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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숙집 고봉밥

하숙집 아줌마

by 둥이

하숙집 고봉밥

내가 머물던 허름한 하숙집은 지붕 위로 하얀 박이 두세 개 얻혀져 있었다. 낮고 작았던 돌담길 둘레론 키 큰 해바라기가 빙 둘러 심겨 있었다. 재래식 화장실은 순번을 정해서 길게 줄 서 볼일을 봐야만 했었고 덩치 큰 누런 개 두 마리가 훔쳐갈 행랑사리도 없었던 가난한 하숙집을 지키고 있었다. 하숙집 앞으로는 길게 뻗은 레일 위로 하루 몇 번씩 경춘선 기차가 요란하게 지나다녔었다. 어디로 가는지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것들이 쉬지 않고 움직였다.

어제와 오늘이 다른 정체성으로 힘들어했던 우리를 보는 것 같았다.

베니어판 몇 개로 방과 방을 나누었던 방 세 개 딸린 하숙집의 아침은 늘 분답스러웠고 사람들로 벅적거렸다.


고등학교 이학년 늦가을로 접어든 10월 중순

친구와 나는 리어카에 책과 이불을 잔뜩 실어서 하숙집으로 들어갔다. 시멘트로 발라진 하얀 언덕길을 리어카를 밀면서 올라갔다. 이사하던 날 큰 보름달이 환하게 떠 있었고 달그림자가 선명하게 그려졌 있었다. 작은 우산처럼 생긴 플라타너스 낙엽들이 가을바람에 쌓여 갈 무렵 우리의 하숙 생활은 시작되었다.


그렇게 우리의 꿈 많고 탈도 많았던 하숙 생활은 시작되었다. 두 명으로 시작된 하숙생활은 한 명 한 명 불어 나더니 여섯 명이 되었고 후배들과 인근 대학교 형들까지 더해져서 하숙집은 북쩍 북쩍 해졌다.

하숙집 아주머니는 늘 고만고만한 아이들에 끼니밥을 해 먹이느라 주방을 떠나지 않았다. 우리는 먹고 나면 배가 고팠다. 식욕이 왕성했던 때라 음식을 하게 되면 무조건 많이 하는 게 답이었다. 지금이야 계란 프라이는

특별할 거 없는 음식이 되었지만 그때는 입맛 없을 때나 반찬이 없을 때나 차려진 밥상을 그대로 성의 있게 만들어 주는 마법을 부려주는 반찬이었다. 우리는 빨간 교자상 위에 올라온 계란프라이를 하나라도 더 먹으려 젓가락질을 했었다.

계란 한 판은 수북이 쌓여 갔고 아주머니는 빨간 케첩을 계란프라이 옆으로 푹 떠서 올려주었다. 때론 밥 없이 계란프라이만 먹고 학교를 갔었다.

나는 아직도 아침 일찍 계란프라이를 하시던 뚱뚱 하신 아주머니가 생각이 난다.

인심 많던 아주머니는 늦은 시간에도 뚝딱뚝딱 음식을 만들어 내어 주셨다.

밥 늦게 공부하다 배가 출출 해질 때면 아주머니는 빨간 고추장을 꺼내와 열무김치나 상추를 푹푹 찢어 비빔국수를 만들어 주었다. 비빔국수와 김치 수제비는 아주머니가 자주 해주시던 음식이었다. 짧은 시간 안에 냉장고를 뒤져 있는 식재료로 투박한 음식을 만들어 내던 아주머니의 마법은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우리는 예민한 촉수가 살아 있는 청춘들이었고 아주머니가 해주는 모든 음식들은 상처받은 마음밭을 치유해 주기에 충분했다. 많은 게 필요 없었다. 제철에 먹을 수 있는 식재료로 별거 없을 조미료로 데치고 지지고 볶고 버무리고 뚝딱뚝딱 만들어 내는 모든 음식들이 맛있었다. 까만 머리통들이 밥상머리로 둘러앉아 먹어대던 하숙밥은 달고 맛있었다.


하숙집 아주머니가 퍼주었던 하얀 고봉밥은 먹기도 전에 입이 떡 벌어졌지만 우리는 두 그릇씩 밥을 먹었었다. 아주머니가 해주었던 평범하고 별거 없던 그 음식들이 지금도 잊히지가 않는다.

오랫동안 하숙집 아주머니가 해주던 음식이 기억에 남는 건 단순한 맛 때문만은 아니 나는걸

알아간다. 살아가며 위로가 담긴 음식을 한 번이라도 맛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 음식 속에 깃든 사랑을, 이상한 뭉클함을, 스며있는 따뜻함을, 알 수 없는 내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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