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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 마을 해남 가는 길

조문 가는 이야기

by 둥이 Dec 2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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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 마을 해남 가는 길


아프고 나서야 아는 것이 있다.

오한과 두통이 느껴진 건 땅끝마을 해남에 도착할 때쯤 이였다. 어제 성당 형제님의 부친이 돌아가셨다고 연락을 받았다. 연말이기도 했고 종무식도 있었다. 그리고 대설경보까지, 도무지 그 먼데까지 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조금씩 마음이 몸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렇게 상황은 경황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그날 저녁 아내는 저녁밥을 먹으면서 이야기했다. 마치 독심술을 배운 듯, 나의 마음을 알고 있는 듯했다. 아내는 늘 이런 이야기를 할 때면 선생님처럼  짧고 단아한 말투로 말을 한다. 그런 말투 앞어선 다른 말을 할 수가 없다. 조용했고, 난 그 말에 순종해야 할 것 같았다.


 아마도 마음 한편에 있던 다른 마음이 세포분열 하듯 커져버렸을 수도 있었다. 다른 마음이라고 해봐야 부친상을 겪으신 형제님이 특별히 내가 좋아하는 분이라는 것과, 그런 분의 아버님이 돌아가셨는데 안 가보면 마음이 내내 불편할 것 같은 마음이었다. 그렇게 해서 난 반평생 처음으로 땅끝마을 해남으로 조문을 다녀와야만 했다. 다행히 늦은 저녁시간 성당 한 형제님이 같이 가겠다며 연락이 왔다. 다음날 12시 30분 우리는 해남 국제장례식장으로 출발했다. 마치 해리와 샐리를 만났을 때 첫 장면처럼, 우연히 모르는 사람과 장거리 운전을 동승하며 나누는 이야기들이 생각났다.


가는 길은 생각보다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운전석과 조수석에 앉아서 사는 이야기, 날씨이야기, 성당이야기, 역사와 종교 이야기, 아는 사람 이야기 도무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지루하지 않은 이야기들은 우리들을 340km 떨어진 해남으로 데려다주었다. 건장한 중년 남자 둘이 나누는 사소한 잡담과 수다는 때론 일상을 사는 이야기가 되기도 하고, 때론 미사 강론이 되었다가, 어쩌다가는 성당 사람들의 신상에 대한 이야기가 되었다가, 어느새 평범한 날씨 이야기로 돌아와 다시 인생학 강의와 종교와 역사를 아우르는 변화무쌍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건 얇으면서도 넓은 이야기 일수도 있었고, 어떤 면에서는 심해처럼 깊은 밀도 높은 이야기 일수도 있었다. 스케치하듯 스쳐가는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풍경화 그리듯 원근감으로 숨 쉬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삶을 아름답게 일궈주는 것들은 그리 복잡하지도, 그리 난해하지도 않다. 그건 심플하면서도 아주 진솔한 것들에 스며있다. 어느 날 우연히 찾아가게 된 긴 여행길에, 그것도 우연히 동승하게 된 지인분과, 삶과 시간과 종교와 문학과 취미와 생활에 대해서, 여과 없는 문답을 오갈 수 있다는 것 이런 시간을 통해 우리는 잠깐이지만  행복을 느끼게 된다. 계획되어 있지 않은 시간들, 우연과 우연이 만나 우연을 직조해 내는, 삶이라는 풍경화를 데생해 가는 시간들은, 삶을 윤기 있고 찰기 있게 만들어 낸다.


아마도 이런 시간들은 보물 찾기처럼 살아가는 여정 곳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삶이 그래서 아름다운 거라고 이야기들을 한다.


집으로 오는 길은 눈발이 내렸다. 눈발은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심하게 내리다가도, 어느 구간부터는 바람도 불지 않았고 눈도 내리지 않았다. 올라오는 340km 거리 역시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우린 어색하고 심심하면 어떡하나 내심 걱정도 했었지만, 대화중간 침묵과 침묵의 짧은 순간에도 어색하지도, 심심하지도 않았다. 정해진 대화주제 없이 이리저리 발길 닿는 데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말이 잘 통한다는 건 이런 걸까 나와는 띠동갑 이상 차이가 나는 어린 지인분과 그 먼 길을 다녀오면서 난 그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나이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는 건 물론 순전히 내 입장에서 그럴 수 있다. 상대방은 내내 어색할 수도, 그렇게 범절을 생각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상대방의 마음속까지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우리가 나눈 이야기들 속에서 편안함과 격식이 없었다는 것만큼은 서로가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런 건 표정에서나 말투에서나 쉽게 묻어나는 법이다. 고도로 훈련받지 않는 이상 감정은 대부분 숨겨지지 않는 법이다. 상황은 감정을 이끌어내기도 하고, 감정이 움츠려 들게도 한다. 우연히 동승하게 된 지인분과 우연히 나눈 10시간의 대화,


살다 보면 알게 된다. 이런 시간은 그리 자주 오지 않는다. 인생 여정이 그리 외롭지 않은 건 이런 만남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런 우연은 수 없이 많다는 것이다.

곰돌이 푸우가 매일 행복할 순 없지만 행복한 일들은 매일 있어라고 말한 것처럼,


집으로 돌아온 후, 조금씩 밀려오던 두통과 오한은 나를 쓰러트렸다. 간호사는 긴 면봉으로 콧속을 후볐다. 몇 주 전 아이들이 걸렸던 A형 독감이었다. 수액 네 봉지가 링거봉에 걸렸다. 톡톡 떨어지는 수액들을 보며 항암 수액을 맞고 있는 암병동이 생각났다. 아무 느낌이 없었다. 장인어른도 아무 느낌이 없었다고 했다. 수액이 혈관 속으로 퍼져갈수록 펄펄 끓던 체온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프고서야 알 수 있는 것은 환자의 통증이다. 환자와 보호자가 절대로 교감할 수 없는 유일한 것은 환자가 느끼는 신체의 통증과 그걸 지켜보는 보호자의 고통이다. 아프고 나서야 알 수 있는 것, 통증과 고통, 딱 그때쯤 해남 장례식장에서 본 지인분의 여든 아홉세 되신 어머님이 생각이 났다. 허리가 반으로 굽으신 어머님은 우리의 얼굴을 보기 위해 허리에 힘을 주었다. 어머니는 투명한 눈동자로 우리를 담으셨다. 그 순간 이상하게 눈물이 맺혔다. 어머님의 얼굴에서 엄마의 얼굴이, 삼십 년 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얼굴이 보였다. 사람은 누군가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면 더 이상 상대방을 낯선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그렇게 수액을 맞으며  주름진 어머님이 생각이 났다. 지인분의 어머님을 위해서 화살기도를 드렸다. 아프고 나서야 남겨진 어머님이 생각이 났고, 어머님의 견뎌야 할 시간이 생각이 났다.

그래봐야 알 수 없는 시간들 이지만, 어머님의 남겨진 시간이 행복 하기를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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