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

by 온혈동물

"여보세요? 박지훈씨 맞으시죠? 저는 채하빈이라고 합니다. 저희 아빠가 강릉 경찰서에 계신데, 아빠 통해서 연락처 받고 연락드려요."

"아 예, 맞아요. 저도 아버지께 얘기 들었어요. 근데 오래돼서 기억날지 모르겠지만, 우리 전에 아버지 모임에서 만난 적 있었어요."

하빈의 전화를 받은 지훈은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그런가요? 저 혹시 조만간 시간 되시면 직접 뵙고 얘기할 수 있을까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연쇄 살인사건에 대해 드릴 말씀이 있어요. "

하빈은 지훈이 자신의 말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초조해졌다. 뜬금없이 누군가 전화해서 사건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고 하면 자신이라도 황당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요즘 그 사건 때문에 너무 정신이 없어서 집에도 잘 못 들어가요. 따로 시간내기는 힘들 것 같고 오늘 시간 되면 낮에 잠깐 이쪽으로 와요. 잠깐 커피 마시며 얘기할 시간은 될 것 같아요."




강서구 경찰서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하빈은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막상 지훈을 만나기로 했지만, 무슨 말로 시작을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막상 그가 하빈의 말을 믿어준다고 하더라도 증거도 없이 어떻게 도움이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버스가 경찰서 앞에 도착할 때까지도 하빈은 생각이 정리가 되지 않았다.

경찰서로 들어가면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도착했다는 그녀의 말에 그는 경찰서 정문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키가 크고 말랐지만 인상 좋은 지훈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막상 그를 보니 정말로 전에 본 적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녕하세요? 아까 전화드렸던 채하빈입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해요."

"박지훈이에요. 오랜만이에요. 혹시 나 기억나요?"

지훈은 하빈에게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그는 아주 잘생긴 얼굴은 아니었지만, 솔직하고 유쾌한 성격이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네. 전에 뵀던 기억이 나는 것 같아요. "

"내가 기억하기에 내가 하빈씨보다 한 두살 위인 것 같은데 편하게 말해도 될까요? 그게 서로 편할 것 같은데. "

"네. 그러세요. "

둘은 입구의 커피 자판기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 그럼 이제 하빈이라고 부를게. 이렇게 고향 후배를 봤으면 밥이라도 사줘야 되는데, 요즘 정말 그 사건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이렇게 자판기 커피밖에 못 사줘서 미안하네."

지훈은 커피를 하빈에게 건네며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바쁘신데 이렇게 시간 내 주신걸로도 감사드려요. "

하빈은 시간 순서를 바꿔 보검에 대한 얘기를 시작했다. 그가 다니던 학교에서 일어난 의문의 자살사건이 그와 연결되어 있을 수도 있다는 것과, 그 일로 인해 그가 동성애자들에 대한 증오심이 싹트기 시작했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하빈과 보검의 학교 친구가 그에게서 느꼈던 악의를 가능한 객관적으로 보이도록 애쓰며 말을 이었다.

"이 얘기는 외부에 알려진 얘기가 아닌데, 혹시 네가 하는 일에서 졸레틸이라는 약품을 쓰니? 피해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검출된 마약성 마취제인데. "

"네. 동물병원에서 쓰는 약이에요. "

하빈의 대답에 지훈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말이 없었다. 그때 누군가 큰 소리로 지훈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야! 신입. 빨리 붙어. 출동이다!"

여려 명의 사람들이 입구로 우르르 몰려나와 앞에 주차된 봉고차에 올라타며 한 명이 큰 소리로 지훈을 불렀다. 지훈은 급히 무리로 달려가서 잠시 얘기를 듣더니 하빈에게 달려와 낮은 목소리로 그녀에게 속삭인 후 다시 봉고차로 달려갔다.

"지금 강력한 증거가 나와서 용의자 체포하러 가는 거야. 넌 네가 말한 사람 만날 생각하지 말고 믿을 만한 친구집에 가 있어. 내가 시간 되는대로 연락할게. 알았지?"

지훈의 말이 하빈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용의자가 나왔다고? 혹시 보검일까? 그게 보검이라면 내가 더이상 고민할 이유가 없어진건가?'

한동안 벤치에 앉아있던 하빈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전화기의 통화 버튼을 눌렀다.

"오석아. 오늘 너 좀 보러 가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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