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갈 수 없다. 생리 현상이다. 그런데 돈을 받는다.
볼리비아엔 공짜 화장실이 없다.
케이블카 정거장 TELEFÉRICO ROJO에서 내렸다. 마녀시장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라파즈의 심장으로 통하는 곳이다.
화장실이 가고 싶다.
정거장에서 근무 중인 경찰에게 물었다.
여긴 서울의 지하철 2호선 강남역 같은 곳이다. 당연히 화장실이 있을 줄 알았다. 정거장 건물을 나가면 왼쪽에 있단다.
정거장을 나서면 오른쪽은 쇼핑몰이고 왼쪽은 화장실이다.
그런데 그 화장실이 공짜가 아니다. 입구에 돈을 받는다.
여기 말고 공중화장실이 있을 것이다. 분명히. 진정한 의미의 공중화장실. 돈을 받지 않는...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없다,
포기하고 숙소가 있는 마녀시장 쪽으로 길을 나선다. 공중 화장실을 또 하나 발견했다.
이번엔 아까보다 형편이 더 안 좋다. 밖에서 보아도 여긴 거의 중국식 화장실이다. 그런데 여기도 입구에서 돈을 받는다.
나는 알게 되었다.
볼리비아에는 공짜 화장실이 없다. 공중화장실은 있다. 그런데 돈을 내야 한다. 시설은 밖에서 보아도 그리 아름답지 않다. 용기를 내느니 참는 게 나을 것 같다.
서울하고 비교가 된다. 서울이 그립다. 갑자기 여기가 야만적인 곳으로, 혹은 사람이 살 수 없는 밀림으로 느껴진다. 그렇다. 나는 지금 아주 후진적이고 낙후되고 오염된 지역을 통과하고 있다.
한국은 공짜 화장실에 진심이다.
미국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놀라는 것 가운데 하나가 화장실이라고 한다. 무료 공중화장실이 넘쳐나고, 심지어 깨끗하기까지 하다. 운이 좋으면 미국에서 말로만 듣던 비데가 있는 변기에 앉아 용변을 볼 수도 있다.
우리는 공중화장실이 지하철 역마다 있다. 휴지도 있다. 공짜다.
주차장에는 일반적으로 화장실이 있다. 역시 공짜다. 시내뿐 아니라 관광지나 읍 면 단위 시골도 그렇다. 캠핑장에도 역시 그렇다. 아주 시설 좋은 화장실이 잘 유지관리되고 있다. 공짜다.
도시와 농촌을 불문하고 마을마다 있는 놀이터에는 화장실이 있다. 물이 내려가고 휴지도 있다. 공짜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전국 주유소의 화장실은 의무적으로 공동화장실로 개방해야 한다. 공짜이다.
지정된 건물의 1층 화장실은 개방해야 한다. 공무원이 수시로 점 나와서 점검도 한다 공짜이다.
우리나라는 장이 약해서 자주 화장실에 가야 하거나. 전립선이 약한 사람들에게 천국이다.
화장실이 넘쳐나고, 잘 유지 관리되고 있고, 공짜이다.
세상에 이런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다.
축복받은 국민이다. 잘 태어난 거다. 오. 감사합니다.
화장실이 공짜인 우리나라는 좋은 나라인가.
나는 시애틀에서 샌프란시스코와 엘에이. 요세미티 그리고 그랜드캐년과 라스베이거스까지 갔다고 다시 시애틀로 돌아오는 여정을 자동차로 가족과 함께 여행한 적이 있다.
뉴욕에서 시카도도. 마이애미에서 올랜도 탈라하시 그리고 키웨스트까지도 자동차로 여행했다.
부담이 없는 건, 미국은 고속도로 통행료가 없다. 일부 돈 받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이 톨게이트도 없고 돈도 안 받는다.
Free way. 공짜 도로이다.
우린 좁은 나라에 고속도로를 조금 달릴 만하면 톨게이트가 나온다.
수시로 내 주머니에서 돈을 빼내간다.
그렇다고 우리나라가 나쁜 나라가 아니고 미국이 좋은 나라가 아니다.
미국은 도로는 국가가 국민에게 기본적으로 제공해야 하는 서비스로 여기는 듯하다. 그래서 고속도로는 정부가 세금으로 건설하고 관리한다.
우린 개념이 조금 다르다.
서울에서 속초 가는 고속도로는 수도권 사람들이 동해바다를 즐기는 도로이다. 이 도로의 유지관리를 영남권 사람들이 낸 세금으로 하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다.
그래서 수익자부담원칙에 따라서 도로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유지보수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다
결국은 공공서비스가 국가마다 다르다. 국민과 정부의 약속이다. 그 나라의 역사 또는 사상등과 관련이 있다.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르다고 구분하기 어렵다.
공짜 화장실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화장실을 국가가 제공하는 서비스에 포함시켜야 하는가 아니면 민간이 스스로 알아서 할 일인가.
먹는 음식은 국가 배급식량이 아니어서 국가소유가 아니고, 소화시키는 사람도 국가 소유가 아니며, 그 결과물인 배설물도 국가 소유가 아닌 사유물이므로, 국민들이 스스로 알아서 처리해야 한다는 사 개념이 존재할 수 있다.
서울의 공짜 공중화장실 시스템에 길 들여진 나는 사실, 남미뿐 아니라 유럽이나 미국이나 다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단지 여기가 남미라고 해서 내가 공짜의 쾌적한 배설 조건을 찾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불평하는 것은 여행자의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밀고 나오려는 세력과 그것을 온몸으로 막아내려는 세력이 내 안에서 갈등한다. 나는 영혼까지 끌어들여 방어세력을 응원하지만 그것은 당해본 사람만 아는 피를 말리는 작업이다.
배설은 프로이트의 인생 3대 쾌락 중의 하나이다.
고통이 크면. 그 인고의 시간이 길면, 쾌감도 더 깊다.
남미에서, 공짜 화장실도 없고, 서울스런 화장실도 없는 볼리비아에서 과민한 대장 때문에 갑작스러운 위험에 늘 노출돼 있는 늙은 나그네는, 그래서
볼리비아가 더 정겨워지기 시작한다. 화장실 때문에...
남미는 즐겁다. 공중화장실이 더럽고 냄새가 나도, 그런 화장실을 돈을 받아도 역시 그렇다.
서울 화장실이 이 지경이라면 당장 구청에 전화를 하겠지만, 여긴 그 마저 즐겁다. 남미니까...
13 Feb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