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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황해볼게요 Aug 31. 2024

"행복하세요"가 주는 감동

Day20 Camino de Santiago

 이른 새벽의 공기가 주는 상쾌함을 좋아한다. 밝아오는 기운에 뒤를 돌아보면 붉어오는 여명을 좋아한다. 매일 다른 곳에서 마주하는, 때론 땅끝에서 때론 구름 사이에서 오늘은 기찻길 위로 슬며시 모습을 드러내는 일출을 좋아한다.


 아침으로 또르띠야를 먹는다. 숟가락이나 젓가락으로 먹곤 했는데 오늘은 수저 없이 손에 들고 배어 먹었다. 오히려 손이 더러워질 일이 적고 걸으면서 먹기에 훨씬 편했다. 누나는 스스로 잔머리가 좋다고 했다. 나는 걷는 걸 좋아하고, 음식을 좋아한다. 걸으며 무언가를 먹을 때 얻는 묘한 기분을 좋아한다. 순례길을 걸으며 무얼 먹으면서 유독 많이 웃는다. 내가 좋아하는 걸 응원해 주는 사람에게 고마워해본다.


 어느 마을에 들어서서 오늘의 카페 콘 레체를 위해 직진한다. 라면을 판매한다는 글을 한글로 써두신 슈퍼마켓이었다. 처음 마주한 그 순간에 주인분의 에너지를 느낀다. 그녀는 밝고 맑게 웃고 있었다. 그녀는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해 주었다. 할 줄 아는 한국말이 하나 더 있다며 "행복하세요"라고 했다. 순간 작은 충격을 느꼈다. 흔한 인사말이 아닌 행복하라는 말을, 저 먼 타국의 언어로 전달하고 싶어 했던 그 사람 앞에서 순간 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 사람은 어떤 시간을 보내왔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누나는 카페 콘 레체를 마시고 더웠던 나는 맥주를 한 캔 집어 들었다. 주인장은 함께 먹으라며 쿠키와 감자칩을 건넸다. 장사하는 사람으로서 제공하는 서비스 이상의 선물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도 함께 미소 짓지 않을 수 없더라. 누나와 감탄하며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녀의 말과 행동과 제스처에서 느낄 수 있는 행복감을 멋있다고 표현했다.


 알베르게로 가는 길에 표지판을 마주했다. 순례길을 걷는 동안 낙서된 표지판을 보곤 했다. 오늘의 그것은 사슴을 주의하라는 표지판에 같은 검은색으로 날개를 그려 유니콘을 만들어두었다. 더운 그 길 위에서 덕분에 입꼬리 올려볼 수 있었다. 그걸 그린 이는 그걸 마주하는 누군가가 미소 지어보기 바랐을 거라 믿는다.


 오늘의 숙소는 완벽하다. 인당 5유로에 둘이서 방을 사용한다. 주방시설은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고 숙소 내 시설은 대부분 새것에 가깝다. 세탁기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덕에 순례길 중 처음으로 세탁기로 옷을 세탁했다. 어제 미리 사둔 고기를, 멀리서부터 등에 소중하게 메고 왔다. 어제 마트를 구경하다 항정살이 충격적으로 저렴하기에 얼른 골라왔다. 한국의 그것과 컷팅방식은 다르지만 육색이 좋았다.

 오늘 커피를 마시러 들렀던 슈퍼마켓에서 와인도 구매해 왔다. 감동스러운 건 키친타월을 병목에 감싸며 와인이 흘러내리는 것을 막아줄 거라며 포장해 주셨다. 요리를 시작하기 전에 와인을 먼저 한잔 따라 마신다. 이 순간을 기대하며 양어깨 무겁게 걸어왔다.

 토마토 파스타를 만들고 항정살을 구웠다. 고기가 부족하기에 삼겹도 구워 먹었다. 당연하게도 맛있었다. 당연함 그 이상으로 행복했다. 순례길을 걸으며 아주 일상적인 순간에 행복감을 많이 느낀다. 행복하려 노력하며 살지만, 사실 행복은 늘 곁에 있는 것이며 내가 손 내밀어 선택하는 것 같다는 느낌도 받는다. 우리는 아주 당연하게 매일 식사하지만 그 경험에 조금 더 정성을 기울이고 조금 더 소중하게 생각해 보곤 하면 그것은 큰 행복이 되곤 한다.


20일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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