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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황해볼게요 Jul 25. 2024

감동을 준다는 건

 감동이란 게 무엇일까. 벅차오름과 감사함, 고양감 그 어딘가의 사이에 존재하지 않나 싶다. 사전적 의미는 찾아보지 않는다. 지금 사전적 의미를 알게 된다 할지 언정 나의 관성대로 사용해 오던 감동스러움이 변할리 없을 것 임으로. 종종 감동스러운 순간을 마주하곤 한다. 인생을 살며 감동스러운 순간을 많이 마주할 수 있다는 건 그 자체로 괜찮은 인생이 아닌가 생각한다. 감동스럽다는 게 무언지 나의 언어로서 완벽히 표현해내지 못하는 불완전한 인간이지만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순간들을 갈망하며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여행을 하면서는 더욱이. 때로는 사람에게, 때로는 사람이 아닌 무엇에게 감동을 느끼곤 한다. 때로는 감동을 주기 위해 감동받을 상대를 기억하며 어떤 행동을 하기도 한다. 감동이 무엇인지 표현해 내지 못하는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감동을 주려 노력한다는 게 역설적이지만 그 자체로 아름다운 일이기도 하다. 사람이 아닌 무언가에서 감동을 느끼는 순간에는 경외감이 든다. 낯설고 종종 무섭기까지 한 자연이 주는 감동은 나의 가장 깊숙이에 있는 본질을 마주하게 한다. 내게 감동을 주는 그 자연은 본인이 본인과 다른 어떤 생명체에게 이리 큰 가치를 건네줄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스스로 알까 고민해 본다.




 알람이 울리기 전, 해가 뜨기 전, 눈을 떠낸다. 손으로 커튼을 제쳐내고 고개를 내밀어보니 여전히 어둡다. 해가 세상을 밝혀내기 전, 지난밤 앗아갔던 색을 세상에 되돌리기 전에, 바깥공기를 들이켜려 발걸음을 옮겨본다. 따스한 실내 공기와 상반되게 문 손잡이부터 차디차다. 방에서 자고 있는 이가 깨지 않게 춥지 않게 조심스럽게 빠르게 문을 닫아내고 종종걸음을 옮겨본다. 멀리서 하늘이 조금씩 붉은빛으로 물들어간다. 밖에 더 서있다간 내 볼도 붉은빛으로 물들어 갈 것 같아 얼른 방으로 몸을 피한다.


 아침으로 올리브오일에 마늘을 볶다 베이컨과 병아리콩을 곁들인 푸실리 파스타를 만든다. 가지고 있던 재료들을 이것저것 집어 들고 손이 가는 대로 만들어보는 것인데 흥미롭다. 병아리콩은 자체 맛이 강하지 않음으로 알리오올리오 소스 맛을 해치지 않고 베이컨이 지방과 감칠맛을 더 해준다. 어디서도 본 적 없고 나조차 처음 만들어본 그 파스타가 썩 마음에 들었다. 다른 한 편에서 누나가 점심으로 먹을 샌드위치를 만든다. 피타브레드를 반으로 가르고 속재료로 베이컨과 당근, 아보카도를 넣는다. 소스로는 홀그레인 머스터드와 멕시카노 마르게리따 디핑소스 두 가지를 곁들였다. 핑크, 초록, 주황빛 다채로운 속을 가진 거친 빵이 맛이 없을 수 없다.


 우리의 약속대로 빠르게 식사를 마치고서 숙소를 나선다. 마트에 잠시 들렀다 루트번 트랙으로 향한다. 누나는 운전대를 나는 조수석에 자리를 잡는다. 어제와 달리 해가 나고 푸른 하늘이 같은 길을 다른 풍경으로 눈에 담을 수 있게 만들어준다. 어제는 대여섯 번 가다서길 반복하며 달리던 길을 오늘은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려냈다. 더 아름다운 장면들이 눈에 담기길 기대하며.


 푸른 하늘아래 설레길 잠시, 지대가 높아지면서 구름이 온 사방을 감싸 안고서 먼 풍경을 눈에 담게 허락해주지 않았다. 오늘은 어디 가는 거야 묻는 그녀의 물음에 "기대해도 좋아" 했던 답이 무색하게도, 이곳에 와야지 마음먹게 만들었던 그 풍경들이 무색하게도 구름은 우리의 시야에 담길 아름다운 풍경을 허락하지 않았다. 우리는 키 써밋 트레일 코스를 걸었다.


 이끼가 온몸을 휘감은 나무들은 꼿꼿하게 뿌리를 내리고 서있었다. 정상에 가까워갈수록 나무들의 높이가 낮아졌다. 당연하게도 시야가 트이고 개방감이 좋아졌다. 다만 개방감을 느끼기 이전에 신비로움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신비롭다는 뜻은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어떤 장면을 풍경을 마주하고서 이런 게 신비로움이구나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나 싶다. 아름다움과는 다른, 평범함과 그리고 나와의 어떤 괴리가 느껴지는 하나의 장면이 눈에 담기는 건 사뭇 무섭기까지 했다. 구름이 움직이는걸 바람이 불어오면 그 자리에 머무를 수 없는 그 구름의 운명을 눈앞에서 지켜본다는 건 그저 신비로웠다. 출처모를 경외감과 겸손하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찾아들고서 차분해졌다.


