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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청춘 할머니의 핸드폰 이야기

마음은 청춘 꽃무늬 원피스 할머니 이야기

by 둥이

할머니의 핸드폰


작은 테이블이 세 개 놓인 가게 안, 키오스키 앞에서 주문을 한 후 빈자리가 나오길 기다렸다.


무더운 날씨 덕분인지 팥빙수 가게는 사람들로 붐볐다. 카운터에서 배달웹 주문신호가 계속 들어오고 있었다. 주방 안에서 두 명의 종업원이 빙수와 주문음료를 만들어 놓기 무섭게 배달웹기사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정확히 다섯 명의 배달웹기사가 다녀간 후 내가 주문한 아이스아메리카노와 반반 팥빙수가 나왔다. 반반 팥빙수는 중국집 짬짜면 그릇에 담겨 있었다. 토핑 종류에 따라 다양한 팥빙수가 만들어졌다. 인절미, 수박, 블루베리, 망고, 딸기, 과일빙수, 이중 아이들은 망고팥빙수와 인절미팥빙수를 골랐다. 종류가 많아 고르기가 힘들었다. 차고 넘치는 식탐 앞에서 언제나 선택장애가 온다.


반반 팥빙수는 깊고 넓은 용기에 수북이 담겨있었다. 몇 번 떠먹다 보니 배속이 얼얼해져 갔다.


정확히 그때쯤 뱃속이 팥빙수 얼음조각으로 덮여갈 때쯤 한 분의 할머니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할머니는 목덜미로 흐르는 땀을 닦고 있었다. 할머니는 베이지색 꽃무늬 원피스가 꽤나 잘 어울렸다. 가까운 곳을 가더라도 단정하게 차려입는 분으로 보였다. 그 나이대에 즐겨 입는 화려한 원색이 아니었다.


흰색 단화 위 하얀 양말만 보더라도 알 수가 있었다. 그런 우아함은 옷감이 구겨졌는지나 옷감에 베어든 얼룩에서 쉽게 보이게 된다.


할머니의 꽃무늬 원피스 위로는 핸드폰이 오른쪽에서 왼쪽 어깨 방향으로 빨간색 줄에 연결되어 매달려 있었다. 그 위치는 정확히는 작은 가방이 내려와 있어야 되는 곳이었다. 얼핏 보면 핸드폰은 핸드폰으로 보이지 않았다. 손지갑보다 조금 커 보이는 가방이 허리춤에 내려야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할머니는 진한 립스틱을 바르지도 화려한 화장을 하지도 머리 손질을 하는데 공을 들이지도 않았지만, 여자다운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하얗게 센 머리는 헝클어져 느슨하게 묶여 있었고 그래서인지 전체적으로 그 나이대보다 더 젊은 사람으로 보였다.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아주 작은 것 하나가 할머니를 그 나이대로 보이지 않게 해 주었다. 이상한 일이지만 그런 건 쉽게 눈에 뜨인다. 마치 전문가에 손을 거쳐 쇼윈도에 내놓은 가을 신상품처럼,


할머니의 우아함은 그런 데서 느껴졌다. 시간도 이런 사람들에게는 앗아가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나이를 들어가게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타고난 것들을 빼앗아 갈 수는 없다. 아마도 이런 사람들은 나이가 더 들면 들수록 더 완벽하고 분명하게 자신을 만들어간다. 한마디로 아름답게 늙어간다. 곱게 곱게, 아름다움을 잃지 않은 꽃처럼


할머니의 목소리는 알토보다는 소프라노에 가까웠다. 정확한 음계는 알 수 없었지만 도레미파솔라시도에 "라"에 가까운 음색이었다. 시원한 미숫가루나 오미자차를 주문하지 않을까 하는 나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할머니는 또랑또랑한 성우 목소리로 시원한 아아 한잔을 주문했다. 그리곤 민생쿠폰으로 결재할게요 하며 핸드폰을 찾았다.


아까 들어올 때부터 할머니의 핸드폰은 오른쪽에서 왼쪽방향으로 어깨띠를 두른 것처럼 허리춤에 매달려 있었음에도, 할머니는 방금 전까지 손에 들고 있기라도 했던 것처럼, 손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할머니는 오른쪽 어깨에 매달린 주황색 에코백을 뒤져보다가, 두세 번 팔을 휘젓는 동작으로 잃어버린 줄 알았던 핸드폰을 찾은 듯했다.


"아 여기 있었죠 핸드폰이 "


어깨에 두르고 다닌 지 얼마 안돼 익숙하지 않다며 그래도 어깨에 매달려 있으니 다행이라고 했다.


이게 그렇게 심각한 일도 아닌 것은 가끔 우리는 왼손으로 핸드폰을 잡고 왼쪽귀에 핸드폰을 붙여 통화를 하다가도, 이번말 예상매출과 아이들의 학원 숙제 이야기를 하다가 그만 핸드폰을 카페에 두고 온건 아닐까 하는 확신을 가지고 다시 백 미터나 떨어진 커피숍으로 되돌아간 적도 있다는 걸 생각하게 된다.


이런 일은 아무 때나 불현듯 겪게 된다. 하지만 막상 그런 일이 냉장고라든가 차 안이라든가 옷장에서 내 핸드폰을 찾게 되는 경우였다면, 아 네가 늙었구나라고 생각될 수도 있다. 아직까지는 다행히 그런 심각한 일은 없었지만,


옆자리에 앉으신 할머니의 왼손은 잃어버린 줄 알았던 핸드폰 위에, 오른손은 미소 짓는 입술 위에 포개져 있었다. 아마도 그런 동장은 오래도록 할머니의 몸에 베인, 단짝 친구들과 떡볶이를 먹으며 이야기할 때 나왔던, 수줍고 어색한 손동작 이었을 것이다.


그때쯤 할머니가 주문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나왔다. 할머니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상반신을 사십오도 각도로 숙여 하얀 빨대에 입술을 대고 한 모금, 시원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의도한 것인지 몰라도 그 모습이 마치 홍대 앞 여대생들처럼 멋져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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