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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과 현실 그 중간쯤에

낯선 풍경 속에 잃어버린 퍼즐을 찾아서

by 둥이


그건 분명 낯선 풍경이었다.


어디에나 있는 아파트나 빌딩이나 건물들이 아니었다. 어쩌면 홍콩 영화에서 자주 보던 장면들과 겹칠 수도 있었다.


비탈길 양옆으로 길게 늘어선 건물들 사이로 무질서하게 전선줄이 이어져 있었다. 거미줄처럼 연결된 전선줄 위로 회색 콘크리트 고가철로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시발점이 어디냐에 따라 왼쪽은 오른쪽이 되었다가 왼쪽이 되기도 하고 왼쪽이 되었다가 오른쪽이 되기도 한다. 그 회색 콘크리트 외벽 위로 지하철 사호선이 십 분 간격으로 지나간다. 아주 정확히 지하철이 지나가는 간격을 재보지는 않았다. 다만 자주 들리는 소리와 자주 보게 되는 지하철 사호선이, 이제 너무 익숙해져 아무렇지도 않게 보게 된다.


분명 저런 풍경은 쉽게 볼 수 없는 것라는걸 안다. 이상하다면 이상한 일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저런 풍경에 익숙해진다는 것이... 더 이상한 것은 어디선가 본 듯한 착각마저 들게 된다.

보고 있는 풍경과 기억 속에 조각난 퍼즐이 이미지화되어 가상과 현실을 믹스해 나간다.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지는 순간이다.


저렇게 큰 지하철이 공중에서 지나가고 있다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보고 있는 거다. 지하철은 4분의 3을 공중에 드러낸 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정해진 반복을 반복한다. 회색 콘크리트 외벽 위로 보이는 순간의 모습만 사진으로 찍는다면, 비탈진 도로의 지평선과 지하철 사호선은 마치 도로 위에서 주행을 같이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예전 대중가요가 한참 유행하던 시절, 조성모의 뮤직비디오에 이런 장면들이 나온다. 지하철 안에 여자와 지하철 밖의 남자가 서로를 알아보고 지하철의 주행방향을 따라 남자가 차를 타고 따라가는 장면이 있다. 그것과는 상관이 없겠지만, 그 장면이 잃어버린 퍼즐처럼 기억 속에 남아 있어서 인지도 모르겠지만, 난 항상 지하철 안에 타고 밖을 내다보고 있는 타인이라는 "나"를 생각하곤 한다. 그 사람의 시간과 나의 시간이 같은 시간대에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 그런 생각들은 물안개처럼 자욱하게 스며든다.

별 쓸모없는 생각이란 걸 알면서도 자주 그런 생각을 한다. 이상한 일이다.


어쩌면 저렇게 낯선 풍경이 어느새 낯익은 풍경으로 변해버린다. 고가철로로 지나가는 지하철을 하루에도 수십 번을 본다. 지하철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는 사람들의 형상이 흐릿하게 보인다. 분명 창밖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며 거리를 걸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우연과 인연은 이런 묘한 시발점에서 시작되곤 한다. 때론 일인칭 화자가 거리를 걸어가기도 하고, 때론 지하철 창밖을 바라보기도 한다. 그리고 그 옆으로 내가 지나가고 있다. 이야기는 늘 이렇게 시작된다.


무라카미하루키 소설에는 이런 도시고 가 고속도로나 거리 풍경이 마치 사진처럼 묘사되어 있다. 어느 순간 읽고 있는 것인지, 보고 있는 것인지, 감각의 오류가 생기게 된다. 글 속으로 빨려 들어가 유체이탈이 된 기분이 든다. 아라비안나이트의 보물 동굴이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의 시계를 든 흰색토끼처럼, 다른 세계로 순식간에 이동한다.


때론 현실이 가상이 되기도 하고, 가상이 현실이 되기도 한다. 경계의 구분이 빗장을 풀어간다. 아마도 현실에서 보게 되는 어딘가 낯익은 풍경들은 익히 소설이나 이미지로 보았던 조각난 퍼즐 인지도 모른다.

어느 순간 보게 되는 풍경이나 이미지는 마지막 퍼즐을 맞춰주어 기억을 소환한다.


마치 주문을 외우면 펑하고 나타나는 요술램프의 지니처럼,


삶은 가상과 현실 그 중간쯤을 살아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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