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자루질에 위대함에 대하여
어릴적 봉당앞에는 언제나 빗자루가 있었다. 빗자루의 용도는 다양했다. 본연의 임무라야 봉당 먼지를 쓸거나 집앞 마당을 쓸때 사용 되지만 엄마의 잔소리가 커져 갈때쯤이면 손에 잡히는데로 휘드르기 좋은 매로 변한다. 크게 휘둘러도 아프지 않았던 붉은 수숫대로 엮어 만든 빗자루 였기에 엄마손에 자주 잡혔는지도 모른다.
쓰임이 다하여 몽당빗자루가 되기까지 수숫대 빗자루는 봉당을 쓸어담았고, 마당을 뽀얗게 가지런히 만들어 주었다.
빗자루는 부두러운 수숫대 빗자루와 싸리비로 엮어 만든 싸리빗자루가 있었다. 수숫대 빗자루는 언제나 봉당앞에 가지런히 세워져 있었다. 대가 굵고 힘이쎈 싸리빗자루는 소외양간에 두세개씩 세워져 있었다. 싸리빗자루는 키가 크고 대가 굵어서 어린 내가 쓸기엔 힘에 부쳤다. 골고루 쓸리지도 않았다. 싸리비 사이로 이가 빠진것처럼 지푸라기나 쓰레기가 살아남아 그대로 남아있기 일쑤였다. 억샌힘으로 싸리비를 옆으로 뉘어 흙먼지를 일으키며 자갈과 흙을 갈퀴로 글듯 쓰러내야 비질을 한티가 간신히 났다.
아버지만이 사용할수 있는 빗자루였다. 그런 싸리빗자루를 군대에 가서 신물이 날정도로 만들어 내고 눈이 올때나 비가 올때나 길을 치울때나 시도때도 없이 싸리비질을 해댔다. 군대에선 총 다음으로 싸리비질을 많이 사용하는듯 했다. 그렇다보니 싸리비가 익어가는 초가을 때부터 온산을 뒤져 싸리비를 잘라 창고에 쌓아두고 싸리비를 만들어 냈다. 적당히 쌓이는 겨울눈은 석가래로 치우는것 보다 싸리빗질로 치우는게 속도도 빠르고 손에 잘 잡혔다. 강원도 깊은산골은 싸리비를 잘라도 잘라도 때가 되면 쑥쑥 키워냈다. 씨가 마르지 않았다.
작은 봉당앞을 차지한 부드러운 수수대 빗자루의 하루 일과는 봉당을 쓰는일이다. 봉당을 물로 뿌려주고 쓸어야 먼지가 일지 않는다. 물을 뿌리지 않고 비질을 하는 날이면 비질을 한티도 안났거니와 마루에 뽀얗게 흙먼지만 가라 앉았다. 비질을 하는데도 순서가 있다. 가지런히 신발을 정리하고 조리개로 물을 뿌린후에야 살살 비질을 해야 된다. 그래야만 봉당이 봉당 다워 진다.
살림살이가 넉넉치 않았던 보잘것 없었을 작은 살림을 엄마는 비질과 걸레질을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들일로 힘에 부칠때면 쓸고 닦는일은 누나와 나의 몫이 되었다. 부엌 솥뚜껑을 닦아주는 걸레는 아무리 바빠도 항상 엄마몫이 였다. 부엌과 봉당, 넓지 않은 마당과 우사 그리고 안방과 건너방 마루, 사람 사는곳과 살지 않는곳 가리지 않고 쓸고 닦아냈다. 쓸고 닦음이 과하다 싶을 정도 였지만 그래야만 되는거라 했다.
수리산 산사에 들를 때면 낙옆을 맞으며 낙옆을 쓸어 담는 스님을 보게 된다. 나무로 둘러 쌓인 넓은 절터인지라 낙옆은 수북히 내려 앉을 터였지만 언제 가더라도 뽀얀 흙길만 보여 주였다. 스님은 자기 가슴키 만한 싸리빗자루로 비질을 한다. 비질하는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지붕위 비내리는 소리가 들려 오는듯 하다. 계곡물이 바위를 만나는 소리, 바람이 낙옆과 만나는 소리, 소리에 소리가 얹혀 소리가 넝쿨채 굴러 들어온다. 종내는 소리가 아닌 촉감으로 다가온다.
스님은 마음밭을 쓸어 담는듯 비질에 집중 한다. 마음 수양으로는 쏟아지는 낙옆을 쓰는일 보다 좋은게 있을까! 이쪽을 쓸어 나가다 보면 어느새 저쪽으로 살포시 내려 앉는 낙옆들 .. 바람이라도 잦은 날이면 비질을 한다는게 파도를 막는일 만큼이나 헛수고로 보일터 이지만 그일을 하루도 쉬지 못함은 그만한 이유가 있을것이다.
쓸어본 사람만이 알수 있으리라.
쓸고 닦아본 사람만이 알수 있으리라.
그 일이 만들어주는 몰입의 순간이 ᆢ
생각이 지워지는 그 순간이 ᆢ
삶에 집중하는 그 순간이 ᆢ
오직 낙옆만 있을뿐 ᆢ
시간이 사라진 그 자리에 ᆢ
빗자루와 나와 쓸여야할 대상만 남는다.
그 단순함의 백미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다.
가을이 깊어져 간다.
무루 익은 가을은 낙옆을 쏟아낼것이다.
이때쯤 싸리비를 찾아 산속을 헤맬 군인들과
수리산사를 뽀얗게 비질 하는 스님들과
부엌 안팍을 여전히 쓸고 닦을 엄마들의
위대함도 무루 익어 가는 가을에 묻혀갈것이다 .
그들이 쓸고 있을 비질 소리가 청량하게 들려온다. 마음을 쓸어담아 주는 아름다운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