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할아버지의 얼굴

by 따뜻한 말 한마디

내 이름에는 ‘영화 영(榮)’이라는 한자가 들어간다.
영화, 영예, 명예를 뜻하는 글자다.
친할아버지는 내가 이 세상을 영화롭게 만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이름을 지으셨다.


내가 친할아버지를 처음 기억하는 건, 세 살 무렵의 일이다.
그때 나는 늘 자전거 뒤에 앉아 있었다.
친할아버지는 나를 태우고 동네 곳곳을 돌아다니셨다.
때로는 이웃 동네까지도.
장손이 “할아버지”라는 말을 해주길 바라며.


나는 말을 꽤 늦게 시작한 아이였다.
어머니 말로는, 네 살이 되어서야 “엄마”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때까지 어머니는 시댁의 눈치를 보며 나를 키웠다.


어느 날, 미군기지의 물탱크가 보이는 곳에서
자전거를 세우고 앉아 있던 친할아버지가
나를 가만히 바라보셨다.
그 얼굴엔 답답함이 묻어 있었다.


장손이라 반가워하고 예뻐하셨지만,
말을 하지 않는 나를 보며
혹시 모자란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을 것이다.
그 표정은 내가 기억하는 친할아버지의 시작이자,
내가 짊어지게 된 첫 책임의 얼굴이었다.


내가 말을 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나는 '자랑스러운 장손'이 되어야 했다.
아버지를 대신해 집안을 일으켜야 하는 아이.
장손의 무게를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존재.


문제는,
내가 그 무게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철없는 사촌동생이 장난을 쳐도 나는 반응하지 않았다.
나는 점잖은 장손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항상 착한 척을 하고,
욕심을 드러내지 않고,
남의 감정을 먼저 생각해야 했다.


친척 어른들은 그런 나를 칭찬했다.
하지만 그건 ‘탈을 쓴 나’ 일뿐이었다.

집에서는 철없이 굴면서도,
친척들 앞에만 서면 의젓한 아이로 변했다.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친할아버지의 말씀에 “예”라고 대답하는,
이중적인 아이.


지금 와서 돌아보면,
어쩌면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진짜 나’를 감추고
남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고 믿게 된 시점이.


그렇게 나는,
장손의 탈을 쓴 채
‘영화롭기를 바란 이름’에 걸맞은 삶을 연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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