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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세 청년 농부의 밭 일구기

젊은 농부

by 둥이

흙 재 먼지 돌아감 그리고 아버지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창 3.19)"


아버지는 올해 팔십칠세 청년 농부다.

동네 보건소에 들를때면 약봉투에 적혀 있는 깨알같은 글씨를 읽는 아버지를 보며 보건소 직원들은 청년 같다 이야기 한다. 다행히 아버지는 연세에 비해 건강하다. 보청기 없이도 남과 대화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돋보기 없이도 성경책 작은 글씨를 술술 읽어 나간다. 작년에 받은 무릎 골밀도 검사 결과 담당 의사도 놀라며 10년은 더 써도 문제 없다고 한다. 그 덕분인지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아버지는 올해도 밭을 일굴 준비를 한다. 태어나 지금까지 하늘과 땅이 그에게 허락한 여생에 부끄럼 없는 생을 살았기에 그는 늘 언제 가도 여한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정작 준비가 안된건 듣고 있는 자손들인지 모른다. 아버지의 부재를 감당해낼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아버지의 집은 아버지의 손길을 필요로 한다. 아버지는 손재주가 좋아 못하는게 없다. 거의 만능 가제트 형사다. 시공기술이 필요한 보일러배관, 전기배선, 수도, 화장실 방수 이러저러한 왠만한 모든것은 아버지 손을 거치면 금 나와라 뚝딱 요술방망이 처럼 정상으로 돌아간다. 그런 아버지가 작년 가을에는 보일러가 고장나서 기사를 부른적이 있다. 하루이틀 고치다가 힘이 닿지 못해 결국 기술자를 불렀다.


"이게 내가 직접 넣고 만든거라 금방 되는건데 뭐가 안맞는지 안되네"


아버지는 기술자 부른것이 자존심이 상한듯 했다. 아버지가 가진 기술에 비하자면 크게 차이도 없을거라 생각 하는듯 했다. 말과 표정에서 그렇게 이야기 하는듯 했다.


30년전에 지은 연립주택은 아버지가 쌓아올려 만든 당시 만해도 동네에서 가장 좋은 건물축에 속했다. 그때 고삼이였던 나는 빨간 벽돌로 쌓아 올려지는 성과 같은 화려한 집을 볼때마다 아버지가 존경스러 웠다. 그런 아버지의 손재주는 다 어디로 갔는지 가끔 전선피복도 벗겨내지 못하는 내가 한심스러워질 때가 있다.


가끔 아버지를 보고 올때면 늘 마음힌켠이 아려온다.


성당 미사를 다녀왔다. 주보에 실린 사순시기 기도문을 읽으면서 아버지 생각을 했다. 아버지는 생물학적으로 살날이 그리 오래 남지 않았다.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 물어봐도 알수가 없다. 아버지 나이만큼 되었을때 그곳에 내가 있을까 생각해보면 모하나 잡히지 않는다. 나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수 없었고 무엇을 물을수도 없었다. 어쩌면 산다는것의 본질은 훨씬 단순한 부분에 스며 있는듯 했다.


"아버지 오래 사세요 한 십년 더 건강하세요"

"내가 언제 죽을지 오래 살았다 당장 내일 이라도 하느님이 부르면 가야지 "

"그래서 올핸 고추 조금만 심으려고"


햇살은 겨우내 메말렀던 흙을 부풀케 한다.

나무등결 사이로 물 오른 잔가지가 올라온다.

봄이 오고 있다. 소리내어 봄이 오고 있다.

바람은 이미 찬기운을 버렸다. 햇볕이 따스하다. 눈꺼풀에 와닿는 햇살이 마냥 좋아 팔을 벌여 담아낸다. 닫힌 혈관이 열리고 혈의 순환이 빨라진다. 봄볕이 사람을 살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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