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 사람 많네. 인원제한 15명이라고 들었는데, 다 찼나 보네."
오석의 말처럼 동물병원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12주 과정의 수술 세미나가 진행되는 병원은 이층 규모로, 일층은 수납과 진료실로, 이층은 수술실과 입원실로 구성되어 있었다.
7시에 시작하는 세미나에 늦지 않기 위해, 오석과 채빈은 6시쯤 근처에서 만나 간단히 저녁을 먹고 병원에 막 도착한 참이었다.
웅성거리는 사람들 속에서 유난히 키가 크고 피부가 하얀 남자가 눈에 띄었다. 누가 봐도 잘생긴 그는 얼핏 보면 연예인이라고 할만한 외모였다.
"하빈아, 저 남자 보여? 진짜 잘생겼다!"
오석도 그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네."
조금만 괜찮은 남자만 봐도 호들갑을 떠는 오석에 평소에는 그러려니 했지만, 그 남자는 확실히 눈에 띄는 외모에 하빈도 이번에는 호응을 해 주었다.
"하빈아, 오석아. 오랜만이야"
누군가 옆에서 말을 거는 바람에 옆을 돌아보니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졸업 후에 거의 본 적이 없는 대학동창 수아가 친근한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아 수아야.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하빈은 조금 당황하며 대답했다.
대학 때 전 남자친구와 일 이후에 수아와는 거의 모른 척하다시피 하면 학교생활을 했던 터라 오랜만이라도 그녀와의 인사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너희 둘은 아직도 같이 잘 지내네. 보기 좋다. 난 모 잘 지내. 한 이년 냉동창고에서 일하다가, 최근에 병원일 시작했거든. 이거 들으면 좀 도움 될 것 같아 신청했는데 혼자서 좀 어색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너네 만나서 다행이다. "
수아는 친한 친구를 만난 것처럼 친근하게 다가와 채빈의 팔짱을 꼈다.
170센티가 조금 넘는 키의 하빈의 옆에서 160이 안 되는 수아는 한참이나 작아 보였다.
"자, 여러분. 다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이번 세미나의 주최와 진행을 맡은 에이스 병원 원장 이세광이라고 합니다. 12주 과정의 이 세미나에 대해 간략히 설명드리면 첫 4주는 중성화를 비롯한 우리가 가장 흔히 하는 일반 외과수술위주로 진행될 것이고, 두 번째는 정형외과 그리고 마지막 4주는 안과와 이비인후과 수술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매주 세미나는 세 시간 정도 진행되는데, 처음 한 시간 반 정도는 수술에 대한 이론적인 부분이나 수술방법을 소개하고, 나머지 한 시간 반에 걸쳐 직접 수술하는 걸 보여드릴 겁니다.
일반외과와 정형수술은 제가 맡아서 진행할 예정이고, 안과 및 이비인후과는 저희 병원의 안과 담당 선생님인 신세경 선생님이 맡아주실 예정입니다.
그럼 세미나실과 수술실이 있는 이층으로 이동하시죠."
세미나를 주최한 에이스 병원의 원장은 사람들을 살피며 이층으로 향했다.
긴 세미나가 끝난 후 사람들은 세미나실에서 잠깐의 휴식을 취하며 각자 음료수나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하빈과 오석은 피곤했지만, 강의내용에 만족하며 잠시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수아는 강의 내내 그들 옆에서 수다를 떨며 같이 했다.
"피곤하긴 한데 엄청 도움 될 것 같다. 늘 하는 중성화 수술이지만, 강의를 듣고 나니 훨씬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도 들고. 야, 근데 니들 같이 세미나 들은 사람 중에 이보검이라는 수의사 진짜 잘생기지 않았냐? 난 연예인인 줄. 아 근데 이쪽으로 오네."
수아말이 끝날 즈음, 보검은 하빈과 오석이 앉아 있는 의자로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이보검이라고 합니다. 서초구병원에서 일하고 있는데, 세분은 서로 친구신가 보네요."
보검의 말에 수아와 오석은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자기소개를 했다.
