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등 앞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
초록색 신호등이 켜졌다.
신호등이 켜진 후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어찌 된 일인지 2월 치고는 날씨가 제법 추웠다. 한껏 몸을 움츠리고 보폭을 짧게 해서 걷고 있었다.
횡단보도 중간쯤을 지나고 있을 때, 초록색 신호등은 깜박거리기 시작했다. 깜박이는 초록 신호등 밑으로 마치 시한폭탄의 꺼져가는 숫자처럼, 커다란 숫자가 카운트다운을 막 시작하고 있었다.
그때 이백 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버스정거장에서 한 여성분이 신호등을 향해 뛰어오기 시작했다. 긴 머리카락을 양옆으로 휘날리며 백미터 달리기 선수처럼 양팔은 위아래로 휘젓고 있었다. 무릎 밑으로 내려오는 검은색 롱코트는 달리기를 힘들게 하고 있었다. 마치 검은 롱코트 안에 갇혀 있기라도 한 사람처럼, 두 무릎은 양팔과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머리를 안 말리고 나 온건인지, 아니면 말릴 시간이 없어서 그냥 나온 것인지 모르지만, 롱코트에 붙어있는 머리를 충분히 감싸주었던 털모자가 바람에 날려 뒤로 젖혀져 있었다. 수능시험장을 향해 돌진하는 수험생처럼,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려오고 있었다. 그때쯤 나는 거의 신호등을 건너가고 있었다.
내 옆을 스쳐 지나간 그 여성은 초록색 신호등 밑으로 3 이란 숫자를 횡단보도로 진입하면서 확인하였다. 정확히는 그 여성이 과연 신호등을 건넜을까 내가 너무 궁금해서 가던 길을 멈춰서 뒤를 돌아보았을 때 3 이란 숫자가 켜져 있었다.
가까스로 꺼져 가는 초록색점멸등 앞에서 여성은 두세 발을 횡단보도 안으로 뛰어 들어가는 데는 성공했다.
나는 뒤에서 경마장이라도 온 사람처럼 나이스 하고 외치기까지 했다. 뭐가 좋았는지는 모르지만 그 여성의 절박함이 나에게 옮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 어서 뛰어 건널 수 있어"
나의 바람을 듣기라도 한 걸까 거짓말처럼 그 여성은 큰 덤프트럭이 굉음을 내며 검은 타이어자국을 남긴 체 정지하는 듯한 모습으로, 역동적인 두발은 이미 신호등 안으로 뛰어들어 갔지만 두 팔과 상반신은 반대로 허우적거리며, 운동화가 벗겨질 정도로 다리에 힘을 주어 횡단보도 앞에서 멈춰 섰다. 그 순간 끼익 거리는 정지음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난 그 뒷모습이 무척 안타깝기도 하고 안쓰러워 되돌아가 수고하셨습니다 안타깝네요 라며 위로를 하고 싶었다.
신호등 앞에 서 있던 그 여성은 다음 초록색등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몇 분 뒤 초록색등이 켜지기 무섭게 단거리 스프린터 육상선수처럼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 시간에 늦기라도 한 걸까 아니면 인근 정형외과 간호사인데 지각이라도 한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재래시장 두부라도 나오는 시간일까 아니면 피아노학원 강사일까 젖은 머리를 휘날리며 달려가는 그 여성을 점점이 사라지도록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뒤돌아 걸으면서 난 그 여성분이 분명히 어떤 사연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