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나 아침에 이빨 빠졌다
"아빠 나 아침에 이빨 빠졌다"
"아빠 이제 사과 먹을수 있어 내가 흔들어 뺐어"
두옥타브 올라가 마냥 기분 좋아 흥분하는 지완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또래 아이들이 제때 빠져 나가는 이빨도 고만한 아이들에겐 경쟁이 되는듯 했다. 아랫층 서준이의 앞니를 보고 온 지완이는 자기 이빨은 언제 빠지냐고 거울앞을 떠나지 않는다.
친구를 보며 이빠지는 속도를 조절하고 친구를 보며 외모 고민을 하기도 하고 사고싶은 무언가를 결정하기도 한다. 이빨이 빠진날은 더 많이 좋아하는듯 했다.
이빨이 빠져 나간 자리는 웃을때마다 까만 공터가 동굴처럼 휭하니 밖으로 드러났다. 빨간 핏기와 살핏줄이 잇몸 속에 돋아나 있었고 여린 살핏줄 아래에는 돋아날 흰싹이 올라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평생을 함께 해야할 영구치가 솟아나는 연녹색 새싹같다. 아이들은 영구치의 소중함을 알리없다. 엄마만이 이빨의 소중함을 알고 있기에 하루 3번 꼼꼼함과 정확성으로 아이들의 이빨닦기를 정검한다.
빛의 속도로 이빨닦기를 하는 두아이는 엄마 앞에 불려나가 동굴같은 입안을 쩍 벌린채 윗니 아랫니 혀바닥 검사를 받는다. 칫솔까지 들고와서 잘 씻어는지 하얀 치약거품이 남아있는지 검사받는다. 주완이의 빛의 속도는 엄마의 잔소리 덕분으로 나아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이빨닦기는 엄마의 교육 리스트중 우선시 되는것중 하나다.
우리도 그랬을테지만 아이에겐 이빨이 빠졌다는게 자랑해야 되는, 무언가 큰일을 해낸것 같은 벅찬 감동임엔 틀림없다. 빠진이빨을 거즈에 쌓아서 서랍장에 모셔둔다. 곧 어른이 될수 있다는 기대감과 친구들에게 보여 줄수있다는 자신감이 아이에겐 있는듯 했다. 숨길수 없는 감정은 아이의 발걸음과 입꼬리와 눈웃음으로 스며 나온다.
"아버지 저 이빨이 흔들려요"
"명주실 어딨냐 실폐 가지고 와"
아버지는 흔들리는 내 이빨에 하얀 실을 두어번 돌려 감았다. 아버지는 뒤로 주춤 주춤 물러서는 나의 어깨를 한손으로 잡아주셨다.
"이제 됐다. 탁하고 치면 빠질꺼야"
아버지는 아프다고 칭얼대는 아들에게 아픔을 느낄수 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큰일를 치르셨다. 방금전까지 잇몸에서 흔들렸던 하얀이빨은 어느새 허공으로 날아가 방바닥으로 떨어졌다. 아이에게 아버지는 명의이자 아라비안 나이트의 요술램프 지니 요정이였다.
하얀 이빨이 덩그러니 명주실에 매달린체 방구석에 놓여 있었다. 나는 이빨을 들고 봉당으로 나가 파란색 양철 지붕위로 던졌다. 빠진이빨이 파란양철 지붕위를 뎅그르르 소리치며 내려온다.
"까치야 까치야 헌이 줄께 새이 다오"
이빨이 빠질때마다 난 그 노래를 불렀다. 파란 양철 지붕위 어느 구석엔가는 내가 올려보낸 하얀 이빨이 신석기시대 유물처럼 쌓여 가고 있을거라 생각했다.
사람은 시간대만 다를뿐 크게 다르지 않을 기억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건 태어나 죽는것 만큼 당연한것이다. 나와는 크게 다를것 같은 기억도 막상 들여다보면 먹고 입고 만나고 살아가는 기억들 속에 긍극엔 닿아있다. 다르지 않다.
시간은 우리에게서 작은것 에서부터 빼앗아 가지만 이렇듯 사소한 것들을 가져다 줌으로 텅비어버린 감정의 흐름을 메어준다. 그것들은 행복의 정수를 느끼게 해준다.
