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에 걸린 알전구가 밝혀주는 밤하늘. 장작 타는 소리의 온기가 더해졌다. 차갑지만 맑은 공기. 따뜻한 안정감을 주던 곳. 그동안 듣지 못했던 소리들을 마음 깊이 들을 수 있었던 까만 밤. 톡. 톡 처마 끝 녹은 눈이 떨어져 내리는 소리.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들려오는 자유로운 풍경소리가 바람과 호흡하는 그 밤. 담양에서 만난 한옥의 밤은 나를 채우기에 충분했다.
“엄마, 추워요. 빨리 들어와야 해요.” 딸아이가 내게 당부했다. 고요함이 적막하지 않았고 날 선 영하의 날씨는 상쾌하기만 했다. 이 배경 안에 나를 조금이라도 더 두고 싶었다. 카메라를 들고 발 사이즈보다 더 큰 털 고무신을 신고 밖을 서성였다. 담고 싶고 간직하고 싶고 기억하고 싶어서. 어쩌면 바람에 뒤엉킨 내 머리카락의 날림을 조금 더 느끼고 싶어서였을지도.
오랜 시간. 내 머리는 바람에 날리지 않았다. 특히 내가 처음 사용했던 가발은 뭉침이 심하고 가르마가 인형머리처럼 고정되어 흐트러지는 법이 없었다. 머리 위아래를 고정하는 연결고리가 있는 그물구조의 통가발. 그 사이에 엮여있는 가모는 바람에 날릴 수 없었다. 그 어색함이 싫었지만 바람이 세차게 불어올 때면 나는 가발을 더욱 눌러써야 했다.
바람이 통하지 않는 가발을 쓰고 일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유일하게 내가 숨 쉴 수 있는 공간은 화장실. 무더운 여름날이면 그야말로 내 머릿속은 찜통이었다. 화장실에서 가발을 벗고 열기를 식히는 잠깐의 순간이 내게는 천국. 땀을 닦고 다시 가발을 쓰는 순간 온 지구의 열풍이 내 안으로 불어오는 것만 같았다.
코끝이 찡한 바람을 좋아했던 나는 어느새 가을의 바람조차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바람에 흩날리지 않는 머리의 부자연스러움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반 아이들과 단체사진을 촬영하던 날 나는 빵모자를 썼다. 내게 멋쟁이라 했던 촬영기사님의 말이 반갑지 않았다. 철저히 감추고 싶었을 뿐. 사진 속 나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나도 모르는 내가 되어가고 있었다. 물을 무서워하는 사람. 맨 뒷자리에 앉는 것이 좋은 사람. 혼자 있는 게 편한 사람. 추위와 더위에 약한 사람. 바람 부는 날이 싫은 사람. 내가 나를 포장하고 포장된 나를 방패 삼아 완전히 다른 나를 만들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음속에 담긴 체증만은 좀처럼 내려갈 줄을 몰랐다.
진짜 나를 드러내기 시작한 순간. 모든 것이 끝나버릴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를 더욱 꽁꽁 매어 가뒀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 내가 꿈꾸는 것들마저. 바람 한 점 통하지 못하도록 바람 한 길도 내 마음에 머물지 못하도록 막아섰다. 오래된 무게에서 해방되던 그 해. 오래된 체증은 시간의 흐름을 따라 바람처럼 흩어졌다.
가발 걸이를 더 이상 숨기지 않아도 되던 날. 문 뒤에 놓인 플라스틱 파란색 가발 걸이를 버리러 가던 길에 만난 바람을 기억한다. 두피 곳곳에 바람의 숨결이 닿았다. 머리카락 사이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의 온도가 낯설었지만 차츰 함께 숨 쉬고 있었다. 민머리로 무겁게 살아왔던 날들이 가득 채워진 머리카락으로 가벼워졌다. 거짓말처럼.
까만 밤 깊은 산속에서 만난 바람은 내 머리를 흩뜨리고 여러 갈래로 날아오른 머리카락은 내 얼굴을 만지작거렸다. 시원하고 가벼웠다. 그 날 내게 불어온 바람처럼. 밤하늘에 고개를 들어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이 바람이 골고루 들어올 수 있도록. 바람결에 춤출 수 있게. 내게도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눈물이 찬다.