화학작용이 몸속에서 일어날 때 주자는 자신의 머리와 장 속에서 고갈된 에너지를 찾는다. 바로 이러한 뇌의 회전과 장의 회전이 결합되어 이를 악물고 뛰어 감으로써 그는 소중한 몇 초를 벌 수 있는 것이다. 42km를 뛰어 근육이 마비 되버린 마라토너는 결승선을 넘어섰을 때 비로소 크로노미터 매우 정확한 시계를 돌아본다. 그리고 행복은 바로 거기, 그가 단 축한 몇 초 안에 숨어 있다. 마라토너에게 어느 날인가 그를 훌쩍 추월할 수 있는 적수라고는 단 한 명뿐이다. 바로 자기 자신.

하지만 스스로를 넘어서려는 욕구가 걷고 또 걷는 행위의 모든 것을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물론 나는 좀 더 먼 곳 저 언덕을 넘어 이 마을을 지나서 저 고개를 넘어서 늘 더 푸른 풀을 발견하곤 한다. 하지만 나를 앞으로 떠미는 이 통제되지 않는 충동은 내가 애써 숨기려 하는 어떤 두려움과 뒤섞여 있다. 끝까지 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래서 수저노가 동전을 긁어 모으듯 일 킬로미터라도 더 모아두는 것이다. 한 걸음이라도 걸을 수 있는 한 그리고 배낭을 짊어질 힘이 있는 한 목표에 이르기를 갈망하면서 걷고 또 걷는다. 내게 주어진 이질 문은 내가 정한 것이기에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내게 시간 제약이 있는 것도 매일매일 도달해야 할 목표가 있는 것도 또 최소한 몇 킬로미터를 걸어야 한다는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매년 네 단계로 나누어 시안까지 걸어 가겠다는 목표가 있다. 하지만 일 년을 더 추가한다고 한들 뭐가 그리 중요하겠는가 짧게 보아서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하나뿐이다. 이 나라의 비자 만료기간 전에 이란 국경까지 도달하는 것 지금으로선 파리에서 세운 계획보다 늦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러니 좀 진정하자 진정하자 나는 스스로를 이렇게 타일렀다.(...)"

나는걷는다 1권 아나톨리아 횡단 P110

베르나르 올리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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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수

정확히 몇년도 인지는 기억에 안나지만 직장생활 초창기에 나는 하프 마라톤 10킬로미터를 뛰어 본적이 있다. 나는 이십대 후반이였고 이정도 거리는 무리 없이 뛸수 있을꺼라 근거없는 생각을 했었다.

나에게 마라톤 이란 관심밖에 운동이여서 왜 사람들이 그렇게 달리기를 하는지 도무지 알수가 없었다. 그래서 인지 기억을 뒤집어 보아도 군대를 제외하고 마라톤이나 달리기 혹은 수영 같은 근력과 지구력을 필요로 하는 운동을 스스로 좋아서 해본 기억이 없다. 이런 나에게 직장 초기에 동기들과 같이 참가한 하프 마라톤은 기념비적인 사건이 아닐수가 없었다.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별 부담없이 대회에 참가하였고, 그렇타고 마란톤을 참가하기 위해 특별히 무엇을 준비 한것도 없었다. 마라톤으로 늘어날 폐활량과 뜀박질로 파열될 근손상계 손실도 생각지 않았다. 마라톤이라면 그래도 짧은 반반지와 땀흡수가 잘되는 소재의 반팔 정도는 입어 줬어야 되거늘 싸늘 하다며 긴츄리닝 바지와 적당한 흰 면티와 보통의 운동화를 신고 대회에 참가했다.

대회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의 복장은 달리기에 적합해 보였다. 등번호를 받아서 앞뒤로 붙히고 나서야 조금은 긴장감이 들기 시작했다. 대회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 틈속에 끼여 동기들과 잡담을 하며 출발 했다. 그때 까지만 해도 몇시간후에 들이 닥칠 나의 신체적 변화와 극도의 체력적 한계에 대해서는 전혀 인식 하지 않았다.


"이것 쯤이야"

"말 그대로 하프 마라톤 이니까 사분의 일 정도의 거린데 무슨 준비를 따로 하단 말인가"

"앞 사람 가는 페이스에 맞추어서 뛰면 된다"


나는 속으로 걱정 스럽던 것들을 자문자답으로 가라 앉혔던듯 했다. 그렇게 삼십여분 정도 뛰었을까 나는 뛰는 속도가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 아직 반환점이 나오지도 않은 3키로이터를 지나고 있을때쯤 내 다리와 가슴은 후들거리기 시작했고 폐활량은 들숨 날숨의 발란스를 잃어 버리고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환자처럼 거친 숨소리를 토해냈다. 긴츄리닝 바지는 허벅지에 척척 감기듯 달라붙기 시작했고 땀을 흡수하기만한 두꺼운 면티는 무겁게 젖어들어 갔다.그보다도 문제인건 발에 착달라붙지 않는 운동화였다. 발사이즈 보다 조금 컸던 운동화는발가락 앞뒤로 돌아 다니며 급기야 쓰라리기 까지 해왔다. 그 순간 그 무엇보다 나에게 덥친 견딜수 없는 쓰나미는 신체적 변화나 감정의 변화가 아니였다. 그건 포기할지도 모른다든 두려움 이였다. 아니 포기하고 싶은 두려움 이래야 정확한 표현일듯 하다. 반환점을 돌고 나서부터는 그 두려움은 더 크게 몰려왔다. 만약 반환점이 없었다면 남은 거리에 대한 가늠이 힘들어서 무턱대고 버텨보자 했을수도 있겠지만 반환점을 돌고 나서의 신체적 변화는 남은 반을 어떻게 갈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만 남는듯 했다.


