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쓰고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한 꼭지 글을 쓸 때마다 서로에게 보여주며 글쓰기 체력을 길러갑니다. 발레리나의 근육으로만 살아왔던 우리는 육상선수나 체조선수들에게 필요한 근육을 쓰게 되다 보니 서툴고 힘들었었지요. 하지만 좋아하는 것을 하는 데는 이런 건 장애물이 되지 않더군요. 우리는 점점 해법을 찾아 나갔고 조금씩 새로워졌습니다. 글감에 맞는 몰입도 높은 문체를 찾아 고민도 했고 또 좋은 글감을 만나는 날엔 보석을 켄것처럼 좋아했지요 여기 소개하는 한 꼭지 글은 친구가 미국에서 산책하며 쓴 산문입니다. 여느 작가 글 못지않은 아름다운 글입니다. 이런 글을 읽는 것도 행운이겠지요. 이런 아름다운 글을 쓰는 친구가 부럽기도 했습니다. 저 또한 계속 글쓰기를 하다 보면 이런 글을 쓸 수 있겠지요. 읽고 쓰고 생각하는 것만큼 저를 풍요롭게 하는 것 없는 것 같아요.
친구의 산문을 읽고 너무 좋아 이렇게 제 블로그에 올립니다.
나누기 연습
지난밤에 촉촉이 비가 내렸습니다. 자연이 나를 불렀습니다. 마침 아내와 아들은 출타 중이어 모처럼 홀로 산책하러 갔습니다. 인간이 만들어 내는 것들이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산책로가 가까이 있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산책로 입새에서 길로 뻗어 나온 복분자 나무 가지를 살며시 드러내며 산책로에 들어섰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먼지가 폴폴 나던 땅은 습기를 머금고 얌전해졌습니다. 이삼백 미터를 걸어 들어갔을까. 차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자 새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더 분명하게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떨어졌던 낙엽과 나뭇가지들의 잔해가 밤동안 내린 비의 습기와 합하여져서 만들어 내는 향기가 가슴을 자연스럽게 펴게 만들었습니다. 신발 밑으로 보드랍게 느껴지는 나무 분해물을 두 손으로 모아 들어 올렸습니다. 사람들은 낙엽이, 그리고 가지들이 썩는다고 표현하지만, 저는 썩는다는 말이 맞지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썩는다 함은 불쾌한 냄새가 난다든지 손에 묻으면 얼른 손을 씻고 싶어져야 한다는 의미를 가질 때가 많은데 손에 담은 나무 잔해들은 그 어느 공기보다도 상큼하며 손에 담고 있는 느낌은 아이의 살결처럼 보드라웠습니다. 나무의 부산물이 이렇게 잘게 나뉘어가는 과정을 부르는 다른 말이 있을까 생각해 보니 ‘분해’라는 딱딱한 표현 밖에는 생각나지 않아 답답해졌습니다.
“사람들이 너희들은 하늘에 닿기 위해서 커간다 말하더구나.”
산책을 하다 길 옆에 내 몸통만 한 몸통을 가진 참나무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나이가 나와 비슷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나무는 웃음을 지었습니다.
“하하. 그건 오해야. 우리들은 더 많은 잔해를 만들기 위해 자라지.”
자신들의 몸이 크면 클수록 더 많은 잔해들을 만들어 낼 수 있고, 그 잔해는 결국 주위의 작은 나무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한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나도 냉큼 말했습니다.
“나의 성장이 너와 같기를 기도할 거야.
다른 이들을 지배하기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해 더 많이 모으고 자라는 것이 아닌,
다른 이들을 위해 더 많이 주기 위해서 말이지.
삶의 마지막에 나 자신이 분해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나뉘게 될 때
너처럼 냄새나지 않는 것이 되기를
다른 사람의 손에 느낌 좋은 보드라운 해체물이 되기를 바라.”
참나무는 다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너는 참 기특한 소망을 갖고 있구나. 그런 소망을 이루려면 오늘 당장이라도 할 수 있어.
저는 그 말에 귀가 번쩍 열렸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데?”
“응. 나처럼 해봐. 나는 계속 성장하고 있지만 해마다 잔가지와 낙엽을 떨어뜨리지. 죽기도 전에 우리는 이미 나누어주는 연습을 하고 있는 거야. 너도 너의 삶이 끝나는 마지막에 해체되겠지만 당장 오늘부터라도 그렇게 나누어주는 연습은 가능한 거야.”
아. 그랬구나. 낙엽이 떨어지는 이유가 그런 것이었구나.
나무들 사이로 이어지는 길을 걸으며
내 삶의 마지막이 보드랍고 향기로운 부스러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또 그 해체를 오늘이라는 시간에 연습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습니다.
조금 더 걸어가니 길 옆 물웅덩이에서 올라온 안개가 자욱하게 퍼져 나무들의 밑동도 나의 밑동도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오늘만큼은 나도 나무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