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와 손자
11월 셋째 주 일요일, 한낮 햇볕은 따스하기만 하다. 올해는 가을이 길다. 매년 김장하는 날은 손끝이 저며 오도록 추웠는데 올핸 덥기까지 하다. 동생네와 외사촌 누이동생들은 반팔을 입고 배추 속을 다지고 있다. 김장 덕분에 그래도 일 년에 한 번씩은 사는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어서 모였다 하면 이야기가 많아진다.
이것도 엄마 아버지 살아생전 이라며 다들 김장 담가 먹는 수고스러움을 고달프다 지껴댄다.
그래도 이렇게 하루 모여 웃다 보면 사는 재미가 먼데 있지 않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아버지를 따라 밭으로 나갔다. 아이들도 따라나선다. 집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몇 때기 밭은 아버지가 일을 놓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등 뒤에서 할아버지 대파 뽑는 것을 도와주는
주완이가 예뻐 보인다.
살이 포동포동 찐 대파가 가지런히 줄지어 서있다. 밑동이 제법 굵고 물이 올라 싱싱해 보인다. 아버지는 대파 두 줄기씩 담아 로컬푸드에 내다 놓는다고 한다.
아버지의 땅은 쉼 없이 작물을 길러낸다. 고구마를 걷어낸 밭고랑엔 첫서리가 내리기 전 서둘러 내다 팔아야 될 작물들이 수확을 기다리고 있다. 아직 겨울이 먼 듯하다. 뽑아낸 대파는 아이들 키만 하다. 밑단 흙뿌리를 털어내고 잔표피를 걷어내서 하얀 파줄기가 드러나도록 다듬는다. 아이들은 할아버지 하는 것을 지켜보더니 그새 한뿌리씩 잡아들고 다듬기 시작한다. 따스한 겨울 햇볕이 할아버지와 손자들 등뒤로 쏟아지고 있다. 아이들이 오래도록 이 풍경을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컷의 풍경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생각이 난다. 11월에 어느 일요일 할아버지 옆에서 대파를 다듬는 손주들의 웃음소리와 그런 손주들을 지켜보는 할아버지의 흐뭇한 미소가 한컷의 사진이 되어 내 망막 속으로 들어왔다. 따뜻한 겨울바람이 불어오는 듯했다. 삶의 의미가 그대로 스며들어 한컷의 순간이 되었다. 의미를 가진 그런 풍경을 아이들은 모를 것이다. 내가 보고 있는 이 장면이 얼마나 행복한 순간인 것을! 배경 속에 자신들이 녹아들어 있다는 것을! 의미를 가진 그런 풍경 속으로 자신들이 베어 들어 있다는 것을!
" 할아버지 대파가 이렇게 키가 커요 "
너희들이 대파보다 더 빨리 크는 것 같다며 누가 형이냐며 매번 같은 질문을 던지신다.
대파만큼 쑥쑥 크고 있는 손주들이 마냥 예뻤던지 올 때마다 많이 컸다며 안아 주신다.
살아 있다는 건, 바꿔 말하면 아주 단순한 명제 인지 모른다. 그건 주변에 온갖 냄새를 발하는 것인지 모른다. 살아 있다는 냄새 ᆢ그건ᆢ
사람 냄새 인지 모른다.
그냥 있어도 풀풀 풍기는 진한 육수처럼,
몇 달을 푹 삭힌 젖깔처럼, 겨우내 아랫묵에서 익어가는 메주처럼, 자기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발하는 것인지 모른다.
살아 있다는 건 할아버지와 손자가 웃으며 대파줄기를 다듬는 그 순간인지 모른다.
시간의 풍화가 비켜가 주기를 바라본다. 이 풍경만은 풍화되지 않고 마모되지 않은 채로 아이들의 기억 속에 긴 호흡으로 살아있기를 바라본다.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딛고 툇마루에서 일어나시면 나는 쪼르륵 할아버지 뒤를 따라나선다.
" 기송아 따라오느라"
할아버지가 부르기도 전에 기척을 보며 마음은 동네 어귀에 있는 가게로 달려갔었다. 그 옛날 할아버지는 막걸리 생각이 날 때마다 손자인 나를 앞세우고 가게로 드나드셨다. 할아버지가 사주신 라면땅의 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할아버지는 키가 큰 편이었다. 할아버지 유전자는 다 어디로 갔는지 가끔 생각하곤 했다. 하얀 한복과 검정 고무신 많지 않던 머리숱 곧게 편 허리 긴 팔다리 낭랑한 목소리 다섯 살 손자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할아버지는 키다리 아저씨의 모습으로 존재해 있다. 추운 겨울 동네 어귀를 돌아 나가던 할아버지의 알록달록한 상여와 구슬픈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할아버지가 사주었던 라면땅은 지금도 가끔 사 먹는 추억의 과자가 되었다.
푸르스트가 쿠키와 홍차 내음을 맛보며 느꼈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향수가 나의 그 기억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에 대한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다.
한컷의 사진처럼 또렷하게 각인되어 그 장소를 찾을 때마다 배어 나오고 기억나게 된다. 마음밭의 심긴 향수는 저마다 모양새를 갖고 색감을 갖고 있다. 바닷물처럼 차오르기도 하고 밀려나가기도 한다.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그런 듯하다. 할아버지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같은 모양과 색감으로 변하지 않고 찾아온다.
지금은 할아버지의 말보다는
할아버지의 눈빛과 할아버지의 뒷모습이 더 기억에 떠오른다. 아마도 그 눈빛과 뒷모습이 더 많은 말을 해준 것 같아서 인 듯하다.
초점 없는 눈동자와 정처 없는 뒷모습은 많은 말이 필요 없는 달변이었다. 할아버지와 파를 다듬는 아이들이 할아버지를 생각하게 해 주었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던 할아버지의 느린 그림자가 보고 싶어지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