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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은 머리 카락으로 출근 하는 사람들

젖은 머리를 흔드는 사람들 이야기

by 둥이

젖은 머리를 흔드는 당신은


엘리베이터가 닫힐 때쯤 팔하나가 문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니까 몸은 아직 엘리베이터 문밖에 있는 셈이었다. 팔 층에 멈춰 선 엘리베이터는 이날도 가다 서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용케 엘리베이터를 멈춰 세운 팔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직 물기가 뚝뚝 떨어질듯한 젖은 머리가 어깨에 걸쳐 있는 젊은 아가씨였다.(흘러내리는 머리를 어떻게 처리하지도 못한 채 한 손으로 머리를 잡은 채로) 이 시간이면 머리를 말리지 못한 학생들을 자주 보게 되는데, 아주 가끔은 이렇게 젊은 사람들도 출근시간이 늦어서 타는 사람들도 있었다. 근데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이분은 엘리베이터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마치 강아지가 자기 몸에 묻은 물기를 털어내듯이 머리를 양옆으로 흔들고 있었다. 마치 엘리베이터 안이 가장 편한 장소이기라도 하듯이,

다행히 사람이 아직 꽉 차있지 않았다.


엘리베이터가 서고 가기를 몇 번 하다 보니 사람들은 금세 어깨를 맞닿을 정도로 불어났다. 내 옆으로 밀려 안쪽으로 들어선 여자분은 그때까지도 한쪽손으로 머리를 탁탁 털고 있었다. 그때 머리에서 털려 나온 작은 물방울들이 내 목덜미에 한두 방을 떨어졌다. 순간 비를 맞은 사람처럼 차갑다는 느낌이 밀려왔다. 예의가 없는 걸까? 그게 아니라면 어떡해서든지 머리를 말려야 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 정도 했으면 어깻짓이 불편해서라도 안 했을 텐데 일층에 다다를 때까지 탁탁 거리며 머리를 털고 있었다.


차가운 물방울이 내 목덜미에 떨어졌을 때 마치 전기에 감전된 사람처럼, 한겨울 차가운 물에 머리를 감고 말리기도 전에 학교로 뛰어가던 오래전에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는 머리를 말리던 드라이기가 없었다. 오로지 마른 수건의 흡입력과 팔의 노동을 빌려 머리를 말려야만 했다. 머리통이 꽁꽁 얼어붙는 느낌은 내 머리가 분명 붙어있기는 한데 내 머리가 아닌 것 같은 상당히 해괴한 느낌이 든다. 아마도 이런 기억을 가진 분들은 많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작정하고 씻기를 싫어하는 사람이거나 청결하지 못한 사람이라도 그래도 언젠가는 머리를 감아야 하니까 말이다.


이상한 일이긴 하지만(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이런 일이 생기니까) 아침시간엔 늘 머리 말릴 시간이 없었다. 일어나 세수하고 옷 입고 갈 시간마저 부족했다. 그렇다고 사방으로 뻗은 머리로 그냥 갈 수도 없었다. 젖은 머리를 사방으로 흔들어가며, 엘리베이터의 머리를 털던 여자처럼, 학교에 도착할 때쯤이면 거의 앞머리는 나풀거리며 말라 있었다.


어쨌거나 남자는 그래도 머리가 짧다 보니 손으로 몇 번 털거나 수건으로 두세 번만 닦아내면 금세 마른다. 하지만 여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머리를 감고 말리는 일은 아주 오래전 (조선시대나 그 이전의 시대에서부터 동양이나 서양을 구분하지 않고)부터 동서양을 떠나 모든 여자들에게 노동에 가까운 일이었다. 수건 하나로 모든 것을 해치우는 남자와는 달리 여자분들은 수건 세네 개는 기본적으로 필요하다. 머리 감는 날을 정해서 머리를 감는 여자와는 달리 남자들은 하루에 두 번(아침과 저녁으로 머리를 감거나 아침만 감거나 혹은 저녁에만 감거나) 혹은 한 번씩은 머리를 감는다.


육아를 해본 사람들이라면 이런 차이를 쉽게 알 개 되는데, 머리가 짧은 남자아이들은 머리를 감기고 말리는 일은 몇 분도 안 걸린다. 하지만 여자 아이들은 이야기가 달라진다. 거의 언아더레벨이다. 일단 머리숱이 많고 긴 머리카락을 감기고 말리는 일은 거의 노동에 가깝다. 드라이기가 터지기 직전까지, 드라이기가 뜨거워질 때까지,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을 구석진 곳까지 찾아서 말려줘야 한다. 잘못 말려줬다간 쉰내가 나서 다시 감아야 하는 생각하기 싫은 일을 다시 해야 돼서 되도록 품을 들여 공을 들인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이른 아침 마을버스나 지하철 사호선에서도 젖은 머리를 많이 볼 수 있다. 마른 정도가 다 다르지만, 젖은 머리가 신경이 쓰였던지 긴 머리를 어깨안쪽으로 (가방을 안쪽으로 매듯이) 쓸어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예의 바른 사람들이다. 어깨가 닿을 만큼 비좁은 장소에서 남들에게 혹시라도 피해를 줄까 봐 걱정하시는 분들의 몸짓은 이렇게 다르다.


몇 달 전에는 신호등 앞에서 젖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휭단보로로 뛰어드는 여자를 본 적이 있다. 저 신호등을 기필코 넘고야 말리라는 결연한 의지가 보였던 것은 한 손으로 젖은 머리를 잡은 체 두 다리와 어깨선은 스프린터 단거리 육상선수들이 보여주는 몸짓에는 그런 단호함이 베여 있었다.

언제나 젖은 머리에는 사연들이 있다. 전날 과음을 했다던가, 아니면 알람시간을 잘못 맞춰났다던가,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늦잠을 잤다던가, 그래도 머리는 감아야 되겠고 그래도 늦을 수는 없어야 될 때 우리는 과감히 하나를 포기해야만 하는데, 그때 우리는 젖은 머리를 휘날리며 문밖으로 뛰쳐나간다.


마치 지금이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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