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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황해볼게요 Jul 26. 2024

매료된다는 건

 360도로 돌아보며 그 어느 곳을 바라보아도 입을 벌리고 감탄하게 만드는 어떤 풍경. 어제 본 그것은 내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가졌다면, 오늘 마주한 무엇은 내가 어떤 모습이던 나를 품어줄 것만 같았다. 푸르르지도 않았다. 초록빛을 모두 잃고서 바짝 말라 휘몰아치는 바람에 마구 흔들리면서도 본인의 자리를 굳게 지켜내는 그 메마른 생명들이 마구 모여들어 내 눈에 담겼을 때 주는 그 감동스러움은 나를 그곳에 매료되게 만들었다. 매 순간이 완벽하지 않았다. 때론 흐리고 때론 춥고 때론 구름이 풍경을 마주할 수 없게 만들었다. 다만 그 순간들이 모두 아름다웠으므로 이 공간은 내게 단 한순간을 아쉽게 만들지 않았다. 다만 다음을 기대하게 만든다. 무엇에 매료된다는 건 어떤 장소에 매료되어 그 공간에 머물면서도 그곳을 그리워하게 만든다는 건 그런 게 아닐까.




 뇨끼를 굽는다. 양 소시지를 으깨어 마늘과 함께 올리브오일에 볶고 홀토마토 캔을 섞어 끓여낸다. 바삭하게 구워낸 뇨끼를 토마토소스에 버무려내고 브리치즈를 얇게 썰어 토핑 한다. 오늘의 아침. 가히 완벽하다. 뉴질랜드에서의 모든 식사가 맛있었지만 오늘 아침의 뇨끼는 그 영역을 달리했다. 특별한 재료를 사용한 것도 아닌 그 뇨끼 파스타가 감격을 줄 줄은 알지 못했다. 양고기와 소시지 안에 들어있던 로즈메리가 향을 풍부하게 만들어주었고 그대로만 먹었을 때 느껴지던 소시지의 느끼함을 토마토의 상큼한 맛이 조화롭게 만들어주었다. 충분한 완성도를 가진 소스에 노릇하게 구워낸 쫀득포슬한 뇨끼를 섞어낸다. 일차원적인 맛있음 그 이상의 어떤 울림을 안겨준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무엇에서 기대이상의 감동을 마주하게 될 때 우리는 행복을 느끼곤 한다. 행복이란 건 결국 절대적인 것이라서 본인에게 어떤 기대감을 갖고 스스로를 어떤 존재로 규정하느냐에 따라 그것의 가치가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나가 행복은 스스로가 선택하는 것이라고, 본인이 행복하기로 마음먹으면 행복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해준 적이 있다. 그 말이 절대적 가치를 지닐 수 있는지, 그렇지 못한 지 나는 감히 알 수 없지만 종종 그 말에 기대어 마음을 편하게 먹곤 한다. 행복을 선택하곤 한다.


  3일간 포근한 기억들을 안겨준 숙소를 떠난다. 머무는 동안 어떠했냐는 직원분의 물음에 러블리했다고 답했다. 러블리했다. 그 시간들은 사랑스러웠다. 또 다른 사랑스러움을 찾아 발걸음을 옮긴다.


 차마 출발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눈앞에 놓인 그 무지갯빛 무지개는 살면서 본 그것 중 가장 압도적이었다. 두꺼웠다. 무지개의 양 끝을 한눈에 담을 수 있었다. 누나는 그 무지개를 보며 어릴 때 읽은 동화책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무지개의 끝을 향해 떠나는 여행에 관한 이야기였다고. 지금까지 무지개의 양 끝을 바라본 적이 없다고 했다. 무지개의 끝은 미지의 세계 같은 느낌이라고 했다. 그걸 마주한 순간이 놀랍다고 했다. 단지 그 장면이 너무도 선명하고 신비로워서 놀란 내게 그런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사람과 하고 있는 그 여행이 아름다웠다.