그때의 심정은 대강 이런듯 했다.

터질듯한 거친 호흡과 빨갛게 달아 오르는 얼굴

눈과 목덜미로 흘러내리는 땀방울

흐느적 거리는 팔과 다리

끊어질듯한 허리와 엉치뼈 의 고통

운동화에 짖눌린 쓰라린 발가락

남은 거리에 대한 두려움

앞서가는 주자들

줄어들지 않는 남은 거리

생각이 지워진 아무 생각없는 생각과

길옆을 늘어선 응원 하는 소리들

느리게 흐르는 시간과 초점없는 눈동자

포기하고 싶은,포기하자고 속삭이는 목소리


나의 한발작은 다른 한발작을 끌어 당겼고 종료시간이 지나고 그렇게 한시간이 지나서야, 정식적인 카운팅을 하지 않은 즉 대회가 종료된 시간에 난 피니스라인에 도착을 했다. 그래도 대회 관계자들은 포기하지 않았다며 메달을 주었다.

그 대회 이후로 난 마라톤 대회나 그 비슷한 어떤것에도 참가 하지 않았으며 흥미도 없었다.


뻔한 이야기지만 나의 적수는 나란것을 그때 다시 알게 되었다. 군대에서는 군중 심리상 할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리다 보니 어떻게든 그렇게 무리속에 섞여 도저히 할수 없을것만 같은 일들도 하게 된다.

살아 오면서 지금까지 나는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을 만나며 나와 실력이 비슷한 사람도 만났고 월등히 뛰어난 사람도 만났고 그렇치 못한 사람도 만났다. 그때 마다 그사람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혹은 직분에 걸맞는 사람이 되기위해 노력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늘 이겼던 것만은 아니다. 때론 스스로 인정하고 피한적도 있었고 때론 엇비슷한 무리속으로 자연 편입되어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자신을 알아가는게 인생이니까ᆢ하지만 늘 최고의 적수는 바로 나 라는걸 그리고 프로야구 최고의 타자가 3활대 인것처럼 나 역시 나와의 승부에서 3할 이하의 평범한 승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란걸ᆢ알아간다. 아무리 노력해도 승률이 오르진 않치만 포기할수 없고 피할수 없는곳에서 기다리는 또 다른 나를 오늘도 넘어보려 한다.

나의 적수 ᆢ

3할 타률을 위하여 ᆢ포기하지 않는다.


(나는 걷는다를 읽으며 문뜩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진정 한번 이라도 나를 넘어선 적이 있었던가를 체력의 한계를 극한까지 몰아붙인 적이 있었던가를ᆢ

나는 걷는다의 작가인 베르라르 올리비에는 걷기 시작한 터키 이스탄불과 시골길을 걸으며 마주치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 내가 들어가 있는듯 한 기분이 들었다. 무엇이 그를 걷게 했을까 가고자 하는 그곳에, 아니, 가는 그 과정을, 즉 걷는다는 일차원적인 이 동방법믈 사랑하지 않고서야 할수 없을듯 했다.

작가는 "걷는것은 조화로움을 만들고 또 자리잡게 한다"고 말한다. 또한 걸의며 만나는 사람들의 친절과 환대를 바라보며 "걷는것의 미덕이라면 바로 이런것이다" 라고 이야기한다.

발톱이 부서지고 고름으로 걷기 힘들어져도 작가는 걷기를 두려워 하지않는다.

지치고 힘들때마다 낮선길에서 길을 잃고 헤맬때 마다, 시골 마을에서 하룻밤을 묵어야 할때마다 만나는 모든사람들은 그를 환대하고 재워주고 치료해주었다. "짧았지만 소박한 행복으로 환히 빛나는 이 두남자와 만난것은 지친 내몸과 마음을 복돋아주는 소중한 시간 이였다."

"그들은 느긋하게 삶의 멋진순간을 누리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감고 그 시간을 즐겼다.

"내몸이 엄청난 양의 엔드로핀을 만들어 고통을 없애준 모양이다.")


코로나로 모든 일상이 멈춰선 3년전 부터 ᆢ

그때부터 난 걷는 즐거움에 빠져있다.

산책 하다 보면 하루 만이천보 정도 걷는다.

걷는 다는건 묘한 즐거움이 있다. 지금에서야 그 즐거움에 빠져 산다. 그마저도 감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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