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볕이 좋았다
아이들을 앞세워 수리산 산책길로 들어섰다
까만 머리 두통이 동동대며 뛰어간다 웃음소리 까르르!! 행복한 산책길이다
며칠 내린 가을비 때문이었던지!!
진한 산향기가 덩굴채 굴러 다닌다 산향기가 손에 잡히는 듯하다 보이는 듯, 잡히는 듯 산향기가 내려앉는다 아이들의 더듬이가 예민한 게 반응한다
- 아빠 풀냄새 엄청난다
낙엽냄새도 난다 벌레도 없어!!
추석 앞이라서 일까 온산에 풀 깎는 소리가 진동을 한다 풀내음이 날아다닌다 가을 햇볕에 들풀들이 말라간다 마른풀들이 휘날린다
계곡물소리가 바짝 따라붙는다
멀어 지다가 다시 가까이 따라붙는 물소리가 듣기 정겹다 수리산사 주의로 목탁소리가 들려오고 추녀 끝에 매달린 풍경이 잔바람에 절그렁거린다 가을볕이 길게 들어찬 산사 마당에 도토리 알알들이 햇볕을 튕겨내 반짝거린다
- 아빠 도토리 봐 엄청 많아
가던 길을 멈춰 세운 도토리 알알들ᆢ
둘레가 굵은 상수리나무들이 즐비하게 이어서 있다 그 곧음이 하늘을 찌를 듯하다 아직 짙어진 가을이 아니었기에 붉게 익어 밤알처럼 뒹글고 있는 도토리 알알들이 마냥 신기했다
느린 걸음을 멈추고 허리를 숙여 도토리를 줍기 시작했다 줍다 보니 마냥 신나고 재미 었다 십 분채 지나지 않아 봉투 안이 가득 찼다 아이들의 줍는 속도가 빨라진다 다람쥐 식량을 넣어주는 데가 있다며 제법 한 봉지 가득 주워 담는다
깍정이가 벗겨져서 단정하게 누워있는 애들부터, 밀짚모자를 눌러쓴 것처럼 깍정이를 뒤집어쓰고 있는 애들부터, 크기도 모양도 다채로 왔다 길쭉한 것과 통통한 것들이 섞여 있었다
붉게 익은 도토리색이 아름다웠다 수리산이 품어낸 도토리들이 비 내리듯 내려앉고 있었다 이맘때쯤 도토리를 담으러 다니시는 할머니들이 등산가방 한가득 등에 지고 오르락 내리락들 하시곤 했었는데 ᆢᆢ 코로나 덕분인지 줍는 분들이 없어서일까 상수리나무 둘레는 도토리 밭이 되었다 주인 잃은 도토리가 원래 주인에게 가는일 만 남은 듯했다 청설모와 다람쥐들이 다투지 않을 만큼 ᆢ배불리 먹고도 긴 겨울 축내지 않을 만큼의 도토리가 쌓여 있었다 잘 먹는 일만 남은 듯했다
도토리 한알을 주워들어 아이들에게 보여 주었다
- 주완아 이 도토리 안에 우주가 있어 잘 봐봐
- 정말!! 뻥치지 마 아빠!!
뭘 기대한 걸까 그냥 도토리 줍는데서 끝나서야 될 것을!! 아홉 살 아이들은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도토리가 도토리지!!
도토리가 왜 우주야 아빠!!
장석주시인의 대추 한 알을 다시 앍어줘야겠다 생각했다
수리산 산책로로 접어들면 뽀얀 흙길이 자갈길과 겉대며 이어져 있다 발자국 소리가 듣기에 좋다 ASMR이 따로 없다 자갈길 밟는 소리는 뇌를 자극하여 심리적 안정을 가져다준다 편안하고 행복했다
중간지점 임도 오거리에 다다를 즈음 ᆢ
멀리서 들려오는 아이스께끼 ~~ 주말이면 등산객들에게 아이스크림을 판매하곤 한다
뛰어가는 아이들 ᆢ
아이스께끼를 입에 물고 마냥 좋아라
웃어대는 가족들 ᆢ까르르까르르 ᆢ
어깨 위로 따스하게 내려앉는 가을 햇별과
진한 향기 뿜어내는 가을 산책길 ᆢ
푸울은 하늘.. 실려오는 풀내음 ᆢ
특별한 것도 없는 보통의 이 헐렁한 오후가
왜 이리 행복한 건지 ᆢ
아내의 손을 찾아 꼭 쥐어본다
오는 길이 힘들었던지 지완이가 업어 달라 보챈다 먼저 지완이를 업어 주었다 정확한 보폭으로 오백보씩 약속하고 주완이도 업어 주었다 두 아이를 양손에 안고 산책했던 때를 이야기해 주었다 그때 처럼 해달라고 떼쓰기 시작했다 다음부턴 생각하고 말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산등선 너머로 하루해가 기울어 갈 때쯤 ᆢ
밤산책 한번 다녀왔으면 좋겠다 말했던 지난주가 생각났다 깜깜한 어둠이 아니어서 아쉽기는 했지만 밤산책 기분 충분히 느낄 만큼의 알맞은 어두움이 깔려 주었다
- 지완아 아리스토 텔레스가 파도가 왜 치는지 대답을 못했다고 하더라 2000년 전에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었는데 그때는 그걸 몰랐데
- 아빠!! 근데ᆢ난 그것보다 더 궁금한 게 있어
- 뭐야 말해봐 아빠가 알려줄게
- 근 더 말이야 할아버지들 머리 스타일은 다 비슷하잖아 그리고 할머니들은 왜 다들 똑같은 파마를 하시는 거야 뽀글뽀글ᆢ머리가 길지도 않고 다 짧고 파마를 하시잖아 왜 그런 거야?
외할머니도 그렇코 친할머니도 그렇고
이모할머니도 똑같잖아!!
왜 그런 거냐고?
뭐든 궁금한 건 물어보라고 잘난 체를 했던 게
아이들 마음을 상하게 했나 보다
익을수록 고개를 숙여야 되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해 준 아이들이 있어 감사할 뿐이다
그나저나 한국 할머니들은 어쩌자고 머리스타일이 통일되셨는지 네이버에 검색해 봐야겠다
풀벌레 소리 들으며 집으로 오는 길은
참 행복했다
특별할 것 없는, 똑같기만 한, 별 볼 일 없는
반복되는 이런 헐렁한 일상은 나에겐
최고의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