사람은 때때로 눈앞에 보고 있는 사실과 기억을 잊어 버리고 잃어 버렸던, 전두엽에 저장되어 있는 사소한 일상의 기억들을 끄집어낸다. 그런 기억들은 남아있는 오후의 시간을 윤기있고 찰기있게 만들어준다. 지완이의 이빨은 내 유년의 기억을 봄날 화분 흙갈이 하듯 통채로 불러다 주었다. 그런 기억은 빛을 지우고 바람의 빛깔과 소리에 귀 기울이게 해준다. 파란 양철 지붕으로 스쳐가듯 불어오던 따뜻한 바람을, 그 바람의 빛깔을, 비릿한 바람의 냄새를ᆢ 잇몸에서 뽑혀나간 기둥뿌리에는 아직 핏기가 남아있는 아주 작은 하얀이빨이 가져다 주었다.
엄마의 살냄새(뇌속으로 가장 빨리 도착하는것은 시각보다 후각 즉 냄새라고 한다.우리는 눈을뜨기도 전에 엄마에 살냄새를 맡고 그 품에 안긴다 연약한 인간의 유아기가 길수록 민감한 후각은 적과 아군을 분별케 해주는 또하나의 시각이다 냄새로 각인된 모든것은 지워지지 않는다 지울수도 없다 뉴런이 강하게 잡고 있다 ) 와 이빨 빠질때의 어수선함과 첫 교복을 사러 갈때의 설레임과 아버지의 구두 뒷축이 닳아 헤어진것을 보고 두서없이 치밀던 울컥함까지ᆢ 이런 기억들은 비교적 선명하게 살아남아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지워지지 않는 그런 기억속에는 지워져 찾을수 없는 기억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을것이다. 왜 전두엽이 그것을 부여잡고 캄깜한 동굴속 뉴런들이 생성하고 소멸하는 질서속에서 버리고 취해야 하는 수많은 기억들중에서 ᆢ하필 왜 그 기억을 부여잡고 있는지는 이유가 있을것이다.
그런 기억들속 핵심 속에는 "내가" 서있어서 일거라 생각했다. 거기에 서있는 나라는 자아와 감정이 분명 혼자라는 정체성이 아닌 가족 혹은 친구 혹은 사물 혹은 장소속에 녹아들어 그것들과 같이 교감의 정체성으로 서 있어서 일거라 생각했다. 이빨이 빠진 그날 온 우주는 그 아이를 위해 박수쳐주고 기뻐하고 웃음을 함께 했을것이다. 그런 기억이래야 뉴런이 잡을수 있다.
주완이와 지완이는 쌍둥이 이지만
이빨 모양과 크기 촘촘함 빠지는 시기 아주 사소한것 에서부터 같은게 거의 없다. 주완이는 이빨 빠지는거에 거의 신경을 안쓰는 반면에 지완이는 친구들의 이빨이 몇개 빠지기라도 하면 그 좋은게 왜 나는 안될까 하며 투정 부린다. 가끔은 멀쩡한 이빨까지 손가락으로 만지작 거린다. 커가면서 이빨이 빠지는것만큼 선명한 성장 발육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사람은 이빨이 빠질까 왜 유치가 빠지고 영구치가 나올까 질문에 차서가 없다. 동어반복적인 결론엔 알고싶은 궁극의 본질은 찾을수 없다. 그냥 그게 그런것이여서 그렇다는 사전식 정의만 있을뿐이다.
우리들에게 그런 시간은 묘하게 느리게 흘러간다. 아윈슈타인의 상대성원리가 다른데 있는게 아니다. 시공간을 넘어선 지점의 시간은 느리게 흘러서 노화의 속도도 달라진다고 한다.
선명한 기억속에 느린 시간대가 계속해서 아이들에게 찾아 주기를 기도해본다.
할일 많은 뉴런이 확실하게 잡을수 있는 아름다운 기억을 많이 만들며 살아가기를 기도해본다.
"아빠 나 이빨 빠졌으니까 맛있는거 사줘"
"스테이크 먹자 아빠 "
그날 저녁 빠져 버린 앞니와 스테이크를 생각하며 주문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