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용건이 아무리 급해도 웬만해선 그런 실수는 하지 않는다. 물론 통계학적으로 지금까지 살아왔을 때 까지가 그렇다는 것이다. 아마도 살면서 용건이 급하다 보면 알면서도 밀고 들어갈지도 모른다. 충분히 생전 남아 있는 시간 동안은 그럴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까지는 그런 실수는 하지 않았다. 뭐 누구나 정 급하다 보면 아무 데나 들어가는 경우는 있다. 그날 난 오 층에서 내려 남자 화장실로 들어갔다. 난 거의 무의식적으로 오른쪽으로 몸을 돌려 항상 들어가는 방향으로 들어갔다.
거긴 당연히 남자화장실이었다. 몸을 돌려 화장실 문을 연 순간 긴 머리카락이 어깨선 밑까지 내려오는, 아가씨가 손을 씻고 있었다. 순간 너무 놀래서 어이쿠 소리를 지르고 다시 나왔다. 손을 씻고 있는 여자는 긴 머리카락을 한쪽방향, 오른쪽 어깨에 쓸어 올려 고개를 살짝 기울인 채 손을 씻고 있었다. 전체적인 분위기며, 머리를 기울인 각도며, 긴 머리에 가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비스듬히 거울을 쳐다보며 입술을 오므리고 있을 법한 뒷모습이었다. 그러니까 정확히는 완벽한 뒷모습은 아니어서 옆모습이 반정도는 들어간 대각선 방향으로 서있었다. 넓지 않아 보이는 어깨선과 통이 넓어 보이는 검은색 정장바지가 전체적으로 잘 어울리는, 그런 뒷모습 아니 옆모습과 뒷모습이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되는데,
문을 열고 화장실 밖으로 나가 확인을 해보니 내가 들어간 화장실은 남자 화장실이었다. 난 제대로 찾아들어간 거였다.
"그래 분명 저 아가씨가 급해서 잘못 들어간 거네 "
난 그 여자분이 나올 때까지 화장실 밖에서 다소곳이 기다리기로 했다. 그렇게 일이 분 정도가 지나갔다. 조용했고 휴지로 손을 닦는 소리가 났고, 뜨거운 바람으로 손을 말리는 소리도 났다. 아마 정황으로만 본다면 곧 나온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그리고 문이 서서히 열렸다. 마치 아라비안나이트의 보물 창고가 열리기라도 하듯이,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온 여자는, 남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웨이브가 멋지게 진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청년이었다. 나를 향해 정면으로 걸어오는 그 청년은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다.
"어디야 지금 갈게 좀 만 기다려!"
누가 들어도 목소리만큼은 확실한 남자의 목소리였다. 그래도 이상했던 건 표정에서, 행동에서, 손끝의 움직임에서, 묘하게 배어 나오는 그 모랄까! 여성스러움!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난 한동안 힐끗대며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