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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황해볼게요 Aug 01. 2024

새로운 건

 눈을 뜬다. 프랑스에서 눈을 떴다. 별 실감은 나지 않는다.

 3일을 머물게 될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서 짐만 넣어두고서 다시 길을 나선다. 배가 고팠다. 원래 가려했던 피제리아의 문이 닫혀있다. 안내문이 붙어있지만 읽어내지 못한다. 이태리에서는 추측정도 할 수 있는 글이었다면 불어는 완전히 다르게 느껴진다. 피제리아를 대신해 광장 앞 야외테이블이 있는 레스토랑에 앉았다. 메뉴판에 온통 불어뿐이다. QR코드를 스캔해서 영어메뉴를 확인하고 주문을 한다. 직원분이 에너제틱하고 친절하다. 다만 영어는 이해하지 못하시는 듯하다. 손으로 가리키며 어찌어찌 주문한다. 보통 본인이 상대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했을 경우에 그 언어에서 본인이 아는 단어를 사용한다거나 손짓발짓으로 소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반면에 프랑스에서 이틀 동안 경험한 순간들은 달랐다. 내가 영어로 무언가를 말했을 때 본인이 이해하지 못했을 경우 불어로 말을 이어간다. 내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표정을 짓고 있으면 불어로 어떤 말을 덧붙인다. 이들의 문화인가 싶어서 흥미롭다.


 우리는 오늘의 피자와 오늘의 메뉴를 주문했다. 콰트로 포르마지 피자와 치킨 샐러드가 테이블에 올려졌다. 네 가지 치즈가 올라간 콰트로 포르마지 피자는 페코리노의 향이 강하게 느껴졌다. 꿀이 뿌려져 있었는데 그 단맛이 강조되지 않을 만큼 두드러지는 페코리노 향이 좋았다. 도우는 평범한 편. 커피와 함께 12.9유로면 썩 괜찮았다. 샐러드는 평범한 오리엔탈 소스에 갈릭플레이크를 토핑 했다. 익숙하게 맛있는 소스였는데 갈릭플레이크의 향이 포인트가 되어주었다. 스페셜하지 않지만 괜찮은 가격에 무난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


 식사를 마치고 산책을 나선다. 맥도날드에 들러 메뉴를 구경한다. 이태리의 맥도날드에서는 처음 보는 흥미로운 메뉴들이 꽤 있었는데 프랑스의 그것은 이태리만큼의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우리가 걷던 그 길에는 프랑스의 그것보다 아프리카나 남미의 향기가 묻어나는 것들이 많았다. 저녁으로 먹을 것을 사러 마트로 향한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바게트가 한가득 있다. 프랑스에 왔구나. 페투치네 생면과 라구 라자냐를 카트에 싣는다. 햄 코너를 지나다 눈에 들어오는 무심하게 생긴 무언가. 파테. 말로만 들어본 프랑스 요리. 400g이 넘었다.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사면 이걸 다 먹을 수는 있을까 어떻게 먹어야 하지 맛있기는 할까 고민한다. 파테 먹어보고 싶었어요 하며 눈을 마주친다. 흥미로워요? 사요! 고민에 답을 준다. 이러니 좋아할 수밖에.

 와인의 도시 보르도에 왔으니 보르도의 와인을 마셔보자 한다. 신중하게 고민한다. 와인 잘 모르고 그리 좋은 와인도 마셔본 적 없지만, 알음알음 아는 정보들을 모아 익숙한 단어들이 적힌 와인을 한병 고른다. 샤또, 셍떼밀리옹 그랑크뤼.

 버터의 나라 프랑스에 왔으니 버터도 골라본다. 그 어떤 결정보다 신중하게. 불어는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 demi - sel이라 적힌 게 눈에 들어온다. 아무래도 가염 아니면 무염이라는 뜻인가 보다. 가장 가격이 높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버터를 카트에 담는다. 다시 햄 코너로 향한다. 익숙한 것들 말고 새로운 거. 코파라는 햄이 눈에 들어온다. 돼지 목살로 만든 것 같은데 지방색이 좋다. 카트가 가득 찬다. 아무래도 너무 많다며 정말 흥미로운 것만 먹어보고서 그 후에 또 사보자고 한다. 페투치네와 라자냐는 다시 돌려놓는다. 계산대로 향한다. sim카드를 구매하려 직원분께 물으니 불어로 열심히 답해주신다. 우리도 열심히 혼란스러워한다. 아무래도 여기는 sim카드 없나 보다. 일단 미뤄둔다. 생각해 보니 sim카드도 없이 열심히 잘 다녔다.


