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에 대한 생각
우연이란 많은 일을 하지
나는 산본에서 이십 년 넘게 살고 있다. 인구 이십오만 정도 되는 작은 도시에서 살다 보니 지금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 오래전에 만난 사이 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최근 지인분의 안 좋은 소식을 듣고 난 후다.
그분들도 산본에서 오래 거주했다고 하니 어쩌면 우리는 서로 모르고 지냈던 날들 중에 우연히 만난 사이일 수도 있다.
내가 그분들을 알기 전, 그러니까 아주 오래전 우리는 어쩌면 우연히 만난 사이일 수도 있다. 좀 더 자세히 이야기를 하자면 그분이 약속이 있어 산본시내 중심상가를 우측방향에서 걸어가고 있을 때나 혹은 밤새 에어컨 바람으로 감기에 걸려 이비인후과 병원 계단을 좌측방향으로 걸어 내려올 때, 그때 난 그분의 반대방향에서 내려오고 있었는지 모른다. 우리는 다만 서로에 기억에 존재하지 않을 뿐이지, 만나지 않은 사이는 아닌 것이다. 누가 알겠는가 그때 갑자기 이유 없이 강렬한 눈빛으로 앞을 바라보다가 스쳐가는 나의 눈길과 마주쳤음을, 그래서 한두 시간 아니 일이십 분 정도는 그때 내 앞으로 걸어오던 그분에 대해서 기억을 했다거나 걸음걸이를 흉내 낸 적이 있다는 걸, 우리의 기억은 붙잡고 있지 않았지만, 만약 영화에서 처럼 그 어딘가에 CCTV가 있어서 지나가는 행인에 불과했던 우리를, 클로즈업되어 촬영이 되었다면, 아 하고 그분을 다시 기억해 낼 수 있을까 아니 기억할 수가 없을 것이다. 우연은 그냥 스쳐가는 모든 것에 의미를 두지는 않는다.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존재하는 모든 것은 어쩌면 우연과 우연이 만나 필연과 기적을 만들어 나가는 것일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지 않고선 영화처럼 믿을 수도 없는 우리의 현실은 지금도 계속 우리의 시간을 만들어 내고 있다.
우선 결혼과 이혼에 대한 생각을 하다가 그것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어느 순간 생각은 우연이라는 단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왜 그랬을까 우리가 만나서 관심을 갖고 그리고 관계를 맺고 그리고 그 관계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 결혼을 한다. 우리가 그렇게 우연히 만나 관심을 가지고 관계를 맺은 사람과 어느 날 그 관계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 이혼을 하게 되기까지, 우리는 종종 그래 왔듯이 우연보다는 어쩌면 우리의 선택에 대한 필연적 결과를 맞닥트리게 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우리가 서로 모르는 사이였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사소한 행동들은, 왜 서로에게 상처가 되어 아픔을 주는지, 그런 관계의 역행은 왜 생기는 건지, 궁금해졌다.
관계는 어느 날 태풍처럼 우리를 휩쓸어가 표류하게 만든다. 관계란 원래 그렇다. 그게 무슨 관계이든지 간에 관계는 생각하는 데로 전개되지 않는다. 원하는 것만 할 수도 없고, 취사선택의 자유로움에서 일정 부분을 강탈당한다. 좋든 나쁘든 타인의 의사를 존중해 줘야 되는 게 관계의 본질이다. 관계는 뇌혈류의 흐름을 관장하는 사감선생님처럼 작은 우연에 사건에 의미를 부여한다. 마치 아담과 하와가 모든 것에 이름을 부여하듯이, 그전에는 무의미로 어쩌면 존재했었음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모든 것들이 바로 그 관계로 인해 생겨난다. 어쩌면 그 관계는 저항할 수 없는 물결이 되기도 하고 도파만을 분출하게 해주는 지룃대가 되기도 한다. 관계는 모 아미면 도가 될 수도 있고 드물지만 가끔 걸이나 개가 나오기도 한다. 한마디로 예상할 수 없는 모든 결과가 결국 관계가 만들어 주는 작품이다. 그리고 그 관계를 만들어 주는 것이 우연이라는 것인데, 아무리 들어도 이 개념은 언아더레벨 이어서 질문과 대답이 원활하게 흐르지 못한 채, 어느 순간 침묵하게 만든다.
알겠지만 관계는 우연이라는 개념에서 출발하게 된다. 기획된 포트에서 천지 창조 그때부터 마치 조물주처럼, 서로의 존재를 알고, 아기예수의 존재를 알고 별을 따라 마구간으로 찾아온 동방박사들이 아니라면, 우리는 철저하게 서로의 존재를 모르는 상태로 존재하다가, 어느 날 어느 순간 어느 시간아래 기가 막힌 타이밍에 서로에 기억 속에 비집고 들어온다. 이것 만큼 마법 같은 우연이 또 있을까 그 많고 많은 사람 중에 왜 하필 나란 말인가 생각해 보라 그 이유에 대해서 논리적인 설명으로 관심의 시작점을 설명할 수가 있을까
우연은 많은 일을 한다. 때론 많은 일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데도 그 우연이란 개념은 그냥 놔두지를 않는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표피처럼 달라붙어 서서히 스며든다. 서로의 관심 속으로, 그리고 서로의 관계 속으로, 한발 한발 디뎌 놓는다. 아무리 인정하지 않으려 해도 이 모든 건 우연이 시작되었고 우연이 그렇게 의도적으로 기획했는지 모른다. 그러니까 관계의 종지부는 우연이 만들어 놓은 함정 혹은 블랙홀 일 수가 있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는지 모른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오랜 우연의 반복이 서로에게 상처가 되어 이혼을 선택한 지인분들은 지금 별거 중에 있다. 그분들을 따로 만나 본들, 별률 사전보다 더 자세한 용어들을 써가며, 이미 다른 우연을 찾아 나선 상태라,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나저나 우연은 참 많은 일을 한다. 세상 어떤 것도 우연보다 바쁜 것은 없다. 다만 바랄 게 있다면 우연이란 게 우리에게 덫이 아닌 덤을 만들어 주기를, 그래서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마주하는 모든 우연들이 우리에게 행복을 만들어주기를 간절히, 모든 것을 알고 찾아온 동박박사들처럼, 다만 그래주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