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 검사를 해보면 극 I에 속한다. 그렇다고 MBTI를 백 프로 신뢰 히지는 않는다. 그래도 비슷하게 들어맞는 걸 보면 내가 샤이 하다는 거는 부정할 수가 없다. 외향적인 사람들을 보면 나와는 다른 모습에 한참을 바라보게 된다. 그것도 너무 보게 되면 이상하게 기가 빨린다. 묘하게 에너지가 들어간다. 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들어가는 거다. 그럴 땐 안 보면 된다. 그러다 보니 결이 같은 사람들을 보면 편해진다. 이유가 있다. 에너지가 안 들어간다. 옆 사람을 신경 써야 되는, 의식해야 되는 에너지도 쌓이면 힘이 든다. 마치 무거운 짐을 들고 있는 것처럼, 그렇다고 있는 사람을 투명인간 취급 해야 된다는 건 아니다.
적당함과 거리감, 스포츠도 마찬 가지겠지만 모든 관계는 거기에 달렸다. 성격은 만들어지기도 하고, 타고나기도 한다. 둘 중 어느 게 더 많은 영향을 주는지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심리학적으로만 봐도 타고나는 게 더 많을 듯하다. (물론 이건 나의 의견이다. 사회심리학자가 내 의견에 동의 안 할 수도 있다.)
언제부터 인지 모른다.
아마도 처음부터 그랬는 지도 모른다.
누군가 선을 그어 놓은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여기를 벗어나면 안 된다고 말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언제나 틀 같은 것이 내 주의에 보인다. 그리고 거기서 삐져 나가지 않게 조심하면서 살아간다. 눈앞에 가이드라인을 세우고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평범한 삶을 살아간다. 아니 적어도 그렇게 살아가려 나름 노력한다. 다른 길이 많음에도, 테두리를 넘지 않으려 한다.
아마도 그 테두리는 알게 모르게 받아온 부모의 언어라든가, 교회의 종교라든가, 읽고 쓰고 배운 글 이라든가, 친구들과 보낸 시간이라든가, 모계 혈류 속 미토콘드리아 호르몬과 바꿀 수 없는 DNA 호르몬에 주름처럼 박혀 있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둥그런 테두리가 있다는 사실이다. 양궁 과녁처럼 생긴 테두리 안에서 때론 안으로, 때론 밖으로, 마치 팽이처럼, 마치 고삐 물린 한우처럼, 주변을 돌뿐 과녁 밖으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 걸 통상은 성격이라고 부른다.
나는 상당히 샤이한 사람이다.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 마음이 가는 사람들과 가지는 술자리도 좋아한다.
주로 맥주를 마시지만 소주도 가끔 마신다. 삶이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긴 후로는 책 읽기와 글쓰기에 시간을 쓰는 편이다. 읽기와 쓰는 시간만큼 시간을 잊게 만드는 게 없다. 몰입의 시간은 다른 것들로 찾아오지는 않는다. 가끔은 남들 눈에 보이는 나라는 사람에 너무 신경이 쓰이기도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며 이 또한 무뎌져 갔다. 내성적인 이런 성격은 좀처럼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래도 이상하리 만치 나에게 리더십이 있었다. 주변에 늘 사람들이 있었고 내가 원컴 또 원치 않건 상관없이 난 문제 해결의 중심에 서있곤 했다. 그건 원만한 인간관계 때문일 수도 있고 웬만해서 모진 말을 뱉지 못해서 일수도 있다. 흔들리는 조직을 추스른 적도 제법 많았다. 그렇다고 무리해서 무엇을 만든다거나, 즉흥적이고 재미있게 무대를 이끌지는 못한다. 나에게 그런 능력은 없다. 그런 건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가끔은 누가 노래를 시킬까 두려울 때도 있다. 나에겐 갈등 관계를 중재하고 모두가 동의하는 회의 안건을 이끌어 내는 능력은 있어도, 노래를 부른다든가 준비되지 않은 시낭독을 한다든가 잘하지 못하는 기도를 하는 능력은 없다. 나는 어려서부터 나서기를 싫어했다. 그건 어떤 이유가 있는 게 아니다. 타고난 것이다. 사과가 빨간색으로 익어가듯 그건 당연한 것이다. 가끔은 내게 없는 것들을 가진 외향적인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난 한참을 그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나에 대해서 생각한다. 어색할 때도 있고 싫을 때도 있다. 무덤덤할 때도 있다. 모르겠다. 성격 때문에 고민할 나이는 지나서 인지도 모른다. 마치 퍼즐 맞추기처럼, 그리고 맞춤옷을 입은 것처럼, 어느 순간 내 안에 쏙 들어가 있는 나를 마주하게 된다. 남을 보듯 나를 보는 순간도 있지만, 대게 나는 나를 좋아한다. 아니 그렇게 생각한다.
난 운동신경이 좋은 것도 아니다. 특별히 잘하는 운동도 없다. 그나마 일 때문에 시작한 골프가 규칙적인 운동축에 속한다. 무라카미하루키처럼 수영과 마라톤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난 지구력과 근력이 좋지 않은 편이다. 25m 수영장도 나에겐 힘에 부친다. 그나마 중학교 때 가장 좋아했던 운동은 농구였는데 지금도 운동장에서 농구하는 사람들을 볼 때 기분이 좋아진다. 파리올림픽 때 미국 농구선수 카레가 보여준 마법 같은 삼 점 슛은 환상이었다. 허공을 가르며 그물로 빨려 들어가는 농구공은 기분 좋은 소리를 만들어 낸다. 요즘은 읽고 쓰는 것 외에 요리에 시간을 쓰고 있다. 내가 만든 미역국과 아욱국을 먹을 때마다 난 내가 좋아진다. 맛이 좋다. 엄마가 해준 맛이 나의 손 끝에서 나온다.
난 자주 내가 그어 놓은 테두리를 바라본다. 왜 그 테두리를 못 벗어나는지 궁금할 때도 있다. 테두리 밖으로 나간다 해도 탈선이 아닐 텐데, 왜 시간이 갈수록 테두리가 높아지고 견고해지는지, 마치 누군가를 가두어 놓는 울타리처럼 돼버렸다. 물론 누구에게나 테두리는 있다. 가끔은 테두리 밖으로 나아가 테두리 안에 있는 나를 바라보는 생각을 한다. 아까도 말했지만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고 외면하기도 한다.
하느님은 성경에서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였다. 성경을 있는 그대로 요약하자면 사랑이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려면 우선은 내 몸을 먼저 사랑해야 된다. 그래야 사랑할 힘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