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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노부부의 돈가스와 냉메밀

얼굴근육이 닮은 노부부 이야기

by 둥이

어느 노부부의 돈가스와 냉메밀

얼굴근육이 닮은 노부부 이야기


그날은 비가 내리는 점심시간이었다.

박 과장은 우산을 쓰고 앞서 걸었다.

난 비도 오고 가까운 곳에서 대충 끼니를 때우려 했다. 비도 오고 멀리 걷고 싶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맑은 날씨였더라도 신호등을 건너고 두 골목이나 떨어져 있는 작은 식당을 찾아가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먹는 것에 그리 품을 들이지는 않으면서, 맛있는 걸 찾는 나 같은 사람도 있는 반면에, 박 과장처럼 한 끼를 먹더라도 어제와 다른 메뉴를 골라 걷는 거리와 상관없이 맛집을 찾아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건 성향이라기보다는 게으른 거라는 생각이 가끔 들었다. 좀만 걸어 나가면 다양한 메뉴와 맛집을 번갈아 먹을 수 있는데도 그걸 안 한다는 건, 그냥 게으른 것이라고, 단정 지었다.


먹는 것에 품을 들이지 않는다는 게, 맛있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어서 여간 역설이 아닐 수 없지만, 그래도 난 박 과장처럼 핸드폰 웹을 켜서 골목길 구석에 숨어있는 맛집까지 찾아 점심시간에 반 이상을 사용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쩌면 달리 생각하면 성향 일수도 있겠지만,

성향과 게으름 그 중간지점 인 가능성도 있다. 여하튼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그렇게 그날도 회사 주변 늘 가는 식당을 갈까 하다가, 박 과장이 맛있는 돈가스집이 있다며, 나를 끌고 가다시피 했다. 정작 싫다면 안 갈 수도 있었지만, 마음이 내키지 않은 것을, 몸이 먼저 아니 발이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가끔은 그런 날도 필요했고 또 가끔은 꽤나 성공적이어서 들인 시간만큼 마음이 든든해져 돌아올 때도 있었다. 그런 가끔은 자주 여도 좋으련만, 내겐 정말 드문 가끔이다.


창이 넓은 우산을 쓰고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늘쌍 다니던 길에서 이렇게 한 골목만 다되지 않던 골목길로 발을 들여놓아도, 그곳은 전혀 낯선 장소가 되어 나를 반긴다. 다섯 시간을 차를 몰고 도착한 속초 시내의 골목길과 전혀 다르지 않다. 그만큼 그 골목길은 낯설고 다른 동네처럼 보였다. 시공간의 개념이 이런데선 통하지 않는다. 다른 각도로 바라보지 않으면 아무리 오랫동안 마주한 사물이라도, 그 본질이 가진 다양함을 마주 할 수 없다. 10분 정도의 거리, 도로로 이어져 있는 거미줄 같은 골목길, 골목길의 골목길을 두 번 아니 한 번만 들여다보면 우린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되어 버린다. 흰 토끼 한 마리가 초침시계를 들고 내 뒤를 쫓아다니고 있을 것 같은, 그런 공간이 어느새 눈앞에 펑하고 나타난다.

그렇게 가깝게 닿아있는데도 말이다.

이상한 일이다. 이런 느낌은, 항상,


그렇게 낯선 골목길을 십여분 걸어 도착한 돈가스집은 아담하고 소박해 보였다. 하늘색 차양과 하늘색 대문으로 그려진, 돈가스집과 어울리지는 않지만, 단단해 보이는 내공이 느껴졌다. 오는 사람만 찾아올 것만 같은 오래된 나무향기는 나지 않았지만,

대여섯 개의 테이블에 벌써 손님들이 앉아 있었다.


다행히 가운데 자리가 비어 있었다. 우리 옆으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나란히 얼굴을 맞대고 앉아 있었다. 우린 그 옆자리에 조용히 앉았다. 두 분은 무슨 재미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듯했다. 아마도 어제부터 내린 집중호우로 비걱정을 하고 있는 듯했다. 간간히 자식들 이름을 불러가며 그 나이 때에 맞춰 맞춤옷을 입듯 걱정도 정해져 있는 듯 보였다.


그때 돈가스와 냉메밀이 두 분 테이블 위에 놓였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돈가스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주었다. 능숙하지는 않았지만, 시간을 들여 돈가스를 썰었다. 할머니는 내가 해도 된다며 돈가스접시를 잡아당겼다. 아름다운 실랑이였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얼굴엔 자주 사용한 얼굴근육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만큼 그대로 올라와 있었다. 서로를 바라보는 웃는 얼굴이 닮아 있었다.


아마 그때쯤 우리 테이블에도 돈가스가 놓였다. 배가 고팠던 던 지, 원래가 맛있었던 건지, 그것도 아니라면, 서로에 기대어 맛있는 식사를 하시는 어느 노부부 곁에서 먹어서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돈가스는 맛이 좋았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되어 찾아간 골목길에 돈가스집, 그곳엔 얼굴근육이 닮은 노부부가 돈가스를 썰고 있었다. 돈가스와 냉메밀, 노부부만큼이나 어울리는 점심 만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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