 테아나우서부터 퀸즈타운에 도달하기까지 두 번을 멈춰 세웠다. 우리에겐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지만 그 길 위에 존재하는 풍경은 우리를 멈춰 세우기에 충분했다. 두 번 다 1분쯤 머물렀을까. 1분여 되는 그 시간 동안 내 눈에 담긴 장면들은 왜 그리 선명한 거지. 왜 그리도 아름다워서 다음을 기대하게 만들었을까.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시간걱정을 잊게 만들었을까. 그건 내가 앞으로 살아가는 삶에 어떤 흔적을 남길까. 누나는 내게 그런 아름다운 기억들이 잘 남아서 본인이 앞으로 살아가게 될 시간들에 좋은 영향을 미쳐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퀸스타운에서 렌터카를 반납하고 다른 렌터카를 받아 든다. 목적지는 오나라마, 경유지는 와나카의 마트. 다만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길은 따르지 않는다. 큰길 대신 좁고 구불거리는, 다만 설레게 만드는 풍경을 품은 길을 선택했다.


 굽이지고 가파른 코너길을 달려 다다른 lookout에는 나를 매료시킬 수 있는 무엇이 존재했다. 지칠 때는 위로하러 온전할 때는 선물하려 스스로를 이곳에 다시 데려와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 어떤 곳에 눈길을 주어도 그 자체로 완전했다. 더 바랄 게 없다는 건 이런 게 아닌가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풍경. 어쩌면 이보다 더한 무엇이 이 세상에 온전히 존재해 낼 수 있나 고민하게 만드는 그런 풍경이었다.


 저녁 식재료를 구매하려 와나카에 들렀다. 눈앞에 햇볕으로 반짝이는 호수, 그 뒤로 설산이 자리했다. 매료된 나의 눈과 우회전하라는 내비게이션의 지시와 그를 못하는 내 손은 그 순간에 그 장소에 존재했다. 더 살필 것도 없이 빈자리에 차를 밀어 넣고서 차에서 내린다. 특별한 말은 하지 않는다. 환상적인 그 풍경을 그에 미치지 못하는 나의 어휘력으로 표현해 내려 애쓰지 않는다. 단 한 장의 멋진 사진을 위해 100번의 셔터를 눌러대지 않는다. 곁에 있는 이에게 고맙다 말하고, 스스로에게 고맙다 생각한다. 그 순간을 온전히 느껴내기 위해 숨을 잘 마시고 내쉬고, 눈을 잘 감았다 떠낸다. 어찌 내게 이런 풍경을 눈에 담게 만들어 주는가. 나는 어떤 노력을 했기에 어떤 운을 만나 이곳에 존재하며 이런 매료됨을 체감할 수 있는가 하는 고민을 하며 멍하니 한참을 머물렀다.


 마트에서 초록홍합과 양고기를 사고 오늘의 숙소가 위치한 오나라마로 향한다. 운전대는 누나가, 네비설정은 내가. 미리 찾아두었던 lookout으로 목적지를 입력한다. 해가 산 능선을 넘어가고 구름을 핑크빛으로 물들이는 그 순간에 울리는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네비의 알림. 어쩜 이리 운이 좋을까. 우린 안 되는 게 없다며 차에서 내린다.


 도착했다기에 우리의 숙소가 이리 높은 곳에 위치한 건가 의아했다며 말하는 그녀에게 그 장면을 선물한다. 굴곡진 설산과 역동적인 산 능선 뒤로 핑크빛 하늘이 한눈에 담기는 그 풍경은 나를 우리를 그 시간을 완벽하게 매료시켜 버린다. 그 하늘에서 붉은빛이 사라질 때까지 우리는 그 자리를 지켰다. 지나치게 아름다웠다. 나의 언어로 완벽하게 표현해 내기에는 지나치게 아름다웠다.


 저녁으로는 양고기를 당근과 함께 구워내고 라면을 끓인다. 처음 보는 부위라 사본 양고기는 지방이 적고 수분감이 잘 느껴졌다. 지방이 적은 만큼 양 특유의 향이 강하지 않고 담백했다. 홀그레인 머스터드와 곁들이니 조화로웠다.


 저녁식사의 첫 파트를 끝내고서 못다 한 초록홍합을 마저 손질한다. 족사를 떼어내고 양손에 홍합을 하나씩 들어 서로의 껍질을 긁어내 이물질을 제거한다. 솔로 혹여 남았을 이물질을 닦아내고 맑은 물에 헹궈낸다. 물을 붓고 뚜껑을 덮고 입을 벌릴 때까지 끓여낸다.


 기대와 함께 첫 입. 과 동시에 실망.


 3일 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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