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그날은 8월 말이었다. 그날 오후 비가 내렸다. 나는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밖은 여름비가 내리고 있었고 도로는 정체되 있었다. 차들은 서다 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비가 온다는 것 만 빼고는 그냥 평범한 하루였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그 하루는 꽝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차 안에서 나는 지인분과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 순간 꽝 하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내가 몰던 차는 빙글빙글 여러 번을 돌고 있었다. 정확히 두 번 반이었다. 그리고 앞차 일톤 트럭과 부딪쳤다. 심한 충격이 운전석 쪽으로 밀고 들어왔다.
고속도로 외벽 난간에 부딪친 차는 운전사 쪽 문짝이 깊게 파여 들여왔다.
그리고 깜빡이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캄캄한 침묵이 주변을 누르고 있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빙글빙글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내가 받던 그 묘한 기분이 다시 느껴졌다. 그 순간 분명 어떠한 모습들이 순식간에 지나갔고 그 짧은 시간에 난 책 몇 권을 읽었을 때처럼 여러 가지 생각과 질문들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마치 수압이 센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것처럼, 무중력으로 둥실둥실 몸이 떠오르는 듯했다. 수많은 생각들이 세포분열을 일으키며 생과 사를 덥석 덥석 물고 왔다. 내 몸과 마음은 유체이탈이라도 된 듯, 생각이 내 몸을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곧이어 살았구나 라는 생각이 천천히 다가왔다. 뒤차 운자사가 조수석 창문을 두드렸다. 그 순간 깜깜한 침묵이 휙 하고 사라졌다. 새벽녘 누군가 암막커튼을 쳐준 것처럼
내 의식은 다시 또렷해져 갔다.
"괜찮으세요 "
나는 그 소리를 붙잡고 조수석 차문을 열고 기어 나왔다. 내차와 부딪친 건 40피트 컨테이너를 실은 큰 트럭이었다. 저렇게 큰 차와 부딪치고도 이만하길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보면 행운이었다.
차량 밖으로 나와서 사고 난 내차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순간순간이 빠르게 생각이 났다. 마치 돌려 보기라도 누른 것처럼, 브레이크 파열음과 타이어가 찢어지는 소리와 번쩍거리는 불빛과 깜깜한 침묵이,
폭탄이 터진 것 같이 귀가 얼얼해지는 꽝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때 까지도 내차가 아닌 줄 알았다. 아니 내차가 아니길 바랐다. 청각의 인지 판단능력은 느렸다. 핸들을 잡고 있는 두 손에 푸른 정맥이 올라와 있었다.
사람은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과 팩트 앞에 서면 의식은 그 현실을 부정한다. 그리고 달아난다. 그 이전의 과거로, 그냥 평범했던 일상으로, 10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아무 사고도 나지 않았던, 컨테이너 차량 옆 이차선도로로 들어가기 전으로, 아니 고속도로가 아닌 일반 국도로 갈까 고민하던 한 시간 전으로, 정확히는 비도 오는데 모래 만나자던 약속을 바쁘다며 내일 보자고 했던 하루 전으로,
난 계속해서 사고 나기 전으로 되돌아가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건 이상하리 만치 묘한 기분이다. 마치 사고로 영혼이 빠져나간 사람이 죽어 있는 육신을 바라보듯이, 난 현실을 부정하고 있었다.
사고가 난 후 어디서 기다리고 있다가 달려온 차량처럼, 경찰차와 몇 대의 견인차, 그리고 보험차량이 내 주위를 포위했다. 그들은 내 차의 블랙박스 칩을 먼저 확인했다. 고성을 오가는 멱살 잡이 없는 깔끔한 판결이 곧 나왔다. 블랙박스를 이럴 때 사용한다는건만 빼고는, 나쁘지 않았다. 두 명의 배 떼랑 경찰관들은 컨테이너 기사를 불렀다. 제복이 잘 어울리는 경찰들 이였다. 제복 위의 다림질로 반듯한 주름이 보였고 비가 오는데도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그리고 위엄 있고 절대 빠져나갈 수 없다는 느낌이 들 수 있는, 오랫동안 몸에 밴 그런 말투였다. 무언가를 지시하거나 가르치는 것을 잘하는 목소리였다.
"기사님 백 프로 과실입니다.
여기 일직선 주차선 보이시죠. 끼어들기 안 되는 구간입니다. 끼어들기 안 되는 구간에서 그것도 뒤에서 옆으로 박으셨어요. 기사님이 손해배상 입원비 백 프로 하셔야 됩니다."
그리고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판관 포청청 같은 단오함이 깃든 표정을 지으면서 입가에 피해자를 안심시키려는 온화한 미소도 보여주었다.
"기사님 괜찮으세요
저분과 합의 안되면 고속도로 순찰대로 오세요. 저희가 보험회사에 이야기할게요. 백 프로 상대방 과실이니 빨리 병원 가서 치료받으세요."
여기까지 듣고 나서야 난 내가 입원해야 되는 교통사고 환자라는 걸 알았다. 견인차량 기사는 횡재라도 한 듯 내차를 끌고 가버렸다. 요란하게 119구급차량이 도착했다. 구급대원들은 나에게 타고 가라고 들것을 내밀었다. 무슨 정신인 지는 모르지만 난 외상도 없고 정신도 괜찮아져서 보험회사에서 보내준 차량을 타고 집으로 왔다. 그것도 직접 운전을 해서, 아마도 정신이 반쯤 나간 것이다.
집에 도착하고 나서야 난 내가 살았다는 게 큰 행운이었다는 걸 알았다. 아내는 내 이야기를 듣고 울음을 터트렸다. 살아 돌아와서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다음날 나는 가까운 병원에 입원을 했다. 외상은 없었지만 교통사고는 항상 후유증이 있는 법이라 꼼꼼하게 X레이 촬영과 정형외과 그리고 한방치료까지 받았다.
가끔 비 오는 날이면 그때가 생각난다.
꽝 하는 소리와 빙글빙글 돌아가던 차체, 그 찰나의 순간에 난 아내와 아이들의 웃는 모습이 떠올랐다.
"아 집에 가야 되는데 "
아마도 그 긴박했던 순간에 하느님께서 함께 해주셨으리라 믿었다.
그것 말고는 딱히 답이 나오지 않았다.
아무런 외상이 없었던 이유를,
이런 일을 겪고 난 후 난 더 카프카의 말이 좋아졌다.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유일한 인생은 일상이다"
난 나의 평범하기만 한 일상이 너무 좋다.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은 오늘이, 특별한 것 없을 내일이 있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