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타이밍.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물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
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
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시인 류시화 님의 시 ‘그대가 내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이다.
류시화 님은 이 시를 끝으로 필을 꺾는다.
그리고 여행을 떠난다.
인도 뭄바이에서 네팔 카트만두를 지나 포카라까지.
류시화 님이 시인이 아니라 구도자의 심정으로 여행했던 그 길을 따라 나도 여행을 한 적이 있다.
아리안들이 사는 마을.
초록색 초원에 붉은 벽돌집 그리고 그 사이에 원색의 전통의상을 입은 맨발의 사람들.
나를 찾아가는 종교인 힌두교.
거기 길가에서 만난 수많은 순례자들
히말라야의 하얀 꼭대기들이 황혼의 빛을 받으면 황금색이 된다.
황금색이 아스라이 보이는 찻집은 포카라 가는 길목에 있었다.
그 길을 따라 여행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하마터면 류시화 님이 되고, 시인이 되고, 구도자가 되고, 필그림이 될 뻔했다.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살고 싶다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사랑하고 싶다
두눈박이 물고기처럼 세상을 살기 위해
평생을 두 마리가 함께 붙어 다녔다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사랑하고 싶다 (후략)
시인 류시화 님의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중 일부
그 여행에서 돌아와 다시 필을 잡고 쓴 시이다.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우린 모두 외눈박이 물고기이기 때문에 두 마리가 항상 붙어 다녀야 한단다.
여행의 타이밍
떠나기 전에는
같이 있어도 그리웠다. 내 안에는 너만 있지 않다
그러던 것이 여행을 다녀온 이후에는
외눈박이란다. 나나 그대나 외눈박이란다. 그래서 항상 붙어 다녀야 한단다.
그리움과 외눈박이 사이에는 여행이 있다.
여행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그때가 여행의 타이밍이다.
내 안에 너만 있지 않을 때.
너랑 같이 이어도 네가 그리울 때.
사랑하는 사람이 낯설어질 때. 사랑해야 하는 사람이 사랑스럽지 않아 보일 때
그땐 떠나야 한다.
여행에서 돌아올 때 즈음엔
느끼게 된다. 내가 외눈박이임을.
사랑도 때론 지친다. 휴식이, 하프타임이 필요할 때가 있다. 돌아올 때 외눈박이가 될 거라는 피맺힌 각오로 떠나야 한다.
여행의 타이밍이다.
26 Feb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