"아 반가워요. 수아 씨 그리고 오석 씨. 그럼 이쪽에 계신 분은?"
보검은 하빈을 보며 말을 이었다. 하빈이 보기에도 보검은 아주 준수한 외모의 사람이었다. 누가 봐도 호감이 갈만한 외모. 근데 왜 하빈은 그에게서 어떤 감정도 느낄 수가 없었다. 텅 빈 느낌 같은.
하빈은 사람이나 동물을 보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느껴지는 감정이 있다. 뭐라고 말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가늠할 수 있는 그런 느낌. 그 사람의 성격, 성향 같은 거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보검에게서는 어떠한 느낌도 받을 수가 없었다.
"아 이쪽은 제 여자친구인 하빈이에요. 하빈이도 마포 쪽 병원에서 일하고 있어요."
하빈이 망설이는 사이 오석이 대신 하빈의 소개를 했다.
"아 그러시군요. 다들 오늘 세미나는 어땠어요? 전 꽤 괜찮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이제 다들 집으로 가시나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같이 맥주한자 하고 가는 건 어떤가 싶은데."
보검의 말에 오석과 수아는 격하게 찬성했고, 피곤해서 집에 가겠다는 하빈을 설득해 다들 근처 호프집으로 향했다.
간단히 먹자는 말과 다르게 벌써 두신 간 째 술을 마신 오석과 수아는 취기가 돌면서 말이 더 많아졌다. 하빈은 원래도 술을 많이 마시는 걸 즐겨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술이 취하면 주변에 대한 반응이나 느낌을 무뎌지기 때문이었다. 하빈은 자신의 감각이 둔해지는 기분이 아주 싫었다. 그렇게 되면 꼭 자신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화장실을 간다는 핑계로 잠깐 나온 하빈은 잠시 밖에서 10월의 시원한 밤바람에 깊은숨을 들이쉬었다. 술을 많이 마시지 않아도 술자리에 오래 있다 보면 머리가 멍해지는 느낌이 든다.
"여기서 뭐해요?"
어느새 따라 나온 보검의 목소리에 하빈은 화들짝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
"아 잠깐 바람 좀 쐬고 있어요. 근데 화장실은 저쪽이에요. "
하빈은 그와 둘이 있는 게 불편해 그를 보내려 했다.
"저도 잠깐 바깥바람 쐬러 나왔어요. 좀 답답해서요. "
보검은 뜻 모를 옅은 미소를 지으며 하빈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하빈은 그런 그가 왠지 불편했다. 겉으로는 아주 예의 바르고 매너도 좋은 잘생긴 그였지만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일수도 있다.
"그럼 전 먼저 들어갈게요. 안에서 봬요."
하빈을 불편함에 자리를 피하려 했다.
"왜 제가 불편해요? 난 하빈씨 맘에 드는데."
'이건 무슨 뜻이지? 내가 오석이랑 연인인 걸 알면서. 무슨 의도지?' 하빈은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아 다른 뜻은 없어요. 그냥 하빈씨나 안에 있는 분들도 다 좋은 분들인 것 같아 친해지고 싶다는 말이에요."
하빈의 마음을 읽은 듯 보검이 말했다.
"아 네. 그냥 제가 좀 낯을 많이 가려서 새로운 사람과 친해지는데 시간이 좀 걸려요. 당분간 자주 볼 테니 천천히 알아가죠. "
하빈의 말에 보검은 그 특유의 예의 있는 태도로 그녀를 보내주었다.
"그 남자. 좀 이상하지 않아?"
집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하빈이 오석에게 물었다.
"보검씨 말하는 거야? 난 그냥 그 사람 너무 잘생겨서 다른 생각은 하나도 안나던데? 하하"
오석은 술에 취해 비몽사몽 하며 대답했다.
하빈은 오늘 만난 잘생긴 그 남자에 대한 생각에 빠져들었다. 너무도 잘생긴 그에게 나오는 그 어두운 느낌이 무엇 때문인지 하빈은 그때는 알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