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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는 이야기

삽교여행

by 둥이

사람사는 이야기

"아무리 맛있었던 음식도 함께하는 이가 없으면 그 맛을 느낄 수가 없으며 넘쳐나는 풍성한 먹을거리도 고독한 식사의 허기를 달래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 대수롭지 않은 일 같지만 어떤 음식을 누구와 함께 하는가 하는 것은 인생에 대한 태도를 결정짓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나이가 들수록 맛있게 먹는 한 끼 식사가 만들어내는 행복감 이야말로 삶의 원천이며 진정한 밥도둑은 역시 약간의 모자람과 누군가와 함께 나눠 먹는 맛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황석영의 밥도둑 서문 P8



11월말 긴 가을이 이어지고 있는 금요일 오후다. 몇주전 지인분들과 약속한 여행날이다. 같이 아이를 키워내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다닌덕에 뼛속 깊숙히 동지애와 전우애로 다져진 가족과 같은 모임이다. 오랜 시간 서로의 안부를 묻고 정을 나누고 있다. 우리 삶을 찰기있고 윤기나게 만들어 주는것이 먼데 있지 않음을 새삼 느낀다. 볼때마다 이렇게 좋다. 행복이란 지극히 단순함 속에 묻어 있다.


아이들의 피아노 학원 시간에 맞추어 떠나려고 짐을 실었다. 여행의 즐거움이란 역시 짐을 싸고 실는 시간속에 있다. 찰나의 시간을 놓치지 않고 즐기는것 그것으로 이미 족하다.

주완이 육아로 힘들어 하는 현정이는 마음 맞는 엄마들을 만나는 이번 여행을 제법 기다린 눈치다. 갱년기에 찾아오는 감정변화와 욕구저하에 힘들어 하는 현정이는 한달전에 전정신경세포염으로 응급실까지 실려간 이후로 더 힘든터였다. 면역력 저하 때문 인지 나이가 들어서 인지 아프지 않던 곳들이 아파 오는데서 오는 심적 불안도 한 몫 거드는 듯했다. 아플때 스스럼 없이 친한 지인분들과 만나 이야기 하다 보면 밀물처럼 빠져 나가는 내 마음을 볼수 있다. 곧 썰물 처럼 밀려 들어 오겠지만 그래도 내려 놓은 마음이 둥글게 보인다. 쓰다듬어 주기만 하면 된다. 세분의 엄마들은 나란히 팔장을 끼고 분위기 좋은 커피숍에 앉아 일상을 벗어 던지고 있다. 엄마들은 그런 별것 없던 특별하지 않을 우리들 삶의 이야기를 훌훌 이야기로 빚어 낸다. 내 이야기를 공감으로 받아주는 수양 공동체이자 마음 나눔은 그렇게 자기를 조금은 잊게 해줄것이다. 만나 서로에 이야기를 들어줌으로 부풀었던 감정은 헐거여지고 다름이 들어올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준다. 그제야 진작부터 따뜻하게 쏟아졌을 가을 햇볕을 느낄수 있고 덩어리져 굴려 다니는 가을색을 잡을수 있게 된다. 다를것 같을 너와 나와 감정은 곧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그 다르지 않음은 살아가는 동력이 되어간다.


잡지속에서나 볼수 있는 비주얼과 실루엣으로 밝은 미소를 잃지 않는 건하네 부부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 건하 성하 두살 터울이 남자 형제를 키워 내는 건하네는 인문학적 감성과 예술의 끼를 가진 젊은 부부이다. 주완 지완이 다섯살때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만난 이후로 지금까지 이웃이자 친구이자 동반자로 시간을 나누고 있다.

우리는 닉네임으로 서로를 부르다 보니 나이와 문화와 배경을 잊을수 있었다. 오롯히 그 사람만 볼수 있어서 대화의 경계가 구분이 없었다. 픽추는 네이버 검색에서 볼수 있을 정도의 실력있는 예술가 이지만 본인이 가진 능력과 재능으로 타인을 고려하고 재단하지 않은 따뜻한 마음을 가진 분이다. 가진것을 보게 하는게 아니라 상대방에 경청하고 물어주는 그녀의 이야기는 듣는것만으로 상퀘함을 만들어 낸다. 마추 역시 이분 못지 않다. 그래서 같이 살겠지만 튀지 않은 배경색과 때에 적합한 한두마디 절제된 이야기는 충분한 공감을 만들어 낸다. 이런 저런 사는 이야기 우리집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는 시간을 푹 절여낸 것처럼 맛나게 익어가는 김장김치 처럼 우리들 감정을 익어가게 해주었다.

강원도 하늘 이라 그랬을까!

펼쳐 놓은 까만 하늘에 주렁 주렁 반짝이는 별들이 우리들 시야로 들어왔다. 언어가 가진 한계ᆢ 눈에 보이는것을 그대로 옮길수 없어 안타까웠다. 화로에 타닥 타닥 타들어 가는 장작 소리가 운치를 더해 주었다.

12시가 다 되었을쯤 승주네가 도착했다. 피곤한 시간 이였을 텐데도 우리는 자연스럽게 거실에 모여 앉아 두런 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외모 만큼은 밀리지 않는다며 연예인 닮은 아빠라는 두더지는 맑은 영혼을 가진 순수함과 열정을 동시에 간직한 착한 아빠이다. 엔터테이먼트의 DNA가 자신을 가만 놔두지 못하는 두더지의 영혼은 무슨 일에서건 뒤로 빠지는 경우가 없다. 잘 추지도 못하는 춤이지만 춤이 필요한 자리 라든가 분위기가 되면 가진 끼를 마음껏 발산한다. 좋아 하지 않으면 지을수 없는 표정으로 무장한체, 무너짐을 절재 할줄 아는 센스와 편안함과 때론 오버로 관중을 이끈다. 그가 가진 열정은 늘 주변을 즐겁게 한다.


