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과 젊음 청춘으로 사는 방법에 대해서
청춘으로 사는 방법을 이야기 해볼까 한다.
따스한 봄바람이 부는 날이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나무 밴치에 앉아
봄이 오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 여자는 마흔 살이나 쉬흔 살 정도로 돼 보였다. 나는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일렬로 심겨 있는 일 차선 도로옆 나무 의자에 앉아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그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부신 봄햇살이 도로옆에 자리 잡은 커피숍 통유리로 쏟아지고 있었다. 투명한 통유리는 쏟아지는 빛을 모두 반사시키기라도 하듯, 나를 향해 걸어오는 그 여자를 눈이 부셔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오른손을 올려 손차양을 치고, 내게로 걸어오는 그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 여자는 마치 영화에 한 장면처럼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발의 보폭과 손의 흔들림이 너무 근사해 보여 나는 모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약속시간을 확인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의 카톡을 기다리기라도 하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지난달의 투자한 주식 이백주의 매도시점을 결정해야 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 여자는 걸어오는 내내 계속해서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봄바람이 제법 차가 왔지만 계절에 맞게 베이지색 트렌치코트를 멋지게 차려입었다. 긴 생머리가 어깨너머로 날리고 있었고, 오른손으로 한쪽 귀밑머리를 귀뒤로 넘기고 있었다. 아직도 왼손으론 핸드폰을 잡고 있었고, 두 눈은 핸드폰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정확히 그때쯤 이였다. 봄바람이 그 여자의 귀밑머리를 세차게 흔들어 놓았다. 일 차선 도로에 요란하게 지나가던 차량들이 일제히 사라진 조용한 순간이 막 지나가고 있을 때였다. 이제 막 공연히 시작하려고 하는 연극무대처럼 그 여자는 가던 길을 멈춰 섰다.
그러더니 순식간에 마치 왈츠를 추는듯한 동작을 취해 보였다. 어느새 핸드폰은 뒷주머니에 질끈 꽂아 놓은 체, 두 손을 동그랗게 모으더니 한 바퀴 빙그르 돌고 있었다. 저 멀리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의 시선은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자연스럽게 혼자만의 작은 무도회를 펼쳐 놓고 있었다. 누구에게 보여 주기라도 할 것처럼, 진지하고 멋스럽게, 장난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동작엔 진심이 배어있었다.
그런 동작은 멀리서도 확연히 아름답게 보였다. 두 어깨와 손가락 끝, 목선과 몸짓 그리고 두 다리와 발끝, 어느 순간 쉰 살쯤으로 보였던 그 여자는 마치 애벌레에서 나비가 부화하듯이, 젊고 아름다운 발레리나가 되어 있었다. 손짓과 몸짓만으로 나이를 벗어던진 그 여자는 봄햇살을 받으며 날아올랐다.
난 순간 문화예술회관에서 공연이 있는 날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중요한 춤동작을 몇 가지 다듬어 가는 중일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인도 한복판에서 저렇게 춤을 출수는 없을 거야 맞아 "
그 여자는 오른손과 왼손이 머리 위로 둥글게 모아진체, 빠른 걸음으로 오른쪽으로 서너 걸음 가다가 다시 왼쪽으로 서너 걸음을 움직였다. 손동작과 몸동작이 서로를 끌어당기는 듯했다.
그 순간 정지된 화면이 다시 켜진 듯 마을버스 몇 대가 클랙슨을 울리며 지나갔다. 혼자만의 공연을 차분히 끝낸 그 여자는 홀연히 걷던 길을 다시 걷기 시작했다.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그건 순식간에 펼쳐진 짤막한 공연이었다.
난 그 순간 그 여자의 얼굴 표정을 보고 싶었다. 바람 때문에 머리가 휘날리지만 않았다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나이를 잊기라도 한 걸까! 어린아이들은 기분이 좋을 때 자기가 어디에 있는 줄도 모르고 춤을 춘다.
그 여자는 멀리서만 봐도 그리 젊어 보이지는 않았다. 그 여자는 자신이 이제 더는 젊지 않다는 걸 모를 리 없을 테지만, 그 순간만은 그 사실을 잊고 있었다. 그 여자는 그 순간 마치 어린아이라도 된 것처럼, 나이를 잊은 채, 근사하게 춤을 추었다. 비록 머릿결과 목선만은 젊음을 잃어버렸지만, 바람결에 흩날리는 꽃잎처럼, 둥글게 감아올린 손짓과 몸짓 속에 청춘은 가득했다.
그렇게 한결 젊어진 그 여자는 혼자만의 공연을 마치고 봄바람 불듯 홀연히 사라져 갔다. 마치 피를 빨아먹은 드라큘라 백작처럼, 더 젊어진 모습을 한 체,
그 보다 멋진 혼자만의 공연이 또 있을까 난 멀어져 가는 베이시색 트렌치코트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