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친구를 다시 만난 건 사호선 사당역 에서였다. 다시 만났다는 표현이 이럴 때 맞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바로 그 사람이 누군였는 지 모르는 걸로만 봐서는 몇 년 아니 몇십 년의 시간 속에 그 친구는 만났던 기억이 없었다.
지하철 사호선과 이호선이 교차하는 사당역은 환승하려는 사람들로 늘 붐볐다. 환승하려는 사람들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향해 걷다가 서로를 지나쳤고 다음 순간 사람들을 밀치며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환승역에서 그 친구와 우연히 마주쳤을 때 난 그의 모습이 너무 변해 있어서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이상했던 건 그 친구가 내 이름을 어떻게 기억하고 그 순간 자동판매기처럼 툭하고 정확한 이름을 부를 수 있었는가였다. 난 그때까지도 나를 불러 세운 그 친구를 기억해 낼 수가 없었다. 얼버무리는 내 앞에서 그 친구는 마치 며칠 전에도 봤었던 것처럼 너무도 자연스럽게 내 안부를 물어보았다.
그 친구는 내가 그 친구와 눈을 맞추고 그의 존재를 알아보기도 전에 , 그리고 그의 얼굴을 보고 그의 인상을 판단하기도 전에, 불쑥 다가와 인사를 했다. 미처 우산을 펴기도 전에 소나기가 떨어지듯이,
가끔씩 우연히 누군가를 만나게 될 때가 있다. 그렇게 우연히 만나게 됐을 때 서로가 반갑게 인사를 나눌 때도 있었고, 어떤 때는 한쪽만 반가워하는 때도 있었고, 드물긴 하지만 서로 반갑지 않아 눈을 피하는 때도 있었다. 그 친구에 기억 속에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도 길을 걷다 우연히 나를 보았을 때 내가 그렇게 반갑게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친구라는 걸 이해하는 데는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필요했다.
아마도 기억은 사실을 지우기도 하고 때론 만들기도 해 가며 스스로 조금은 변하기도 하니까, 문제는 기억은 그걸 구분하지 못하는 데 있다. 기억이 붙잡고 있는 기억이 어디까지가 그림자이고 어디까지가 기억인지를, 우리는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특히 그런 경우는 사건보다는 사람일 경우가 나에겐 많았다.
뼈대만 남아 빨갛게 녹슨 쇳덩이처럼, 기억은 줄거리를 잃어버리고 풍화되어간다. 어떤 사람이 오래전 내게 어떤 존재로, 어떤 친구로, 기억 속에 존재해 있는 건과 상관없이,
그 친구는 얼굴이 부은 건지 원래부터 살이 찐 건지 분별이 안되었지만 볼살이 목과 일직선으로 붙어 있었다. 턱선이 없어진 자리에 목이 연결되어 있었고 양복사이로 아랫배가 불룩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아주 잠깐 동안을 보았지만 난 그 친구의 옷에 묻어있는 얼룩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이상하리만치 그런 작은 얼룩은 그 사람의 이름보다 더 강력하게 그와 연결되어 오랜 세월 얼룩을 볼 때마다 그를 생각나게 만든다. 그리고 까만 뿔테 안경 너머로 미간을 찌푸릴 때 보이는 주름을 보았을 때 오래전 내가 보았던 어떤 사람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분명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이었다.
그 친구는 제 위치에 걸쳐있는 뿔테안경을 오른손 약지손가락으로 계속해서 지겨 올렸다. 그건 그 친구의 습관인 듯했다. 그게 아니라면 자기도 모르는 감정변화에 당황했거나, 갑자기 나타난 그 친구의 등장에 나도 모르게 그 친구의 인사에 덩달아 손을 내밀며 악수를 했지만, 악수를 하면서도 난 그 친구의 이름은 떠오르지 않았다. 첫 직장 동기라면 확실히 알 것도 같았지만 학교 다닐 때 알던 친구인 듯했다. 인사를 나눈 건 삼십 초도 안 되는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밀려드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벽에 바짝 붙어 서서 몇 마디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난 그 친구와 헤어진 후 일주일이 지나서야 그 친구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것도 이름은 이직 생각이 나지 않았지만, 대학교 일 학년 한 학기를 다니다 다른 학교로 편입 갔던 친구였다. 그걸 알 수 있었던 건 하얀 옷에 묻어 있는 선명한 얼룩자국과 뿔테 안경너머로 보였던 이마의 주름 때문이었다. 이름도 기억 안나는 친구였지만 또룟할 정도로 얼룩과 주름이 희미하게 생각이 났다. 그렇다고 한 학기동한 친했다고 하면 말이 되지만 난 그 친구의 이름도 모를 만큼 대화를 길게 해 본 적도 없었다. 그렇치만 그 친구는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도 수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 걷고 있는 나를 순식간에 알아보고 이름까지 부르며 인사를 나누었다. 마치 이날을 기다리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래서인지 더욱 그런 설명할 수 없는, 정확히는 내가 잃어버린 기억이 혹시나 있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내 기억에는 없지만 그 친구처럼 나도 이름을 기억할 정도로 친하게 지낸 기억들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풍화되어 버린 시간들이 말이다.
우연히 그 친구를 만나고 난 후 가끔은 내가 잃어버린 기억이 궁금해졌다. 어디에선가 어느 누구의 기억에서는 선명하고 또롯하게 살아있는 나에 대한 기억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