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과 먼지에 대해서
남자 갱년기- 소멸과 먼지에 대해서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 창세기 3:19
지금보다 젊었을 때, 그러니까 이십 대쯤 혹은 삼십 대쯤 그 나이대는 늘 불안했었다. 어쩌면 그 감정이 정확히 어떤 감정인지는 모를 수도 있다.
다만 시간의 흐름이 아프고 더디게 흘러간다는 것만 알 수 있다. 그냥 이십 대의 그 알 수 없는 감정을 난 불안이라고 불렀다. 하루 세끼를 먹어야만 살 수 있다는 것을, 돈이 없어 몇 끼를 굶어보면 알 수 있다. 그래 그땐 돈이 없어서, 솔직하게는 무엇이 되어야 할지 몰라서, 세상이 무섭고 두려웠는지 모른다. 비겁하고 무섭고 피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이십 대의 어느 날은 열심히 무엇인가를 하고 있어도 늘 불안했다. 이십 대의 모든 날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더 불안했고, 다행히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고 있어도, 그것과 상관없이 불안했다. 불안은 날씨처럼 자기 멋대로 찾아왔다. 햇살 좋은 날도 있었지만 궂은날도 있듯이, 마음속은 무엇인가에 쫓겨가듯 버티며 살아가는듯했다. 불안은 내 의지대로 통제되지 않은 곳에 버티고 서있었다. 그렇게 이십 대의 막차를 타고 간신히 취직을 했고 그렇게 삼십 대를 맞이해서 결혼을 했다. 그 이후의 시간은 마치 조각 퍼즐처럼 있어야 할 시간들을 맞춰가는, 내 시간이 아닌 시간들로 채워져 갔다.
상실감, 지금 나에게 남은 건 아마 불안과는 많이 다른 감정이 세포분열하듯 커져가고 있다. 사람들은 그걸 우울증이라고도 부르고 갱년기라고도 부르는듯했다.
모든 게 있어야 될 자리에 있었고, 회사에서 쓸모없는 사람으로 평가받지도 않았다. 여전히 평균 이상의 연봉을 받았다. 한 달에 한두 번 골프를 치고 여름이면 해외 휴양지로 여행을 다녀오고 있다. 아픈 가족도 없었고 아이들도 밝게 잘 커가고 있었다. 어디 하나 삶을 힘들게 만드는 거라곤 없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책을 읽었고 틈틈이 블로그에 글쓰기를 했다. 평온하기만 한 삶이었다. 회사 매출도 그럭저럭 유지되고 있었다. 역세권에 자가 아파트와 주식과 예금으로도 적지 않은 돈을 돌리고 있었다. 매년 건강검진에도 특별히 나쁜 데는 없었다. 모든 지표가 평균 이상의 삶을 유지해 나가고 있었다.
무엇 하나 빠질 것 없는 삶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이런 지표들은 상실감을 더해 줄 뿐, 더러 주지는 못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난 가끔씩 우울했고 또 가끔씩 공허했다. 이상하게도 그때마다 과거와 미래로 널뛰던 정신줄이 어느 문장에 사로잡히곤 했다. 늙수그레한 우리 아버지에게 땅을 일구는 농사일이 오늘을 살게 해 주듯, 나 역시 늙어가며 지금을 살게 해주는 고마운 것들이 있다. 누구에게나 지금을 살게 해주는 것들이 있다. 아마 그런 것들이 있어 우리의 상실감이 조금은 완화되는지 모른다.
소멸의 궤도 -
어느 날 차 안 라디오에서 김광석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알겠지만 어떤 노래는 순식간에 세상을 정지시킨다. 차 안은 조용했고 김광석의 목소리는 어딘가를 콕콕 찌르고 있었다. 흥겨운 멜로디와 서정적인 가사가 콘크리트처럼 단단해진 현실을 말랑말랑하게 만들어 갔다. 달콤한 초콜릿이 현안에 감겨오듯 기분이 좋아졌다. 먼지가 되어 가사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을 때 장인어른이 생각이 났다. 모든 생각은 이유 없이 찾아온다. 내가 이걸 생각해야지 마음먹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수많은 뉴런 세포는 어디엔가 묻어있는 기억을 찾아온다. 바람 불듯, 햇빛 나듯, 비가 오듯, 생각은 벼락 치듯 내게 온다.
봉인찍인 등기우편물이 날아오듯이, 생각에는 그런 치밀함도 계획성도 정확성도 없다.
