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국 소리
산책을 나간다
걷다 보면 줄곧 지치지 않고 나를 쫓아오는 것들이 있다 걷는다는 것 외엔 머릿속은 텅 빈 공간이 되어간다 머릿속이 비워질수록 생생한 질감으로 살아나는 것들이 있다 나의 보폭에 맞춰 운동화 바닥이 땅을 디디면서 솟아나는 낮은음의 흙 갈리는 소리 ᆢ 산책할 때 만 들을 수 있는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아름다운 소리다
일정한 속도 일정한 리듬 일정한 데시벨로, 걷는 내내 말을 붙여온다 걷는 그대로 날것으로 들락거리는 싱싱한 청음이다
"부두득 부드득"
"뽀드득뽀드득 "
"사아각 사아각"
귀에 꽂혀서 오감으로 인식된 청음을 정확한 언어로 표현할 길이 없다 지금 들은 이소리를,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이 음력을, 언어로 말해주고 싶다
보여주고 싶다 이 역시 욕심일 뿐임을 알지 못한다
자연 그대로 멋스럽다 수리산 산자락길에는 작은 돌 큰 돌 모래흙 모양과 크기가 다른 다양한 돌들이 빼곡히 수놓아 있고 어서 딛고 가라는 듯 멋진 화음을 넣어준다 제각각 저 한 몸으로 훌륭한 타악기로 변해준다 수십 년을 갈고닦은 명창의 목젖에서 우러나오는 고유한 음력과 떨림을 자갈밭의 디딤소리는 만들어 낸다 그것대로 멋스럽다 그것대로 아름답다
터벅터벅 걷는 속도에 맞춰 음력의 변화가 생겨남은 운동화 바닥에 무뎌지는 자갈들의 공력이 아닐까! 자갈들의 생김 생김은 저마다 만들어 내는 음력의 변화를 만들어 낸다 모하나 같은 것이 없건만 모하나 버릴 것도 없이, 저마다의 생김 데로 쓸모를 만들어 내는 이 자연이 아름답다
못생기고 투박한 돌들도 산자락길에선 멋진 화음을 만들어 내고 스스로 있어야 할 곳에서 자립하며 존재한다 나와 자연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화음이다 낙엽은 저들이 가진 색깔로 길을 물들였다 새벽녘에 내린 빗줄기는 노란 송홧가루로 물길을 만들어 놓았고 사각 거리며 부서지는 발자국 소리는 청아한 울림으로 내 뒤를 쫓아온다
이런 멋스러운 화음을 만들어주는 자갈과 흙모래들의 산책로를 사람들은 먼지 날린다 걷기 힘들다며 데크나 야자수 열매로 엮어서 바닥에 깔아 놓기가 일쑤다 수리산 산자락 산책로 초입에도 데크나 야자수 덮개로 깔아 놓은 곳들이 많아서 이런 멋진 화음은 기대할 수 없다
지쳐가는 호흡 거칠어지는 숨소리,, 내 발자국 소리도 지쳐간다
수리산 산자락길에서 날 기다리는 아름다운 소리들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힘차게 내려 꽂히는 햇볕을 온몸으로 막아내는 나뭇잎과 그 사이를 뚫고 땅으로 내려앉은 명암 짙은 햇살들은 나름의 그림이 되어 산들산들 춤을 춘다
흑백 투톤의 수묵화가 땅 위에 펼쳐지고 잔바람에 펄럭이는 나뭇잎들은 서로를 만져가며 지져 긴다
그래 ᆢ"바람소리"다
보이지 않던 것들은 이렇게 소리 없이 찾아온다
"나 여기 있어" 아우성친다 바람은 분명 나무에게 말했을 것이다
바람과 나무들이 만들어 내는 멋진 화음이다 한참을 들어도 마냥 좋은 소리이다 질리지 않을, 물리지 않을 맛깔스러움이다
산자락 깊은 곳에 다다를 즘 ᆢ
고음으로 지저 데는 산새들의 노랫소리가 귀가에 아려온다
나무를 쉴 새 없이 찍어 데는 딱따구리,
영역싸움을 하는 건지 놀이를 하는 건지 모를 음력이 높은 덩치 큰 까마귀들
껑충껑충 두 다리로 나뭇가지 사이를 성큼성큼 뛰쳐 다니는 캥거루 같은 텃까치들..
쉴 새 없이 쫑알대는 무리 지어 비행하는 작은 박새들 ᆢ
소프라도 알토 바리톤 테너
서로의 노래실력을 자랑하듯 ᆢ
어서 오세요라고 부르는 듯 ᆢ
산책길에 찾아온 언어들을 놓칠까 ᆢ
둘레길에 앉아 주어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