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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검진이 무서운 이유

중년의 건강검진 이야기

by 둥이

나이가 들수록 무서워지는 게 있다.


누구는 아내라고도 하고, 또 누구는 자식이라고도 한다. 나에겐 건강검진이다. 분명 같은 건강검진이지만 젊었을 때 받는 건강검진과는 부담감이 차원이 다르다. 시대가 좋아져서 못 고치는 병이 없을 정도로 의학도 발전했다지만 암과 돌연사의 발병률은 늘어만 간다. 여전히 인간이 정복해야만 되는 불치병에 가깝다.


그래서일까 나이가 들수록 매년 받게 되는 건강검진이 때론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덜컥 큰 병원에 가보세요 라는 말을 듣게 될까 봐 무섭다.

그렇다고 안 받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년 건강검진을 받는다. 통계청 자료만 보아도 세명중 한 명은 암환자 라고 하니 어쩌면 이젠 흔한 병이 되었다. 그렇다고 암이 골절상이나 타박상처럼 치료만 받으면 낫는 병도 아니어서, 건강 검진이 두려운지도 모른다. 요즘은 평균수명이 팔십 세가 넘는다. 건강관리만 잘하면 구십 세를 넘기는 분들도 많이 있다.


아버지는 구순을 바라보고 있다. 다행히 그 연세에도 여전히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아버지는 늘 입버릇처럼 이야기한다.


"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 자식 앞세우지 않고 지금껏 살았으니 원이 없다."


아마도 그 말엔 거짓이 없을 거라 생각한다.


오십 중반 중년의 나이, 아직까지 책임져야 될 게 많은 나이다. 놓지 못하는 것들이 많아서 두려운 게 많다. 죽음도, 건강검진도, 암도, 심장마비도, 그 모두가 아직 나를 두려움에 떨게 만든다. 그런 영역에 한계가 있을 리 없다. 죽음만큼 공평한 게 없다.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다. 다만 시간이 문제 일뿐,


병과 죽음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 살아온 시간은 그만큼 중요하다. 그렇다고 살아온 시간이 절대적 일순 없지만,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대체로 보편적이다.


이런 부담스러운 건강검진을 (역설적이긴 하지만 더 건강하게 살기 위해) 며칠 전에 받았다.

이번에는 대장내시경까지 해야 돼서 사 일 전부터 식단 조절을 해야 된다는 문자가 들어왔다. 난 핸드폰으로 대장내시경 검색을 해보았다. 먹어도 되는 음식과 먹으면 안 되는 음식들이 자세히 올라와 있었다. 요약하자면 이삼일 전부터는 흰 죽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건강검진보다는 이삼일 철저한 식단조절을 해야 되다 보니 고통스러웠다. 대장 내시경을 받으려면 장을 비워야 한다. 해본 사람들은 안다. 위장을 비우는 일보다 대장을 비우는 일이 훨씬 고통스럽다는 걸, 같은 장이지만, 위장과 대장은 속이 비워지는 원리가 다르다. 위장은 한 끼 정도만 굶으면 속이 텅 비어서 공복감을 느낀다. 하지만 대장의 남아있는 잔변찌꺼기는 시간이 지나도 남아있어서 설사약을 먹고 짜내야만 한다. 이 과정을 해본 사람들은 새벽에 일어나 밤새도록 설사를 해야 되는 쾌변 아닌 쾌변을 봐야만 한다. 그렇게 많게는 열댓 번을 화장실을 드나들어야만 간신히 아침해가 띁 때쯤 속이 잠잠해지기 시작한다.


아침 일곱 시 부글거리던 속이 조금씩 편해져 갔다. 위장과 대장이 텅 빈 느낌은 나쁘지 않았다. 산다는 건 단순한 일이다. 먹고 배설하는 것은 신체적으로 살아있다는 것이다. 장을 비우고 나면 새삼 알게 된다.


중년의 남편이 아직은 아프면 안 된다는 것을 확인하려는 것인지, 아내는 수면내시경이 걱정된다며 보호자로 동행해 주었다.


지난주 아내의 건강검진을 따라나섰다. 그래서인지 아내도 건강검진을 동행해 주었다. 부정할 수 없지만 서로에게 보호자로 기대어 살아갈 나이가 되었다. 슬프다고 생각하면 슬퍼지는 나이지만, 서로를 챙겨줄 수 있다니 그 또한 행복이다.


한 시간 정도 복부 주요 장기들과 경동맥 초음파검사를 받았다. 혈류의 거친 흐름이 "팔딱팔딱" 마치 산부인과 아기 심장소리처럼 들렸다. 경동맥 안은 뇌로 올라가는 붉은 혈류로 꽉 채워져 있었다.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을 난 그때 비로소 느낀다. 이후에 위내시경과 대장내시경을 같이 받았다. 간호사는 입을 벌리라고 했다.그리고 식도안으로 스프레이 마취액을 뿌렸다. 순간 입속이 얼얼해졌다. 입속으로 파란 마우스피스가 들어왔다. 위내시경이 들어갈 구멍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왼쪽팔에 연결된 수액 주사기 안으로 수면제가 주입됐다. 보이는 기억은 거기까지가 전부다. 아무런 기억이 없지만 노련한 의사는 대장내시경을 휘저으며 용종 세 개를 떠어냈다.


용종이 떨어져 나간 자리에 피가 흥건했다. 기억엔 없지만 담당의사는 선명한 사진을 가리키며 모양이 암은 아니라며 안심하라고 했다. 초음파 사진들도 작년과 비교해서 달라진 게 없다고 했다. 그냥 아직은 건강하다고 말해주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한 건 이런 의사의 몇 마디를 듣기 위해 난 며칠간 금식을 했고 또 장을 비웠다.


고단했지만, 또 일 년을 허락받았다.

감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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