이미 노래가 끝났고 한 시간이나 지났지만, 김광석의 노래가 흘러가지 않고, 내게 남아 있었다. 마치 무엇이라도 받아 가야 될 세금 징수원처럼, 나는 한참을 멍하니 블랙 홀로 빨려 들어가듯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의식은 또 다른 의식을 지우고 있었다. 무의식의 세계, 그 안에서 난 소멸이란 단어가 생각이 났다. 왜 그 단어가 생각이 났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노래 가사와 무관 치는 않은 듯했다. 먼지가 되어라는 부분이 주는 묘한 여운이, 며칠 전 읽은 시집에 닿아 있었다.
소멸, 먼지가 된다는 건, 소멸된다는 것에 가깝다. 소멸된다는 건 존재하지 않은 것에 가깝다.
벚꽃이 한창 피던 어느 봄날에 장인어른은 한 줌의 재가 되었다. 한 시간 사십 분, 한 명의 사람이 먼지가 되는 데 걸리는 시간, 하얀 유골함에 담긴 장인어른을 가슴에 안았다.
우리는 모두 소멸되어 간다.
어제 읽은 이 바라기 노리코의 시가 생각난 건 아마 먼지가 되어라는 가사의 파장인지도 모른다. 전자기파 일 수도 있고, 자기장 일 수도 있고, 그냥 우주의 모든 에너지는 연결되어 있다는 것, 말하고 싶은 무언가가 그 궤도 안에 있다.
행방불명의 시간>- 이바라기노리코 지음
인간에게는
행방불명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속삭이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삼십 분도 좋고 한 시간도 좋고
멍하니 혼자
외따로 떨어져
선잠을 자든
몽상에 빠지든
발칙한 짓을 하든
전설 속 사무토 할머니*처럼
너무 긴 행방불명은 곤란하겠지만
문득 자기 존재를 감쪽같이 지우는 시간은 필요합니다
언제 어디서 무얼 하는지
그날그날 알리바이를 만들 필요도 없는데
길을 걸을 때나
버스나 전철 안에서도
전화벨이 울리면
곧장 휴대전화를 쥡니다
"빨리 와"나 "지금 어디야?"에
응답하기 위해
조난당했을 때 구조 될 확률은 높아지겠지만
배터리가 나가거나 통화권 밖이라면
절망은 더 깊어지겠지요
차라리 셔츠 한 장 휘두르는 게 낫지
저는 집에 있어도
종종 행방불명이 됩니다
초인종이 울려도 나가지 않습니다
전화벨이 울려도 받지 않습니다
지금은 여기 없기 때문입니다
<물의 별 >- 이 바라기 노리코 지음
칠 흑 같은 우주의 어둠 속을
가만가만 도는 물의 별
주의엔 친구도 친지도 없이
참 고독한 별입니다.
태어나 가장 놀라웠던 건
물 한 방울 안 흘리고 도는 지구를
밖에서 찰 칵 찍은 한 장의 사진
우린 이런 곳에 살고 있었군요.
이걸 보지 못한 옛사람과는
의식 차이가 상당할 법도 한데
외로 다들 멍하니 살고 있습니다.
태양과의 거리가 마침 알맞은 탓에
물이 그토록 소용돌이치는 거라고 합니다.
한가운데는 불구덩이라는데
이 푸른 별 얼마나 신기한가요.
<이정표>- 이바라기 노리코 지음
어제 할 수 있었던 것을
오늘 더는 할 수 없다.
당신이 쓴 시 두 행
나는 아직 어제 할 수 있었던 일을
오늘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지나게 되겠지요. 그 지점을
문득 그 자리에 서서 생각할 것입니다.
당신의 조용한 미소를
남자의 슬픔과 생의 속도를
누구나 지나간 길
누구나 지나갈 길
누구나 자기는 다르다고 생각하며 지나갈 길
<먼지가 되어>- 김광석 노래
바흐의 선율에 젖은 날이면
잊었던 기억들이 피어나네요
바람에 날려간 나의 노래도
휘파람 소리로 돌아오네요
내 조그만 공간 속에 추억만 쌓이고
까닭 모를 눈물 만이 아른거리네..
작은 가슴 모두 모두어
시를 써봐도 모자란 당신
먼지가 되어
날아가야지
바람에 날려 당신 곁으로
작은 가슴 모두 모두어
시를 써봐도 모자란 당신
먼지가 되어 날아가야지
바람에 날려 당신 곁으로
작은 가슴 모두 모두어
시를 써봐도 모자란 당신
먼지가 되어 날아가야지
바람에 날려 당신 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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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소멸되어 간다.
우리는 머지않아 먼지로 돌아갈 것이다.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 창세기 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