아이들을 대하는 진지함, 축구 하나에도 진심을 다해 남자로 대해주는 놀이법, 툭던진 질문에도 백과사전식 놓치지 않은 자상함,

두더지에 육아법을 보며 깊은 반성을 하게 된다. 시간을 나눈다는게 이런 거구나 하는 현타가 왔다. 아이들과 자전거를 타러 가거나 공놀이를 하게 되면 그저 멀리서 지켜볼뿐 책만 읽었던 나의 육아법이 아이들에게 줄 받아 들임에 차이를 알게 됐다. 두더지 마추와 두시간 이상을 찬바람을 잊은체 땀으로 젖어 들어가며 축구 그 이상의 기쁨을 만낀한 아이들은 진심 만족한 표정을 짖고 있었다. 내가 손홍민 처럼 골을 넣었다는 자신감이 아이들 마음속에 잘아 있었다. 두더지가 그렇게 만들어 주었다. 눈물나게 자상한 아빠다.

몸으로 놀아 준다는게 이런 거였어! 진심을 다하는것 한명의 사람으로 대해 주는것 어린아이가 아니라는것, 넌 나에게 이겨야될 상대방 이라는것 ᆢ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들었던 편해문 선생님 강의가 생각났다.

"놀이가 밥이다. "

"놀이터 위험해야 안전하다."

그렇게 아이들은 의젖하게 두더지를 이긴 어른의 표정을 짖고 있었다. 늠름하고 씩씩한 그들만의 눈짓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한켠에선 고양이와 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주완이가 펜션에서 기르고 있는 까만 개를 껴안고 따라 다니며 종일 좋아라 한다. 쵸코가 보고 싶다고 울기까지 하는걸 보면 나름 정이 든듯 하다. 이렇틋 여행은 보이지 않는것을 보게끔 만들어주는 조금은 객체화된 우리를 볼수 있게 해주는 마법을 가지고 있다. 여행이 우리를 그런곳으로 안내해준다.


그에 못지 않은 보리는 그런 두더지를 품고 안을줄 아는 넓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보리는 이름 만큼이나 청보리 밭을 연상케 한다. 바람과 햇볕에 기대어 익어가는 보리밭은 그 장소와 공간이 만들어주는 편안함과 향수가 있다.

보리는 주변을 품어주고 아우른다. 주변을 담아낸다. 보리 마음 속 한켠에는 이웃들이 살아가는 넓은 밭이 있는듯 하다. 우리 가족들과 공동육아 지인분들은 보리 마음밭 안에서 살아가는 곡식들이다. 보리가 가진 어뚱함과 밝은 미소는 제주도 돌담을 연상케 한다. 바람이 숭숭 들이치는 돌담은 담으로 써도 정겹고 운치 있다. 제주도 돌담은 틈과 틈이 벌어져 있어 제주도 센바람을 버텨낸다. 바람에 저항하지 않은체 바람을 담아낸다. 보리에게는 빈틈과 허술함과 사람을 이어주는 사람 냄새가 있다. 그게 딱히 뭐라 말할수 없지만 그런 빈틈으로 감정은 모이는듯 하다. 편안함과 친절함, 의도하지 않은 배려, 계산하지 못하는 관계, 이런 저런 모든 바람과 햇볕은 보리를 익어가게 하고 사람들을 불러 모을것이다. 두더지와 보리의 케미는 두사람이 지닌 다름이 있어 더 아름다워 보인다. 두더지는 몇해전 공동육아 어린이집 이야기를 하며 힘들어 했다. 두더지의 힘듦에 마음 한켠이 아려 왔다. 같은 시간대에 같은 감정으로 우리가 같이 결정한 일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 말이 두더지를 편하게 해주리라 기대 할순 없었다. 두더지가 편안해 졌으면 좋겠다. 성당에서 늘 듣게되는 그말을 해주었다. "나의 평화을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도 평안해져라" 종교가 수단이 되면 안된다는 두더지가 가진 종교 신념과 다를지 모르지만 언제나 늘 난 내가 사랑하는 모든 분들이 신을 믿음으로써 편안함을 얻기를 기도한다.


돌아오는 내내 술이 깨지 않았다.

운전대를 현정이 에게 맡기고 울렁이는 속을 달래며 집으로 돌아 왔다. 좋아 하는 분들과 사람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지금을 살아가게끔 만들어 주는 원료가 된다. 들어주고 말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수 있게 해준다.

우리는 서로의 곁을 지켜줄주 아는 거리 감각으로 우리 사이에 쾌적한 환기가 잘된 상퀘한 공기를 불게 해주었다.

여행을 다녀온후 우리에게 남은건 사랑하고 사랑 받았다는것 지금도 사랑 하고 있다는 그 충만한 느낌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기대어 살아 가매 어찌 행복하지 않을수 있을까

가족이 되어준 이웃이 있어 감사함만 남는다.

행복이란 익어 가는것이 아닐까

아무것도 아닌일에 주목하는 힘

온몸을 촉수로 만들어 바람의 소리를 듣는 힘

풀들이 자라는 소리를 듣는 힘

나무 풀 계절의 오고 감 늘 거기 있는 것들에 대한 생각 그리고 내 삶을 애워쌓고 있는 삶의 전부인 사람들과 시간을 나누고 아침밥을 나누고 새소리와 바람이 왔다 가는 소리와 쏟아지는 햇살을 같이 받는것 ᆢ행복은 그런것 일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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