 숙소로 돌아와 사 온 것들을 정리해 두고 빨래방으로 향한다. 세탁기를 돌리고서 더위를 식히려 맥주 한잔하러 가자 한다. 그 길에 눈에 들어오는 타바코 상점. 누나가 타바코 상점에서 sim카드를 판매한다는 걸 블로그에서 봤다며 들어가 본다. 직원분에 영어로 sim카드 구매할 수 있는지 물으니 간단한 영어로 대답해 주신다. 다행. 심카드를 구매하고서 다시 길을 걷는다. 눈에 들어오는 냉장고, 그 안에 있는 맥주캔들. 가게 안으로 발을 들인다. 생맥주 기계가 있었다. 직원분이 아무도 안계시기에 허공에 외쳐보는 봉주르. 어린 소녀가 나와서 불어로 무어라 말하다 다시 안으로 들어간다. 그녀가 한 말은 모르지만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인간이란 게 참 신기하다. 눈치라는 게 어디서부터 어떻게 길러지는 건지. 본능 속에 있는 건지 학습하는 건지 생각을 하며 잠시 서있으니 그녀의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분이 나오신다. 친근하게 헬로. 우리가 프랑스인으로 보이지 않아서인지 영어로 인사해 주신다. 맥주를 먹고 싶다며 나는 가장 쓴 맛, 누나는 향기로운 것으로 추천을 부탁드린다. 불편하지 않게 영어를 구사하시는 게 감사하게 느껴진다. 프랑스에 발을 들이며 영어가 통하지 않아 불편함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었다. 그 덕에 이렇게 의도치 않은데에서 반가움을 맞이할 수 있었다.


 탄산감이 목을 마구 찌른다. 그 고통을 못 견딜 때까지 숨을 참고 들이킨다. 크흐 소리를 참아내지 못한다. 덥고 습한 그 순간, 숙제 같았던 유심을 사고 세탁기를 돌려두고서 낮에 마주 앉아 마시는 맥주는 행복이었다. 30분이 금방 지나고 다시 세탁방으로 향한다. 건조기가 모두 가동 중이기에 기다린다. 몇 분 후에 끝난 건조기에서 옷을 빼는 남자를 바라보고 있는 우리에게 여성분이 불어로 말을 건다. 영어로 우리는 프랑스어 못해요 하니 불어가 돌아온다. 대략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는 우리에게 도움을 주려는 듯 건조기에서 빨래를 꺼내던 분이 일본인이냐 묻는다. 아니 우리는 한국에서 왔어. 여성분과 짧게 대화하더니 여성분은 다시 나가신다. 남성분이 일본에서 2년 정도 머무르며 공부했고 지금은 공부를 멈춘 상태라고 한다. 우리가 여행 왔다고 하니 여러 사진들을 보여주며 여행지를 추천해 준다. 사막 같은 모래산이 있는 해변이 기억에 남는다. 그는 3일 전 생일이 지났다며 생일이 지나면서 마약을 멈추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마약이 흔하지 않다고 알고 있다며 말하는 그는 프랑스의 마약, 술 문화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3-40분가량 대화하다 핸드폰 배터리가 1퍼센트 남았다며 여행 즐겁게 하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그가 떠난다. 여행하고 있음을 느꼈다. 일상적이지 않은 만남, 그 속에서 생겨나는 대화, 그 끝에 웃음 짓고 있는 내 모습이 좋았다.