 자연 속을 거닐어내는 일, 내가 좋아하는 그것을 함께 즐겨보려 노력해 주는 누나에게 감사하다 말했다. 내게 산을 오르며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이냐 묻기에 생각이 비워지는 일이라 답했다. 산을 오르다 보면 끝이 없을 것만 같은 오르막을 거친 호흡과 함께 오르다 보면 한 순간에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던 잡스러움들이 휴지통을 비우듯 한 순간에 사라질 때가 있다. 나는 나의 비워짐을 문득 깨닫는 그 순간을 연모한다. 산에 오르며 땀을 흘리고 멋진 풍경을 마주하고 지나치는 사람을 보며 힘내라는 응원을 건네는 일을 좋아한다. 비워짐을 깨닫는 그 순간을 연모한다.


  Key summit lookout에서 구름에 가려 고대하던 풍경들을 마주하지 못하고선 발길을 돌려냈다. 올라왔던 길을 다시 내려가며, 두 발을 딛고서 구름 속에 존재할 수 있음을 구름 속에서 숨 쉴 수 있음을 구름을 들이마실 수 있음을 신기해하며 발걸음을 옮기던 그 순간들이 아름다웠다. 다만 한 순간은 감동적이었다. 구불구불한 길을 걸어내려 가며 종종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U자로 꺾이는 길이 있었고 그 길을 돌아 열 걸음은 걸어냈을까. 소리 질렀다. 곁에 있던 그녀도. 트래킹 내내 풍경을 감싸 안고 놓아줄 것 같지 않던 구름이 잠시 자리를 비워주고 설산이 수줍게 모습을 드러냈다. 채 5분이 되지 않게, 그것도 옅은 구름들을 사이에 두고 모습을 드러냈으므로 수줍다는 표현이 적당하다. 짧은 순간이었다. 다른 표현할 수도 없이 감탄만 했다. 감동적이었다. 자연이 주는 감동이란 건, 그 짧은 순간에 복합적인 감정들이 찾아들고 경외감과 함께 겸손해지라고 하는 듯한 메시지를 안겨주는 건, 내가 좋아하는 초록, 파랑, 흰색을 띠는 자연은 그런 거다.


 트래킹을 끝내고서 나무들이 색을 잃어내기 전에 서둘러 액셀을 밟고 밀포드 사운드로 향한다. 뉴질랜드에서 외식 한번 하자는 그녀의 말에, 무얼 먹고 싶냐는 나의 물음에, 커피라는 그녀의 대답에 오늘 못할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생각에 서둘러본다. 밀포드 사운드에 진입하며 미리 카페를 하나 봐두고 더 깊숙이 둘어보다 다른 대안이 없단 걸 확인하고서 걸음을 옮긴다. 높은 층고에 한쪽으로 난 통창, 따스한 색감의 목재가구들은 북유럽의 한 마을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푸르른 나무들도 한몫했을 테다. 커피 메뉴에 대해 물으니 우린 모든 게 다 있어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있고 모카도 있고 플랫화이트도 있어하며 몸짓을 곁들이는 직원분이 그 공간을 조금 더 마음에 들게 만들어주었다.


 누나는 늘 그렇듯 따듯한 라테, 나는 시원한 차이라테를 마신다. 우리는 밖에서 커피를 사 마시는 일이 잦지 않다. 누나는 늘 따듯한 라테를 마시고 나는 때마다 다르지만 에스프레소를 선호한다. 주문을 마치고서 창을 바라볼 수 있는 높은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누나는 내게 "오늘은 왜 차이라테 골랐어? 배고파서?" 하며 물었다. 누군가와 보내가는 시간들이 쌓여가며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일들이 즐겁다. 내가 하는 선택의 이유를 생각해 주고 알아맞히는 상대방이 신기하고 고맙다. 종종 차이라테를 마시면 단맛이 강조되어 아쉬운 경우가 있었는데 그곳의 그것은 단맛이 튀지 않고 시나몬향이 무게감 있게 어우러지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누나의 라테도 뽀송한 거품의 질감과 향이 좋았다. 나는 한잔 더 시켜볼래 묻고 누나는 그래! 하고 답했다. 우리는 주로 맛있을 것 같은 메뉴보다 우리의 흥미를 자극하는 메뉴를 골라보는 편이다. 오늘의 선택은 모카였다. 잔을 들고 다가오던 서버분께 누나가 라테 마음에 들었다고 말하니, 오 그럼 다음잔에 대한 프레셔구나 하던 유쾌한 직원분이 기억에 남는다. 모카는 물론 기대만큼 맛있었다. 차이라테를 그 정도 고급스럽게 만드는 카페이면 모카를 허투루 만들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숙소에 돌아와서 미리 예약해 둔 스파로 향했다. 은은한 조명이 있는 야외스파, 내가 이 숙소를 선택한 이유였다. 과연 그럴만했다. 별은 자취를 감추었지만 아쉽지 않았다. 찬 공기와 대비되게 따스한 물에 몸을 담그고 나누던 그 대화들이 좋았다.


 저녁으로는 양고기 소시지와 양파를 굽고 라면을 끓였다. 원래 뇨끼를 먹으려 했으나 라테를 먹고 조금은 느끼해진 속을 달래줄 음식이 필요했다. 다른 의미의 약이랄까. 소시지를 가득 구워내 두었지만 라면에 먼저 손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이 손이 이끄는 일이었다. 뜨거운데 시원한 맛, 매운데 개운한 거, 깔끔한데 짱짱한 MSG의 맛. 여행하며 다채롭게 맛있는 음식들을 많이 해 먹는다. 다만 만드는데 5분도 안 걸리는 간단한 음식이 끌릴 때가 있다. 어쩔 수 없이 피가 기억하는 맛있음. 추운 데서 트래킹 하고 따듯한 스파를 거쳐 녹아내릴 듯한 몸을 이끌고 앉아있을 만한 가치가 충분했다.



 3일 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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