 숙소로 돌아와 저녁을 준비한다. 바게트를 가볍게 구워내고 파테와 코파를 접시에 옮기고 버터도 준비한다. 와인도. 프랑스 음식은 서울에서 먹어본 한두 번이 고작이지만 모르긴 몰라도 이건 프랑스식 식사인 것 같다. 바게트 먼저 먹어본다. 오래전 일본에서 먹었던 바게트가 꽤 맛있었던 기억이 있고 빵 중에는 딱딱하고 곡물향이 강한 빵을 좋아하는 편이라 프랑스의 바게트를 기대했다. 다만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맛이었다. 맛이 없었다기보다 한국에서도 파리바게트 같은 흔한 베이커리에서 힘주지 않고 만들 것 같은 평범한 맛이었다. 버터를 얹어본다. 지방의 맛이 옅게 퍼지지만 이것도 그다지 특별하지 않다. 이번엔 파테 한 입. 우와!!!! 이거다. 과연 기대할 만한 맛이었다. 돼지 간의 향이 강하게 나고 입에서 녹진하게 퍼지는 끝 맛을 남긴다. 코파도 한입, 손으로 대충 접어 입으로 가져가본다. 포크로 먹을 수도 있겠지만 그 기분을 위해. 짜다. 지방이 산뜻하다. 지나치게 무겁거나 느끼하지 않고 찰진 식감과 가벼운 지방의 맛이 지나치게 맛있다. 와인과 완벽하게 어우러진다. 신중하게 고른 그 와인은 과연 그 값어치를 했다.


 뉴질랜드에서부터 와인을 마실 도수 맞추기를 했다. 13.8도로 추측했다. 누나가 이유를 묻기에 달지 않고 알코올의 향이 코 끝에 머물고 입에는 옅은 알싸함이 남는다, 파테와 코파를 안주로 곁들이는데도 강한 맛을 가진 그것들을 안주로 곁들이는데도 그 정도의 알코올감이 느껴진다면 10도 초반대의 그것보다는 강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정답은 14도. 짜릿했다. 음식을 먹으면서 맛있음이라는 직관적인 감각 그 이상의 무언가를 추구할 수 있다는 걸 느끼면서 즐거워한다. 이렇게 나의 세계를 더 넓혀간다는 게 짜릿했다. 와인에서 어떤 맛이 느껴지냐는 누나의 물음에 다시 신중하게 음미해 본다. 첫 번째로는 블랙베리, 두 번째로 나무향을 말했다. 어떤 포인트에서 그것을 느끼는지 물으며 음미해 보려는 누나에게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본다. 누나는 잘 모르겠다고 그런다. 와인병의 뒷면에 있는 설명을 번역한 걸 내게 읽어준다. 테이스팅 노트에 검은 과일, 체리, 옅은 나무향 세 가지가 적혀있다. 희열을 느낀다. 누나는 신기하다고 말했다. 그런 건 배워야만 알 수 있는 것인 줄 알았다며 그렇지 않다는 게 신기하다고 말한다. 나 역시 신기했다. 그냥 마시면 몰랐을 것들을 신중하게 음미하며 추측하고 그것이 맞아떨어졌을 때 느끼는 그 희열이 좋았다.


 처음 먹을 때는 그리 맛있지 않았던 버터가 실온에서 시간이 지나며 온도가 오르면서 향과 풍미가 훨씬 좋아졌다. 한국에서 저렴한 버터를 구매하면 느껴지는 분유 같은 맛을 싫어한다. 처음 먹었던 버터가 그리 맛있지 않았고 그 이후로 버터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만 살았다. 미식을 말하는 컨텐츠들을 접할 때면 프랑스 버터에 대한 극찬이 이어지는 것을 보며 궁금한 마음에 사본 그 버터는 기대를 훨씬 뛰어넘었다. 잡스러운 향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았고, 우유에서 느낄 수 있는 지방의 풍미를 끌어모은 다음 소금으로 그 풍미에 힘을 실어주는 느낌이었다. 심지어는 입자가 굵은 소금을 사용해 짠맛이 뒤에 느껴지게 만들었다. 입에 넣고 나면 부드러운 질감과 옅은 향만 느껴지다 소금이 늦게서 녹으며 지방의 향을 터트려주고 마지막엔 짠맛만 남으며 깨끗한 피니시를 만들어준다. 코에는 그 지방의 향기로움이 남는다. 그러다 보면 왼손에는 빵 오른손엔 나이프를 들고 버터를 바르는 날 끝없이 마주한다.


 미식, 즐겁다.


 2일 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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